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을 인지해야 오늘을 산다 - 도서 "뉴필로소퍼 Vol 9 : 삶을 죽음에게 묻다"

글 입력 2020.02.1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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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피쉬> 속 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마녀의 눈을 통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언제 죽을지 알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항상 용감하고 모험적인 삶을 살았다.


 

당신이 할 일은 삶의 유한함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다.


- p. 87

 

 

<빅피쉬>는 <뉴필로소퍼 Vol 9>의 내용과 많이 닮았다. ‘인생은 너무 짧다’라는 칼럼을 쓴 올리버 버크먼은 인간에게 삶은 두 번 존재한다고 서술한다. 두 번째 삶은 우리에게 단 한 번의 삶만이 주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시작된다고. <빅 피쉬> 속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정말로 마녀의 눈을 통해 본 것이 아닐 것이다.


버크먼의 문장처럼 삶의 유한성을 의식하게 된 것을 마녀의 눈을 통해 상징화한 것이다. 삶의 유한성을 통해 지금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야망이 무엇인지, 가장 의미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 집중할 수 있다. 죽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오늘을 더욱 값이 있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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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곁에 늘 죽음이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으면 젊은 대로 죽음은 먼 훗날의 일이며,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애써 그것을 외면하려고 한다. 찬란한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을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죽음을 외면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언젠가 너무 많이 남은 듯한 인생에 무료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보면서 생각하기도 했다. 몇십번의 봄, 몇십번의 겨울이 지겹지 않을까? 이미 익숙하게 느낀 지 오래된 겨울을, 더 느끼고 싶을까?


인생을 긴 실타래라고 했을 때, 그 중 어느 지점에 있는 자신에게 무기력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만약 당장 내일 죽으면 어떡해? 그럼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마지막 겨울인걸. 그런 생각을 하니 나에게 주어진 현재가 벼랑 끝에 세워진 계절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눈을 감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일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은 현재를 더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엇을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그 일을 해야 한다. 우리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듯이, 관 안에 들어가면 시간이 남아돌지만, 지상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내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충만하게 오늘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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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머리로는 우리 아버지가 영원히 사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 p.71



스토아학파는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 ‘메멘토 모리’를 연습하라고 했다. ‘메멘토 모리’는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날마다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상상하는 일도 포함한다. 이와 같은 상상력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실제로 곁을 떠났을 때 슬픔을 견뎌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곁을 떠난다고 상상만 해도 속이 벌써 뒤틀리고 아프다. 영원한 만남은 없다지만, 지금까지 그 사람과 떨어져 본 적이 없기에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죽음을 상상하고 마음이 철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은 죽음을 목격한 이후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주 어렸을 적,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 죽음은 마치 소설 속 상상력 같았다. 그때도 사람이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소설 속 죽음은 언제나 드라마틱하고 등장인물을 돋보이게 하기도 해서, 어리석게도 그 드라마틱함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죽음을 본 것이 아니었기에 죽음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죽음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은 언제라도 사라질 존재라는 사실에 그 어떠한 상상도 펼치기 싫었다. 그것이 가족처럼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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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자신을 덮치는 순간, 파도에 밀려 몸이 절벽에 내던져지기 직전에야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는다. 마침내 바다가 그를 물자체로 돌려보내는 순간, 끔찍한 환희가 그를 압도한다. 우리는 이것을 ‘숭고함’이라 부른다.

 

 

왜 자연의 웅대함,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무력감이 들어서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자살한다는 말이 아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아모르 파티처럼 자연의 숭고함을 맞이해야 그 뜻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젠가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서 아모르 파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던 시대와 달리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유한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자신의 유한함을 망각하고 계속 정복하려고 할 때 인간은 점점 괴로워졌다.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그런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친구는 말했었다.

 

여행 중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왜 고대에 인간들이 도깨비를 믿고 신을 숭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커다란 자연이 날 압도할 때 스스로 겸손해졌고 마음이 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죽음과 연관되어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그 유한성을 인정했을 때 그 어떤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저 무엇이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겨울을 즐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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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Vol 9
- 일상을 철학하다 -


엮음 : 뉴필로소퍼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철학
문예지

규격
180*245mm

쪽 수 : 156쪽

발행일
2020년 01월 05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586-4760-05-01

*
《뉴필로소퍼》는
1월, 4월, 7월, 10월
연 4회 발행되는 계간지이며
광고가 없습니다.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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