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그들의 다채로운 세상을 응원하며.
글 입력 2020.02.15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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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내 사춘기에 애꿎은 내 손톱은 성할 날이 없었다. 막상 뜯고 나면 속은 편한데, 그런 내가 부끄러워서 숨기기 바빴고 웬만하면 주먹을 잘 펴지 않았다. 가여운 내 손톱에 마음의 안정이 담긴 것처럼, 그들의 안나수이 손거울과 XXL 레오타드에는 그들의 깊은 속마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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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소위 ‘잘나가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학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은 학교에 꼭 한 명씩 존재하는 그런 학생 말이다. 반면에 희주는 그렇지 않다. 반에서 겉돌고 늘 혼자 지낸다. 그런 희주를 보며 자꾸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가고 눈에 밟혔다.

그 시절의 나는 항상 의견이 뚜렷했고 고집이 있었다. 그런 모습이 밉보였던 건지 난 누구 나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아이가 될 수 없었다. 극 속의 희주는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고 본인에게 초점을 돌리던데, 사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남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게 되었고 주위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참 작아져있었다. 그럴 때마다 만만한 건 항상 내 작은 손톱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비교된 희주는 참 강한 사람이었다. 사회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볼 줄 아는 강한 사람. 그런데, 준호는 그렇지 못했다. 레오타드를 입으면서 안정을 찾는 준호는 그것이 정말 큰 잘못이 아님에도 숨겨야만 했고, 들키면 안 됐다. 이렇게 다르면서도 같은 아이들의 우정은 그들 자체만큼이나 인상 깊었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1).jpg

 

희주는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을 익명으로 학교 커뮤니티에 올리며 준호를 협박한다. 희주에게는 체육과로의 진학이 가장 큰 목표라, 파트너가 필수라는 체육 수행평가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던 희주에게 ‘레오타드‘라는 협박의 무기가 생겼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시작된 그들은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약점을 알고 충돌 또한 많았지만, 굳이 숨겨야 할 것이 없는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우정이 금방 싹텄다. 반드시 숨겨야만 했던 그들의 비밀을 서로 터놓으며 답답한 사회 안에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냈다.
 
희주 “네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이야. 그렇게 좋냐?”
준호 “당연하지!”

희주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준호 “…”

 
잘못한 것은 없지만, 마치 잘못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물론 낯설기는 하나, 결코 불편하지 않다. 우리의 사회는 제멋대로 한계선을 긋고 똑같은 잣대로 개인을 판단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강렬한 그 다채로운 사춘기에, 아이들은 한계선에 갇혀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며 자기 자신을 숨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틀에 맞춰 움직인다. 준호의 어머니는 사교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준호의 비밀이 밝혀지자 바로 전학을 보낸다. 그저 아들의 ‘이미지’를 위해. 물론 아들을 위한 선택임을 알고 있으며,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준호 또한 그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사람은 모두 불안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그 방식이 평범한지 아닌지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주위가 결정한다. 난 내 손톱이 부끄러웠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임에도 내 손을 사랑하지 않았다. 내 손이 이뤄낸 음악과 표현들이 아름다웠음에도 난 내 손을 좋아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내 못생긴 손을 보고 놀랐고,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손에 대해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조차도 내 손에 당당하지 못했으니 본인은 진정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준호와 희주의 수행평가는 그 답답함을 풀어주려는 듯, 정말 자유로웠다. 희주는 항상 묶고 있던 머리를 풀었고, 준호는 교복을 내던지고 레오타드를 입었다. 극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실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을 인상 깊게 표현해 낸다.

그들의 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유쾌했고, 그들의 모습은 어느새 관객들에게 익숙해져 레오타드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그 연극에서 준호의 ‘레오타드‘와 희주의 손거울에 담긴 ‘어두움’은 어느새 평범해져, 그저 자유로웠을 뿐이다. 에서는 이 대비되는 감정을 아주 뚜렷하게 그려냈다. 답답하고 갑갑한 사회의 시선과, 진짜 자유로운 ‘나‘의 모습에 각기 다른 여운이 남는다.
 
사춘기가 훌쩍 지나버린 난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다. 사춘기 때만큼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사회의 시선에 타협해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내 손이 당당해지기도 했고, 조심스러운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안정감도 잃었다. 난 아직 다른 습관을 가지지 못했다. 만약 나에게 희주나 준호와 같은 용기나, 내 안에 그 강렬한 사춘기의 여운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정말 만약 그렇다면, 사회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나만의 뚜렷한 습관을 감당할 수 있을까?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3).jpg

 

사회는 본인에게 항상 말해왔다. 남들과 똑같이, 순탄하고 평범하게 살아달라고. 어느새 나도 그런 인식에 세뇌되어 항상 조급하고 초조해져온다. 하지만, 본인은 아직 특별한 사람이고 싶으니, 더 이상 다듬어질 수 없다. 그러니 난 조용한 반항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실무진 명함.jpg

 

 

[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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