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이 훔친 기적 [도서]

강지혜, 『내가 훔친 기적』
글 입력 2020.02.1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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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이든 미술관이든 박물관을 가면 우리는 어린이를 소인, 어른을 대인이라 부른다. 대인은 더 큰 금액을 지불하고 스스로를 소인의 보호자로 생각하며 소인과 동행한다. 대인은 무엇을 하든 책임이 따르며 간혹 소인의 책임까지 대신 맡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이니까.” 어른은 의연하게 소인의 잘못을 품어주며 그것을 가르치기까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지금까지 만난 어른 중에는 ‘어른’의 정의에 맞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사전적 어른은 실제의 어른의 십 퍼센트도 안 될 것이며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들 밑에 있는 아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강지혜의『내가 훔친 기적』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실제 어른’들이다. 그들의 밑에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 실제 아이들은 “아이니까.”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훔친 기적』의 아이들을 책임지는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어른 모두가 무너질 뿐이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 소녀들

 

지하 연습실에는 관절을 꺾는 소녀들이 있다. (「모든 ‘비긴즈’에는 폭탄이」) 그들은 언제 날개가 달리는지 모르지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보컬 트레이너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거라 말한다. 대신, 죽지 않을 것을 주의 받은 아이들은 모두 “손상될 가능성”이 있어 운반에 주의가 필요하다. 소녀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상품이 된다. 그들은 각자 “투명한 심지”를 숨긴 폭탄들이다. 아이들은 소리 없이 터질 자신이, 그럼에도 죽지 않을 자신이 무서워 숨을 죽였다. 숨죽인 소녀 중 하나는 그 연습실에서 터져버렸다. 터지는 것보다 “그런데” 죽지 않을 가능성을 걱정하는 모습은 이미 트레이너의 주의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아이가 아닌 심지를 숨긴 폭탄이 된 그들에게 죽음은 이미 예견되었다. 숨죽이던 소녀들은 결국 비명을 지른다. (「아이돌2」)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했던 어른은 이제 없다. 소녀들은 버려졌다. “사기꾼들이 하나뿐인 다리를” 터트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소녀들은 기형의 날개를 이식받고 모여들었다. 기형의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어차피 날개가 하나면 천사도 병신이니까.” (「무정박 항해」) 기형의 날개를 단 소녀들은 천사가 아니다. 소녀들은 날개를 달아준다고 했던 사기꾼에게 버려졌다. 소녀들이 숨긴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소녀들의 비명은 끝나지 않는다. 소녀들은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의 프린세스이다. (「집으로 가요」)  게임은 이름에 걸맞게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야 한다. 그녀가 프린세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성장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누군가와 만나 성장해야 한다. 만날 상대가 없으면 게으름뱅이가 될 뿐이다. 공주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왕자와 만나 공주가 되거나,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집사 혹은 아버지와 결혼한다. 공주는 공주들끼리 렌즈를 돌려 끼고 가십을 주고받고 유혹 점수를 높인다. 코르셋을 입고 상대를 만나는 공주들은 각자의 엔딩을 알 수 없다. 엔딩은 약속되지 않은 만남이다. 공주들은 용사와 휴가를 떠날 때마다 ‘치트키’로 젖가슴을 검사받는다. 치트키 속에서 공주는 거부권이 없다. 그들은 열여덟 살에 사기꾼이 되거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다. 사기꾼을 다시 만나는 소녀들은 다시 기형의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스승은 많은데 제자는 모두 숨을 죽였다는 (「모든 ‘비긴즈’에는 폭탄이」)” 슬픈 이야기처럼, 소녀들은 다시 숨을 죽이며 살아가고 언젠가는 다시 폭발할 것이다.


 

- 아이들

 

아이는 “열쇠를 아무리 세게 돌려도 한 번에 잠기지 않는” 집에 산다. (「장마」) 아이의에는 페인트가 떨어지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천장에서 비가 센다. 비가 많이 오면 천장에 물이 계속 고인다. 아이의 눈에 비가 고인 천장은 임신한 것처럼 부풀어 보인다. 그리고 천장을 임신시킨 범인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계속 부푸는 천장을 보면서 아이는 엄마가 없으면서 동생들이 생길까 두려워했다. 형제가 없는 외동임에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태어날 동생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아무도 나 같은 거,”

 

뒤의 말이 더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다음 문장을 읽어낼 수 있다. 쌍둥이 울음소리나 옆집 굿소리가 나더라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 그럼에도 아이는 칼로 벽지를 찢었고 아기들이 그의 방에 쏟아졌다. 동생이 생기는 게 무서워 울었던 아이의 방은 이제 동생으로 가득 찼다.

 

동생으로 가득 찬 방은 여전하다. 동생과 수치심이 있는 방은 아버지가 없으면 빈 방이 된다. (「방(房)」) 아버지는 동생을 학대한다. 거꾸로 들고 흔들고 내던지고 밟는다. 동생의 눈과 코와 입에서는 계속 분비물이 나오지만 흔들릴 뿐이다. 아버지가 방에 나가면 아이의 방은 빈 방이 된다. 아버지만 나갔지만 동생 역시 없었다. 분명 아이는 아버지가 동생을 구타하는 장면을 매번 목격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버지가 평생 한 방과 한 자식만 있는 것을 안다. 아이는 아버지를 지우고 싶어 자신의 배를 때렸다. 배를 때린 순간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하나의 방과 하나의 자식만을 낳았다.”는데, 이제 그 하나의 자식은 아이인지 동생인지 알 수 없다.

      

천장에 고였던 아기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자신의 탄생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태어난 아이는 “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요람에 누워」) 아기의 송곳니는 영원히 솟지 않고, 손톱은 자취를 감추고 날개의 흔적을 숨겼다. 단단한 송곳니, 손톱, 날개가 없어 아이는 도망갈 수 없다. 태어나 첫울음을 뱉으면서 치욕스러운 하루가 백 일이 흘렀다. 아기는 앞으로 무수한 백 일이 수백 번 반복하며 살아간다. 여기서의 자장가는 아기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아기는 무수한 불안 속에 살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보호받지 못한다. 오히려 어른은 학대의 가해자로, 아이는 학대의 피해자로 나타난다.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약속은 기형의 날개를 달아주거나 (「아이돌2」), 아이들이 심지를 만들고 숨기게 한다. 아이들은 선택권 없이 어른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집으로 가요」)  사랑받은 적이 없던 아이는 동생의 탄생을 두려워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지울 수 없어 자신을 지우려 배를 때리는 가여운 행위는 마치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마」) 아이들은 가해자를 탓하는 법을 모른다. 어른에게 학대받은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터지기 직전 혹은 이미 터진 후의 모습이다.


 

- 세상

 

터질 것 같은 아이들은 자란다. 사랑받지 못하고 어른이 된 아이들은 다시 다음의 아이들에게 가해자가 된다. 폭탄 같은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대한 폭탄이다. 이제 폭탄이 된 세상의 피해자는 어린아이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전체는 터지기 직전이다.

 

터지기 직전의 세상에 사는 ‘나’는 아름다운 의자를 들고 전철을 탔지만 전철에는 자리가 없었다. (「의자 들고 전철 타기」) 사람들은 의자를 노려보았다. 의자는 본인의 의지로 전철에 타지 않았음에도 미움을 받는다. ‘나’는 분명 의자를 들고 있지만 앉을 수 없다. 그러나 앉을 수 없는 것보다 괴로운 건 너무 밝은 전철 내부이다. 밝은 내부에서 사람들의 미움은 노골적이다. 마지막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결국 의자는 철로 옆으로 떨어졌다. 의자를 아이로 치환해보도록 하자. 나는 아기를 품고 있고 아기를 증거로 앉을 수 있다. 아기는 자신의 의지로 전철에 타지 않았다. “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요람에 누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끊임없이 사람들의 경멸을 받는다. “더러운 의자 하나가 철로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건 아이가 섞이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말이다. 여기서 미움 받는 대상은 아이를 품은 나 혹은 아이 자체이다. 상처를 받은 어른과 아이는 밖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이미 터진 것일지도 모른다.

 

강지혜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세상은 해방될 수 없다. 세상은 계속 부풀고 있다. 틈을 찾을 수 없는 건물이어도 오랜 여관 건물은 무너졌고 철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흔들리는 이야기」) 무너진 건물에서 녹슨 철근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노파들은 그들의 무릎처럼 연약하다고 말한다. “사람이나 쎄멘이나 구멍에 바람 들면 폭싹 주저앉는 거여!” 여기서의 노파의 말은 중요하다. 그것이 건물이든 사람이든 세상의 모든 것은 쉽게 주저앉을 수 있다. 비가 고여 동생이 쏟아진 것처럼 말이다. (「방(房)」)사람이나 시멘트나 똑같다고 말하는 노파들 사이로, 아이들은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정강이로 달린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정강이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자신의 그림자에 빠져 죽을까 봐 두려워한다.

 

‘물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건들은 용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서의 주어는 “모든 내가”이다. (「브라질리언 왁싱」) 시의 제목은 브라질리언 왁싱이지만 여기서 쓸모를 다한 것은 음모 하나가 아니다. 나는 익룡, 맹장, 봉기, 침묵, 음모, 쓸모를 다한 것들의 용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자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했던 나는 “최초로 마주한 그림자”가 적인지 쌍생아인지 모른다. ‘나’는 인류가 반복되는 시간까지, 내가 완벽히 제거되는 순간까지 누군가 모든 것이 한 번쯤 존재의 의심을 받는다고 말해준다면 바란다.

 


 

세상이 훔친 기적


 

터지기 직전의 존재, 혹은 이미 터진 존재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을 훔쳐간 범인은 세상이다. 날개가 달리기를 바랐던 소녀들의 기형이 된 것도, 날개가 하나뿐인 천사가 병신이라는 것도, 동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한 아이를 만들어낸 범인은 과연 어른일까. 실제 어른들은 한 때의 아이들이었고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피해자였던 그들은 다시 아이들에게 가해자가 된다. “나는 인류가 반복되는 시간까지 존재의 의심을 받는다.”는 말에서 보듯 가해자와 피해자는 반복된다. 결국 존재들을 훔친 범인은 세상 전체였다. 존재는 세상에서 해방될 수 없으니까. 세상이 훔친 그들의 ‘기적’은 어떻게 될지 강지혜는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터지기를 기다리거나 “내가 완벽히 제거되는 순간까지” 의심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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