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라는 화실 속에 나는 호구(虎口) 화가 [사람]

청춘이 도화지를 채우는 방법을 배우다
글 입력 2020.02.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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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의 분위기. 김민희. 2007.2.1



청춘은 호구다. 사람들은 무지한 청춘을 괴롭힌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힘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청춘은 이용당한다. 청춘은 상처를 모은다. 아직 상처받지 않아 비교적 깨끗한 도화지와 같은 이들은 배신당한다. 청춘은 순식간에 울타리가 없는 목장에 내던져졌다.


청춘은 팔레트에 물감을 짜 놓는 작업을 한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색 집단이 짙어 지고 있다. 색은 깊이를 더해간다. 여러가지 재료들과 뒤섞여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어설픈 그림이 되어 이 곳 저 곳 떠돌다가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그림이 값비싸게 거래되는지 파악이 되기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그렇게 그리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다만, 값비싼 그림에는 그만한 가격의 물감이 필요한 것을 체감하고 일말의 반항을 하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내 팔레트 위의 색들 중에서 하필이면 얕게 짜 놓은 물감이 필요해 보이는 기준선의 그림을 보고 이미 나의 실패를 예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친구 역시 비싼 물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았고 사람들은 친구의 팔레트 위에서도 많은 양의 빨간색 물감에 열광했다. 나도 빨간색의 물감을 짜기 시작해본다. 이제는 모든 물감의 양이 애매한 것 같다. 붓을 집어 던져버렸다가 부러지지 않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내 그림에 집중하기로 한다. 유난히 내 도화지가 더 더럽고 찢어져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그동안 쓰지 않은 물감은 굳어지고 다시 물을 풀어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충분히 다시 쓸 수 있는 물감들이다. 나만의 그림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기대하기도 한다. 습작이 쌓여가면서 청춘은 견고해져 간다. 견고함이 고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청춘은 이제 나이 든 이들의 고집스러움을 조금은 이해했다. 자신의 모습에서 순간 순간 그 아집이 비춰짐에 놀랐다. 두렵기도, 세월에 체념하기도, 스스로를 경계하기도 하며 나는 부모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던 다짐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새로운 청춘들의 모험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반면,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응고제가 면적을 넓히며 굳어감에 따라 그들의 활발함을 관전하는 좌석에 위치해간다. 나에게 물감을 짤 시간을 더 길게 가져도 된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물감을 짜는 일을 하는 건 버겁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비교적)청춘이다. 나를 항상 나보다 먼저 청춘이 되었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건지, 앞 세대가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치가 떨리기도 한다.

참으로 복잡한 청춘이다. 격동적이다. 내 도화지는 찢어져가고 있다. 테이프로 불여보니까 그 위에는 물감이 칠해지지 않았다. 풍문을 들어보니 다른 종류의 염료로 칠할 수 있다길래 덧칠해보았다. 생각해보니까 도화지에 굳이 붓칠만 해야하나 싶었다. 그래서 스티커도 붙여보고 여기저기서 받은 편지들도 얹어보았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 그림인 걸 이제서야 나와 내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그런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서로의 팔레트를 보여주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 화실이 익숙한 것 같다가도 아직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따금씩 화실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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