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국은 너와 나의 이야기 : 우리들 [영화]

글 입력 2020.02.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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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내 마음이 들리니”

 

언제나 혼자인 외톨이 선은 모두가 떠나고 홀로 교실에 남아있던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를 만난다.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순식간에 세상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된

선과 지아는 생애 가장 반짝이는 여름을 보내는데,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어쩐 일인지 선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선을 따돌리는 보라의 편에 서서 선을 외면하는 지아와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선.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 노력하던 선은 결국 지아의 비밀을 폭로해버리고 마는데...

 

선과 지아.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 '우리들'의 전작인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집'을 먼저 봤었다. 두 작품을 보기 전 아이들이 얼마나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낼 수 있을지, 또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호기심이 가득했다.


두 영화를 모두 보고 난 후 알게 된 것은 윤가은 감독 작품에서 아이들이 그려내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아직 다 컸다고 또 어른이 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을 만큼 미숙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정말 훌륭했다.

 

두 작품에 차이가 있었다면 영화 '우리집'에서는 아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영화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다시금 그때로 나를 돌아가게 만드는 듯했다. 두 영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마음이 찢어질 만큼 아플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우리들'이 더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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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피구 경기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팀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두 아이가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명씩 팀으로 데려가고 싶은 아이의 이름을 호명한다. 그리고 선의 이름은 끝까지 불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서로 데려가기 싫다고 이야기하며 내색한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대부분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이었다.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더 잘 하는 친구 혹은 더 친한 친구를 데려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냥 그게 다였는데, 팀 나누기가 끝나가고 남은 아이들이 적어질수록 웃음기를 잃어가는 선의 얼굴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도 죄책감과 동질감을 함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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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야, 나중에 우리 둘만

바닷가 같이 갈래? 약속"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과 다름없었다. 관계를 처음 시작할 땐 조심스럽고 설렌다. 유난히 나와 잘 맞는 것만 같고 영원히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흔히 아이들이 '우리 평생 베프 하자!'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함께인 것이 당연한 미래를 이야기한다.

 

선의 집에 간 지아. 집이 좀 덥다며 조심스레 묻는 선에 아니라고 답했던 지아는 시간이 지나 너희 집은 왜 이렇게 덥냐며 투덜거린다. 사람의 관계는 유리잔 같다. 잘못 손대면 깨질 것 같으니 조심스럽게 다룬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해지고 잔은 깨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것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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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이래서 친구가 없는거야 알아?"

 

유난인지 모두가 그랬던 건지 관계 맺기가 힘들었다. 중학교 때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항상 아이들은 무리 지어 다녔고 그 무리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내가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잘 알지 못했을 때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있는 아이들은 잘못한 것 없이도 왕따라고 불렸고 수많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혼자 있는 것이 편했고 자연스럽게 속했던 무리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 빼고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쉬는 시간이 싫었고, 두 명씩 짝을 지으라는 선생님의 말이 싫었다. 그리고 체육 시간 자유 시간을 주는 것이 싫었다. 크고 넓은 운동장의 어느 한구석에 혼자 앉아 하릴없이 땅만 보고 있는 나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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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예전 학교에서 왕따였다면서?

거짓말쟁이를 누가 좋아해?"

 

해가 지나며 학년이 올라가고 매번 다짐했다. 올해는 정말 좋은 새 친구를 사귀어보자고, 고등학교에 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니 한 번 잘 해보자고. 그럼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모든 마음을 꺼내어 줄수록 커지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정말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걸까 생각할 정도로 나는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떠한 호의도 더 이상 내게는 호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의심이 되었다.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단과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마치 도태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척해야 했고, 나를 숨기고 그저 좀 더 밝고 무해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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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언제 놀아?"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서야 나를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던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전보다 훨씬 적었다. 혼술, 혼밥, 혼코노와 같은 단어가 생기고, 아직 비주류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내가 혼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관계에 지쳐서 혼자가 좋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생각 덕분인지 이제는 사람을 더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아직도 관계는 나에게 너무 크고 또 어려운 숙제이지만 우리는 아무리 혼자가 좋아도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애써 잊으려 묻어두었던, 그렇기에 쉬이 꺼내기 힘들었던 나의 기억을 꺼내어 펼쳐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영화 '우리들'은 나에게 위로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선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선과 지아. 무언가 다른 듯 닮은, 닮은 듯 다른 우리들은 다시 부딪히고 또 부대끼고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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