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알바 가기 싫다' [사람]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매 주말 아침, 게슴츠레 눈을 뜨며 되뇌었던 말이다.
글 입력 2020.02.1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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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바가기 싫다’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매 주말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과 커튼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게슴츠레 눈을 뜨며 되뇌었던 말이다.


본디 주말이란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찌나 달콤한지 흑백의 달력 속 유독 잘 보이는 빨간색 요일은 나로 하여금 한껏 게으름 피우고 싶은 기분이 들게끔 만든다.

이제는 생전 안 마시던 차도 한 잔 내려 마시고 싶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읽는 여유도 부려보고 싶고 평일엔 영 발길조차 안 주는 부엌에 가서 괜히 식빵을 굽고 샌드위치를 싸서 잘 가지도 않던 집 앞 공원에 나가고 싶은. 그러다 저녁이 되면 동네 엘피바에 가서 홀로 맥주 한잔하고 싶은. 내게 주말은 왠지 그런 날이 됐다.

 

‘꿀같은 상상은 그만하고 어서 아늑한 침대에서 벗어나 알바 갈 채비를 해야지.'

 



대한민국 20대 성인 남녀 중 어떤 종류의 아르바이트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아마 대부분은 해보았거나 하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처음 목적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비를 위해 용돈을 위해 혹은 특별히 급전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아르바이트는 통장 잔고의 0을 하나라도 늘리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지난 3년간 몇 차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했고 지금도 하는 중이다. 알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역시 돈이 필요해서였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떡국을 스물 하고도 몇 그릇 더 먹은 지금,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 첫 알바는 미술학원 보조강사였다.

미대 입시가 끝난 직후 원장님으로부터 강사를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원체 애들을 좋아하는 데다 대학생 강사들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내가 잘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좋은 대우도 받다니. 이거 완전 식은 죽 먹기 아니야? 하며 얕잡아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오산이었다. 입시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큰 책임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지사였으며 열아홉의 그들은 유리구슬과도 같아서 겉은 단단해 보일지언정 연약하여 부서지기 쉬웠고 투명했다. 그래서 어려웠지만, 조심스럽게 정성으로 가만가만 보듬어 주면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세상사가 다 그렇겠지만 큰 시험을 앞둔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데 눈을 마주하고 노크하면 누구라도 그래 주길 기다렸다는 듯 울음 섞인 표정으로 내게 곁을 내어 주곤 했다.

나는 그림에 있어서는 비수가 되는 말도 서슴지 않는 강사였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때로는 옆집 언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를 어떤 강사로 기억해줄지는 모르겠으나 감사하게도 내가 준 사랑보다 그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매 수업 때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팔을 활짝 벌리고 안아달라고 뛰어오던 아이가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 날 편지 한 통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 아이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퇴근길 버스 안에서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만남 후에 이별은 비가 그친 뒤 우산을 접을 때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또 이별했지만 어째 익숙해지지가 않더라. 아이들은 이별할 때 ‘선생님 우리 또 만나요, 합격하면 꼭 밥 사주세요.’ 따위의 약속을 하지만 나는 이제 경험상 그것은 기약 없는 약속이 되리란 것을 안다. 이번 생에서 우리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 것 아닐까.
 
 



2년간 해온 강사 일을 그만두고 그토록 바라던 게으름을 피워 느지막이 잠에서 깬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나는 빨간 요일의 자유를 갈구했고 이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갈빗대 사이사이로 새 나오는 이 공허함은 무얼까.

정말 알바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노동과 금전 관계 그뿐인 것일까, 용돈 벌이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걸까,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을 비유하자면, 집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구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상상 속에선 달콤하기만 했던 주말이 실은 그렇지 못했다. 베짱이도 해본 놈에게나 가능한 것이었던 건지, 일개미에게 간만에 주어진 꿀은 퍽 부자연스러웠고 눈앞에 꿀을 먹을 줄도 몰라 하릴없이 넋 놓을 뿐이었다. 베짱이 흉내라도 내볼까 싶어 집 앞 공원에 나가봤지만 괜스레 머쓱하고 어색해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어설픈 주말을 보내고 ‘오늘 하루 참 이상하네’ 중얼거리며 잠들기 전, 아이들 생각이 났다. 선생님 선생님 하며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모습이, 제가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하며 울먹거리던 모습이, 합격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거예요 라며 설레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또, 너는 이제 학생이 아니라 진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강사라고 말씀하시던 원장님으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격려와 따끔한 충고도, 보조강사 동료들과 이러쿵저러쿵 학원 얘기를 떠들며 보냈던 점심시간도 떠올랐다.

그리곤 내가 돈만 얻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난 그곳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함께했고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나를 투영했으며 그들은 결국 나의 한 편이었구나 생각함과 동시에 내가 보낸 2년이 무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잠들었다.
 
 



그렇게 세미베짱이로서의 한 주를 보내고 돌아오는 주말 아침, 커튼을 걷으며 생각했다.

 

'알바..구해볼까?'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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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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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nathan
    • 네이버에서 에디터님의 '예동이' 이야기를 읽고 글이 너무 좋아서 이곳까지 와서 에디터님의 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애인님의 말마따나 따뜻한 분이시라는게 글에서도 느껴져서 정말 좋았어요. 단지 예쁜 어휘들을 써서 글이 예쁘게 느껴지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예쁜 글들 잘 보고 갑니다. 혹시 수필집 내실 생각 없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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