[Opinion] 오묘하고 짜릿한 불편함,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 [시각예술]

두산 큐레이터 워크샵 기획전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
글 입력 2020.02.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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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SNS를 배회하던 중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 라는 매력적인 이름의 전시 포스터를 발견했다. 이 전시는 한국의 설치, 미디어 작가인 장지아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전시는 장지아 작가의 개인전이 아니라, 장지아 작가를 다루는 전시라는 것이다.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는 한국 현대미술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신진 큐레이터를 발굴,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기획한 기획 전시이다. 즉, 이 전시는 해당 워크숍에서 선정된 세 명의 큐레이터가 장지아 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텍스트로서 탐구하고 기획한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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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있어서 큐레이터란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전시를 보는 일반적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과 작가 뒤에 가려지기 마련이기에 이처럼 큐레이터가 메인이 되어 이루어지는 전시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떤 종류의 작품이든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때로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해석을 읽어보는 것이 더 즐거울 때도 있다) 반갑게 느껴졌다. 한 작가에 대해 서로 다른 비평적 관점을 지닌 세 명의 큐레이터들의 해석이 궁금했고, 그 해석들을 어떻게 하나의 전시로 엮어낼지 궁금했다.

 

*

 

전시는 분리되지 않은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정해진 관람 순서가 따로 없었기에 눈길이 멈추는 작품들부터 하나씩 감상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얼굴이 가려진 여성의 나체를 찍고 있는 영상이다. 영상에서, 몇 명의 여성 모델들은 한 명씩 등장하여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들은 어딘지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화면 밖의 누군가는(장지아 작가로 추정된다) 그들에게 여러 지시들을 내리는 듯했다. 헤드폰이 구비되어 있는 다른 영상 작업물과 달리, 이 영상 작업물의 소리만은 전시장 전체에 나지막이 들릴 정도로 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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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이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건지 영상과 소리에 집중을 하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작품의 제목은 Standing Up Peeing. 어정쩡하다고 생각했던 자세는 서서 소변을 누는 자세였으며, 물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소변을 누는 소리였다.


섹슈얼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나체,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변, 그리고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여성의 서서 소변 누기. 이 세 가지의 결합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금기에 도전하는 것들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장지아 작가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은 그의 작품을 페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다루는 경향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 명의 큐레이터들은 장지아 작가의 작품을 페미니즘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단편적인 해석만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으로 장지아의 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이 장지아의 여러 작업물 중 Standing Up Peeing을 전시장의 입구에 디스플레이한 것, 그리고 이 영상의 소리를 전체 전시장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의 의도는 무엇일까.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에는 Standing Up Peeing을 제외하고, 5개의 영상 작업물과, 드로잉 작업, 설치 작업, 사진 작업이 하나씩 전시되어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Standing Up Peeing을 시작으로 이 중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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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 구성에는 커튼처럼 기다란 다섯 개의 흰 천에 검붉은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Song of Love로 사랑을 노래하며 로맨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셰익스피어의 정형시 Sonnet를 작가의 손글씨로 적어내려 간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천과, 손글씨라고 하기에는 극도로 일정하게 쓰여있는 알파벳들이 작가의 노동을 짐작게 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로 시작하는 시를 천천히 읽다 보니, 시 중간중간에 일부 알파벳들에 글자 모양대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구멍이 뚫린 알파벳들을 연결해보니, 'IMMORTAL', 불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작가가 죽어도, 작가의 연인이 죽어도, 그들의 사랑의 노래는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쩌면 영원히 남기에, ‘IMMORTAL’이라는 단어가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검붉은 빛의 글씨들의 도축된 소의 피로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다시피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들의 도축 과정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그렇기에 실제 살아있었던 생명체의 피를 사용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도축된’ 소의 피라는 사실은 조금 끔찍한 면이 있었다. 불멸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도축된 소의 피가 상징하는 폭력성, 잔혹성과 결합하여 기존의 텍스트적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들을 도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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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가장 굳건하게 믿어지고 있는 신화 중 하나가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는 일단 정말로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게 된다면 그 ‘하나뿐이며 유일한’ 대상과 ‘영원한’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측면이 강했던 결혼이라는 제도가 낭만적 사랑의 관념이 등장하게 되며 개인의 자유의 측면이 커지게 되며 낭만적 사랑은 내재적으로 전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 사랑의 특징은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 있어서 개인의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게 되는 폭력성을 가리게 된다.


이러한 불멸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 도축된 소의 피가 상징하는 폭력성과 잔혹성과 결합한다면 기존의 텍스트적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기존의 시가 사랑이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요소에 집중을 했다면, 도축된 소의 피로 쓴 시는 사랑의 폭력적인 요소를 고발하는 듯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한 쪽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양가적 특징을 모두 조명하는듯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사랑은 이런 양면적 모습을 지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양면적 모습들이 감상자 내부에서 충돌하게하며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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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가장 안쪽의 공간에는 On My Mark! 라는 제목의 사진 작업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열 장의 사진은 각기 다른 인물들의 나체를 담고 있었는데, 인물들은 신체에는 모두 커다란 붉은 자국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자국들은 모두 각기 다른 글자들을 그려내어 제목인 On My Mark!가 된다. 그리고 그 흉터들은 다름 아닌 키스 마크로 쓰인 글자들이다. 그냥 흉이 아니라 키스 마크로 쓰인 글자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우리의 머릿속은 그 글자들을 쓰는(?) 과정들을 연상하게 된다.


신체와 신체의 만남이라는 극도로 개인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쾌락과 고통의 경험에 관람자들을 초대한다. 이런 상상적 영역에서의 ‘훔쳐보기’는 은근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금기를 어긴 것에 대한 은은한 희열을 느끼도록 한다. 제목인 On My Mark!는 군부대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릴 때 쓰이는 말로, 타이트한 위계질서를 상징한다. 장지아 작가는 이것을 나체에 새겨진 키스 '마크'의 이미지와 연결하며 위계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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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작품들 이외의 다른 작품들도 이처럼 정상성을 벗어나 있으며 이는 여러 층위에서의 불편함들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의 영상 작품들 중에는 작가의 초기 작품인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모든 상황을 즐겨라!>가 포함되어 있다.


영상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성이 장지아 작가에게 가래침을 뱉고, 날계란을 던지고, 머리를 때리는 등의 폭력들을 행사하고 이것들은 점점 강도를 더해가며 등장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폭력은 어떤 편집도 없이 완전히 ‘날 것’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작가는 오히려 화면을 똑바로 마주하며 미소를 짓는다.

 

장지아 작가는 20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정상성을 탈피하며, 인간의 내면에 내재되고 억눌려 있는 여러 감정들을 건드리는 작업들을 해왔다. 작가 스스로에게도 이러한 작업들은 매 순간 도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모든 상황을 즐겨라!> 가 처음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장지아 작가는 그녀의 초반 영상 작업들은 그녀에게 어떠한 ‘선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모든 상황을 즐겨라>은 명시적으로 이 영상이 그녀의 작품 활동의 태도와 직결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

 

장지아 작가의 작품세계는 명료한 듯하면서도 심오하여, 필자처럼 현대미술 초짜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만큼 즐겁게 탐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세 명의 큐레이터들의 관점을 빌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도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달까. 아쉽게도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는 지난 15일에 전시가 끝이 났지만, 이 글을 읽고 이 오묘하고도 짜릿한 불편함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면 장지아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를 함께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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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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