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대한민국의 장녀이다. [사람]

K-장녀로 살아가는 것
글 입력 2020.02.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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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글이다. 트위터의 이 글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장녀들을 울렸고, 밑에는 장녀의 고충을 호소하는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달렸다. 이로 인해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바로  'K- 장녀'인데, 여기서 K는 Korea의 K다. 즉, 대한민국의 장녀들을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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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는 K-장녀다. 엄마도 집안에서 장녀였고, 아빠도 장남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장녀로서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셨다. 처음 저 글을 보고 크게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게다가 글에 달린 댓글은 마치 내가 쓴 것처럼 전부 공감이 가면서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장녀라면 알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장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참고 양보하는 것은 장녀의 몫.


 

내가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네가 언니니까 참아, 동생이니까 양보해야지.” 다. 왜 언니는 참고 양보해야 할까? 언니도 참지 않고 욕심 좀 부리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언니라는 이유로 동생에게 항상 양보하고, 동생과 싸울 때도 내가 참아야 했다. 게다가 동생이 울기라도 하면 내가 양보하지 않은 것이 정말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분위기였고, 하는 수없이 양보를 해야 했다. 동생이 양보하면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하는 건가?

 

사춘기에 들어서고 반항심이 심해지면서,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양보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아이가 되어있었다. 동생은 늘 참지 않아도 그런 말을 듣지 않는데 참 이상하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은 정말 무섭고 효과적이어서, 어느새 나는 항상 양보하고 참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결국 나는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학교나 학원에서도 당연히 참고 양보하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주관이 없고 항상 참고 양보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양보하고 배려한다고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건 없었다. 그저 ‘착하다’라는 의미 없는 단어를 듣을 뿐, 용돈을 더 받거나 소시지 반찬을 더 먹거나 하는 보상 같은 건 없었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다.


 

옛말에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외동딸이거나 상대적으로 딸이 적은 집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면, 대개 장녀가 다른 동생들을 위해 경제적으로 희생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영상을 종종 보면, 과거에 어린 나이부터 공장이나 일터에서 종일 일을 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학교를 보내는데 정작 본인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던 장녀들의 사연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 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원해서 첫째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정작 내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의 향미가 떠오른다. 향미는 남동생을 위해서 본인을 희생했지만, 결국 동생은 등을 돌렸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시선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남아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항상 내가 잘해야 동생도 보고 배운다, 네가 잘 돼야 우리 집안이 산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당연히 내가 잘해서 집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괴상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첫째라는 이유로 나에게 본의 아니게 무거운 짐을 주셨는데, 집안의 경제 상황을 어릴 때부터 알아야 했고 항상 하소연을 듣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항상 집안의 재정 상태를 헤아려야 했고, 죄송한 마음에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면 부모님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이인데도, 내가 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항상 죄송했다. 그에 반애 동생은 항상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말했고, 학원도 많이 다녔다. 집안의 상황이 안 좋아도 부모님은 동생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항상 해맑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동생이 부럽고 좀 얄미웠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 콤플렉스


: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

 

 

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착한 딸로 남아야 했다. 이는 학교를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고 싶어서 내 몫을 양보하고, 내 의견을 뚜렷하게 말하지 못했다. 어떤 물건을 고를 때 자신 있게 내가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고 항상 친구들이 선택하고 남는 걸 골랐다. 점점 나는 그렇게 배려하고 양보하지만 내 취향과 주관이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대학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나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과를 가고 싶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각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니까 무작정 공부를 했고, 그럭저럭 성적에 맞춰서 학교와 학과를 선택했다.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서 부모님은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3학년이 끝나고 도피처럼 휴학을 선택했다. 휴학을 하고 내가 누군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뭘 하고 싶은지 알아보기로 했다. 20년 이상을 그저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지냈던 나는 이제는 이기적이고 나쁜 딸로 살아보기로 했다.

 

 

 

누구의 딸이 아닌, 그저 '나'로


 

휴학을 하고, 조금은 이기적이고 나쁜 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후로, 나는 오직 나를 위해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눈치 안 보고 그냥 했다. 부모님이 말리셔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조금은 이기적일지 몰라도 집안의 사정도 모른 채 했다. 동생에게 좋은 언니로 남는 것도, 동생을 챙기거나 양보하는 것도 그만뒀다. 항상 가족을 배려한답시고 했던 행동도 그만뒀다. 누구의 딸도 아닌, 우리 집의 장녀가 아닌 그냥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첫째는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는가? 똑같은 부모님의 자식인데 왜 부모님을 챙기고 노력하는 건 첫째여야 하는가? 내가 몇 번째 자식이냐에 따라 내 역할을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나’로 살아보자.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 책임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자. 조금은 이기적이고 나쁜 딸이어도 괜찮다. 그냥 앞으로 ‘나’로 살아보자, 내 인생은 나에게 주어진 것이지 다른 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니까. 그 대상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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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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