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오늘도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사람]

가난과 궁핍은 또 다른 나의 이름
글 입력 2020.02.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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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FLEX) 해버렸지 뭐야!


 

고가의 물품이나 충동구매한 것을 자랑한다는 뜻의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뒷일을 생각지 않고 쿨하게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 문장은 래퍼 염따가 Mnet ‘쇼미더머니8’ 출연 당시 유행시킨 것인데 어느 순간 빠르게 전파되어 1020 문화의 중심에 우뚝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어디든 급작스러운 유행에는 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는 법.

 

역시나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의 시선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을 과감히 포기하고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질러버리는 것’으로 해소시켜버리는 플렉스 문화가 현대에 들어와서 대두된 ‘요즘 철없는 젊은이들만의’ 사회적 현상은 아니다. 장대한 인류의 역사 길이만큼 그간의 지나온 시간 속에는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낭비쟁이, 사치쟁이들이 존재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고려의 광종 등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역사 속의 유명인들 역시 어마어마한 낭비벽과 과시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다행인 건 그들의 대다수는 항상 부가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것.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들은 참 풍족하게 잘 살다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소비가 지출을 크게 넘어 버린 탓에 궁핍의 아이콘이 된 안타까운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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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초상화(바바라 크라프트,1819)
이름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출생 : 1756년 1월 27일~1791년 12월 5일
특징 : 역사에 길이 남은 다시없을 위대한 천재 음악가

 


 
3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오스트리아의 가슴 벅찬 자랑거리



베토벤 그리고 바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공식 별명부터가 무려 ‘음악의 신동’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걸출한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인데, 35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곡은 무려 600여 곡이라고. 첨언하자면 이 중 상당수의 곡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음악에 문외한이야~ 모차르트도 그냥 이름만 들어봤지 곡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상 그의 주요 곡 절정 부분을 들어보면 “어? 이 음악!”하며 반가움을 표출할 것이라 자신한다. 어린 시절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로 시작하는 노래를 안 불러본 이가 있을까? 지나가는 아이도 다 아는 이 노래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다수의 명곡과 유명곡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누가 뭐라 해도 21세기에도 여전히 핫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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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궁핍은 또 다른 그의 이름

 

하지만 이런 모차르트에게도 사실 일생 내내 따라붙던 괴로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꽤 많은 자료들을 통해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돈에 쪼들리는 궁핍한 생활을 한 것을 추측해 냈다. 친구 마이클 푸치 버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수시로 돈을 빌린 사실로 재정에 문제가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1789년 5월 16일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많은 박수를 받아 영광스러운 연주회였지만 수입은 엄청나게 빈약하다. (from the point of view of applause and glory this concert was absolutely magnificent but the profits were wretchedly meager)”라는 푸념이 있어 수익을 기대했다 실망한 그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여 그의 가족은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쳐 무려 11번 이상을 이사 다녀야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음악가 역시 살아생전에는 인정을 못 받았던 건가? ‘예술가=가난’ 이라는 공식이 모차르트에게도 적용되었던 걸까? 당시 그의 고정 수입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했을 때 약 4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단 모차르트는 음악가 중에서도 고소득자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나이부터 꾸준히 유명세를 치르며 널리 이름을 알린 덕에 알아주는 이, 불러주는 이 모두 많았기에 쉬지 않고 작곡 의뢰 요청이 들어왔으며 프리랜서 활동 역시 활발했다.

 
이쯤 되면 결론이 나온다. 역시 그의 문제는 소득 금액이 아닌 어마어마한 소비습관이었던 것이다.


고급 아파트에서 거주했으며, 마차와 말, 하인, 그리고 요리사까지 거느릴 정도였지만 너무 흥청망청 쓴 탓에 사망 당시 가족들이 그의 장례를 치를 돈마저 없어 결국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안장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했다. 이 공동묘지는 당시 빈의 극빈자들이 이용하던 곳으로 황실에도 초청되었던 대음악가의 말로 치고는 꽤 초라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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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위치한

모차르트의 묘비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내가 사교생활을 즐겨 돈을 다 가져다 썼다’, ‘알고 보니 모차르트는 도박에 빠져있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모차르트가 주변 인물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느라 본인은 돌보지 않은 것이다’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저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반면 그의 옆에 양대 산맥을 세운 또 하나의 천재 음악가 베토벤은 이와 반대로 돈 관리 개념이 철저했다고 한다. 둘은 작곡 스타일과 외모만 상반되는 것이 아닌 경제 개념도 극명하게 달랐던 것이다. 어찌 보면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음악이라는 요소로 묶여 항상 이름을 나란히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심하게 절제된 소비를 하며 미련하게 참기만 하는 사람을 두고 ‘그렇게 구두쇠처럼 저축만 하면 뭐하냐,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한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는 본인에게도 투자하는 삶을 살라는 소리인데 모차르트는 너무 과했던게 아닐까 싶다. 역시 '과유불급' 이다. 마지막으로 어린 모차르트의 귀여운 일화를 소개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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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모차르트 초상화(작가 미상)
 
 
 
보너스 이야기 : 유년 시절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을 한 모차르트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Qu'ils mangent de la brioche!)라는 희대의 망언으로(사실 이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유명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과거 모차르트에게 청혼을 받은 적이 있다. 빈의 궁에 방문했던 6살의 모차르트가 실수로 넘어지자 당시 7살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도움을 주어 일으켜 준 적이 있는데 한눈에 반해버린 건지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을 당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에서 전했고 더 큰 후에 보자는 회신을 받았다고 한다.
 
엉겁결에 평민이 왕족에게 청혼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인데 꼬마 연주가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응답해준 마리아 테레지아 심성이 참 예쁘다. 이 이야기 역시 전해 내려오는 설이다 보니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못 말리는 사치 습관에 이어 어린 시절의 귀여운 일화까지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어려웠던 이 대음악가가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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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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