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뉴필로소퍼 9호

글 입력 2020.02.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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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상상하는 것



3,4년 전쯤의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그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가끔 그 장례식을 상상하곤 했다. 상상을 이어나가다 보면 슬프거나 무섭다기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죄책감을 느꼈다. 감히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을 떠올렸다는 게 굉장히 불경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치 그 사람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때의 나였다면 죽음을 키워드로 하는 뉴필로소퍼 9호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사랑'이나 '꿈' 같이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뻔하게 느껴졌다. 구체적인 현실로서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 건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다음이었다. 1년 사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하고 나니, 죽음은 더 이상 모호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인류의 난제, 죽음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죽음은 오랫동안 인류의 난제였다. 죽음이라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철학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뉴필로소퍼 9호는 죽음을 말하는 철학자, 죽음을 소재로 작업하는 사진작가, 시신의 신원을 밝혀 내는 법의인류학자 등 여러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죽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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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모든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이고 그 이후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불확실성은 죽음을 대비하거나 공부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죽음에 관한 철학 강의를 하는 교수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위대한 스승'에서 팀 딘은 고백한다. 죽음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실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또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레이먼드 갓볼드라는 이름의 남자는 고통받지 않고 죽기 위해 불법 자살약을 몰래 구해 두지만, 막상 그것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족과 하루라도 더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한다. 실제 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내가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 죽음은 인류 보편적인 공포이며, 일종의 재앙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죽음이 있기에 존재한다. 올리버 버크먼은 '인생은 너무 짧다'에서 죽음의 그런 아이러니한 측면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000주 정도지만, 그런 유한함 덕분에 우리가 하는 선택에 의미가 생긴다. 죽음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삶은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죽음



죽음은 개인의 삶에서 유일무이한 경험이다. 그렇다고 죽음이 죽음의 순간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기능이 멈추고 몸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순간일지라도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고통의 시간들과 장례식, 그리고 죽는 당사자가 경험하는 건 아닐지라도 장례식 이후의 시간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죽음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죽음은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고, 더 나아가 그 과정을 둘러싼 여러 담론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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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을 둘러싼 과정에 새로운 논란거리를 던져준다. 가장 대표적인 게 존엄사 문제다. 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달한 의료기술은 그 수명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견뎌야 하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는다. 수명과 함께 늘어난 병들고 아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 시간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윤리적인지 '어느 철학자의 죽음'은 묻는다. 또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처럼 생체 기능은 작동하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가 가능해지면서 비교적 명확하던 생물학적 죽음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합의점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죽음은 편도여행만 허락된다'의 패트릭 스툭스는 말한다.

 


죽음은 일종의 행사처럼 바뀌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혹은 허구적 죽음을 언론이나 예술로 표현한 결과물은 관음증을 유발하고, 이전에 마음의 안식을 제공했던 중요한 인식틀(주로 종교에 기반을 두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이 사라졌기에 공허한 것이 되고 있다. 110쪽



의료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죽음을 맞이할 기회는 줄어드는 반면, 대중매체의 발달로 내가 모르는 타인의 죽음을 맞이하는 건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티파니 젠킨스의 '죽음이 전시되는 세상'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쉽게 기삿거리가 되고, 때로는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를 둘러싸고 윤리적 논란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제 우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매 순간 듣지만 정작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이나 내 죽음이 진행되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시간은 생각하거나 말하기를 금기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는 죽음관이 필요하다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방식 역시 수백만 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분류하거나 기계화할 수 없고, 치료 대상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방식대로 행동하면 된다. 102쪽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짧던 시대에 일상에서 죽음은 흔했고, 사람들은 어제까지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집에서 자신의 죽음 또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의 죽음은 삶과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직접 접하기 어렵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해도 이후의 절차는 상조업체나 장례식장에서 정해진 대로 비슷비슷하게 진행된다.

 

작년, 재작년 두 번의 장례식을 경험하며 가장 이상했던 게 이런 점이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장례식은 고인을 기리는 의식이기 이전에 돈이 투입되고 이윤을 남기는 산업이었다. 오늘날 산업이 아닌 분야를 찾기가 더 힘들다지만, 유독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는 장례식에 의문이 생겼다. 결혼식은 식을 올리지 않거나 '작은 결혼식'을 하는 등 개인의 개성과 기호가 반영되어 다양해지는 추세인데 장례식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개개인은 모두 고유하고 그들의 삶도 모두 다른데 왜 장례식은 비슷비슷할까.


그 원인은 죽음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남겨진 사람들은 다른 장례식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혼식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흔하지만 장례식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뉴필로소퍼의 필자들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자주 죽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도 결혼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생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한 단계를 우왕좌왕하지 말고 좀 더 현명하게 맞이하려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 물론 죽음에 정답은 없다. 죽음을 생각하는 건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하는 과정에서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며,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서다.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삶의 가치관만큼이나 '죽음관'을 고민해야 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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