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문학의 쓸모 - '문학 이후의 문학' [도서]

글 입력 2020.02.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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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용에서 쓸모를 찾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뜯어봐도 먹고 사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될 구석이 없고, 돈이 최고인 사회에서 그다지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아쉽고 미련이 남는 것들이 있다.


언젠가 나는 “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이고, 책장을 덮으면 사라지는 세계인데 문학은 왜 읽느냐는 질문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오랫동안 문학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시대에 문학은, 이 시대에 문장들은 왜 존재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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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보통 나는 비평이나 해설은 고전문학을 독해할 때만 읽는 편이어서 현대소설이나 현대시 비평은 잘 찾아보지 않았다. 비평을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문학적 지식이 깊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 비평은 어렵고 힘든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읽을 시도를 하지 않아서 어려웠던 것이었지만.


비평을 찾아 읽고 문학에 조금씩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문학의 쓸모를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아가 문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문학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근본적 물음까지도 생겨나 점점 해답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문학과 아주 동떨어진 진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문학의 쓸모는 나에게 꽤 중요한 이슈였다. 쓸모없는 존재에게 내 인생의 일부를 걸고 싶지는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느 방면에서는 쓸모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아무리 문학이 쓸모없다고 해도 이런 면에서는 문학만한 것도 없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떤 교수님의 문장에서 해답을 찾았다. ‘무력하지만 아름다운 문학’, 이 구절이 내 머릿속에 아직도 선연하게 떠돈다.

 

 

 

문학은 무엇인가?




어떤 길들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나감으로써 유력한 길이 되지만, 또 어떤 길들은 많은 이유로 외면받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길이 존재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전에 존재한 길과 다른 길을 개척하겠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가 오늘날 문학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23쪽)



‘문학 이후의 문학’은 고봉준 문학평론가의 평론집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1부에서는 문학과 비평에 관해 논하고 2부에서는 동시대 문학과 현대시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함기석, 유강희, 송재학, 나희덕 등 시인들의 시 경향성과 작품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이중에서 1부, 문학과 비평에 대한 글이 가장 와 닿았다. ‘수많은 길이 존재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문학의 존재 이유라는 글쓴이의 말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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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의 한국문학의 흐름은 세월호와 ‘82년생 김지영’을 빼고 논하기 힘들다. 세월호 이후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하나의 물결을 만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쏘아올린 작은 페미니즘은 아직까지도 선명한 파도를 끌고 오고 있다. 사회와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이자,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자석과도 같다. 일상을 담아내지만 절대 일상적인 밋밋함을 추구하지는 않는, 민무늬 사회 속에 존재하지만 누구보다도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자 끊임없이 시도하는 존재가 바로 문학이다.


하지만 이런 문학의 발버둥이 무용하다는 지적도 문학 탄생 이래 끊이지 않았다. 글자 몇 개로 사회를 바꾸거나 세상을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부터, 이미 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으니 글이 존재할 하나의 틈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회의론까지, 아무튼 지금 이 시대는 문학의 쓸모에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다수적인 가치에 반하는 것, 아니 다수적인 가치에서 이탈하는 흐름에 일정한 질서와 스타일을 부여한 결과물이 아닐까. 이때 ‘문학한다는 것’은 기꺼이 다수적인 방식과는 다른 삶을 긍정하고 창조한다는 것이고, 작가/예술가란 그 긍정/창조에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 이상이 아닐 것이다. (103쪽)



그러나 이 글 첫머리에 적었듯이 무용에서 쓸모를 찾아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문학의 문장이 사회를 개혁할 수는 없더라도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정도는 할 수 있고, 오늘 하루 힘겹게 버텨 온 누군가가 죄책감 없이 기댈 만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니 ‘쓸모없는 문학’이라는 말만큼 역설적인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여기의 문학



앞서 말했듯 나는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 몇 권 있는 것 외에는 시보다 소설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시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감성과 신비로운 메시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시는 시인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텍스트를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어렵다’ 정도의 감상만 남기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시인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시를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줄 알아서 그 어떤 시도 ‘읽지’ 못했다.


‘문학 이후의 문학’은 전문 평론가의 비평이 실린 평론집이기에 시와 낯선 독자일 경우 흥미가 조금 덜할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처럼 시 독해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왠지 모를 벽이나 두려움까지 느꼈던 독자라면 더더욱. 이 책은 ‘시는 쉽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기에 시에 대해서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여기의 문학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상당히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문학계 성 추문이 예술로 변명될 수 없는지에 대해 논한 ‘미학주의를 위한 변명’ 토막은 더욱 인상 깊었다. 그간 수많은 ‘거장’들이 문학계 미투 운동에서 고발당했고,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거장’이나 ‘선생님’으로 대우 받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받는 현실이 지금-여기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이다. 이런 현재를 예술로, 미학으로 포장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권력에 편승하는 짓인 셈이다.


아울러 이 책은 내가 읽지 못했던 시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읽어내어, 내가 시 작품을 단독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풍성하게 독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비평의 존재 가치이자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은 ‘OO리뷰단’이나 ‘OO에디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로 이름 짓고 활동하는 아마추어 비평가들이 굉장히 많고, 일반 독자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기 때문에 비평가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책에서도 그 지점을 지적하며 비평의 가치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이 무용하면서 유용하듯이, 문학의 쓸모가 전면으로 부정되지 않는 한 비평 역시 무용한 가운데 유용하게 살아남지 않을까. 문학의 쓸모를 변명하고 사랑하는 것이 비평의 일이자 독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나마 어렴풋하게 느끼는 언어를 비평이 구체화하고, 그 비평을 읽으며 공감하는 독자가 있는 한 문학과 비평은 살아남을 것이다.

 

 


 


문학 이후의 문학

 

 

지은이 : 고봉준


출판사 : 도서출판 b


분야

인문학

한국문학


규격

양장본 152X224mm


쪽 수 : 430쪽


발행일

2020년 01월 20일


정가 : 24,000원


ISBN

979-11-89898-18-2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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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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