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끝자락에 만난 여름같은 사랑,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글 입력 2020.02.1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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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관한 영화들은 종종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깊게 두드리곤 한다.


대중을 만난 지 올해로 꼭 22년째 되는 작품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영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그렇다. 필자와 나이가 엇비슷한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열일곱 살의 어느 날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었다.


새 학교에 채 적응도 하지못했을 4월 즈음의 봄날 국어교과서에서 만난 이 작품은 꽤나 강렬히 다가왔다. '정원'과 '다림'이 놀이공원에 가던 장면에서부터 함께 운동장을 달리던 장면까지, 단편적인 조각들임에도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묘사에 감탄하며 작품을 읽어내린 기억이 있다.


이 영화를 다시 관람한 건 지난해 여름 즈음, 그리고 최근에 다시 재관람하며 생각했다. 역시 좋은 영화는 쌓인 시간과 함께 다시 만날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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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동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정원'은 초원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이다. 누군가의 모습이 더욱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일을 하는 그는 꽤나 즐거워 보인다. 푸르른 잎에 초록빛이 더해지던 어느 여름날, '정원'이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사건은 일어난다. 더위에 지쳐 잠시 숨을 돌리려던 찰나 주차단속원 '다림'이 급히 사진을 맡기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나무그늘에서 사진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그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앞날은 여름을 담은 청량한 화면만큼이나 밝지는 못했다. 그들이 만나기 전 '정원'이 다녀온 장례식장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같이 약을 먹으며 시한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관객의 감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한 것은, '정원'의 슬픔보다 그 상황 속에서의 그들의 관계에 더욱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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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삶의 끝에 선 '정원'은 마치 생기(生氣)를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는 그의 시선 끝에는 바로 '다림'이 있다. 꽤나 당돌하게 다가오는 '다림'에게 '정원'은 분명한 호감을 느끼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순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들이 시작하는 풋풋한 사랑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도록, '정원'이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장면들을 그들의 관계가 진전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한다. 관계의 끝을 알지 못한 채 '정원'을 기다리는 '다림'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사랑 앞에 망설이는 '정원'의 시선에 관객들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정원'이 병원에 실려가 사진관을 닫을 수 밖에 없던 날 동안 '다림'은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사진관 안으로 편지를 넣고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장면들에서 우리는 '다림'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순간조차도 사진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구도가 관객들로 하여금 '정원'의 시선에서 '다림'을 바라보게 한다. 깨진 유리창은 '다림'의 마음임과 동시에 병원에서 그녀를 떠올리고 있을 '정원'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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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쌀쌀해진 계절에 병원을 나선 그는 자신을 기다렸을 '다림'에게 편지를 전하려 하지만 그는 결국 닿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닿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닿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카페에 앉아 유리창 밖을 바라보던 시선에 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다가서기보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는 편을 택했다. 분명한 그녀의 모습에 손을 대어보지만 손 끝에 느껴지는 건 차가운 유리의 감촉 뿐, 그녀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다.


금방 다가올 끝을 아는 그는 그렇게 그녀를 마음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여름날 완연한 생의 기운처럼 그들은 푸릇한 관계를 시작하려 했지만, 가을밤 처량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곧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눈오던 날 '다림'의 따뜻한 웃음처럼 그 끝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계절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겨울에 우리는 여름을 그리워할 지언정 이듬해 다시 찾아올 여름을 알기에 겨울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그들의 만남은 끝났을 지언정 서로를 따뜻히 바라보던 그 모습은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오래도록 그 마음 속에 남아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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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람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수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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