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체홉, 여자를 읽다

글 입력 2020.01.3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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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이 대사가 정말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한 방법을 묻는 게 아니란 것쯤은 모두 알 것이다. 형태는 의문이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유지태는 변한 이영애를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사랑은 절대 변해선 안 되는 것이다.

 

저 대사는 너무 유명해서 <봄날은 간다>를 보지 않았음에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직도 안 봤다) 영화가 나왔던 당시 나는 사랑은커녕 구구단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그때의 내게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저 대사는 수수께끼와 같았다. 사랑은 뭘까? 왜 변하면 안 되는 걸까? 근데 왜 변했을까? 어른이 되면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는 유지태가 맞는지, 차갑게 떠난 이영애가 맞는지 판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성인을 훌쩍 넘긴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랑. 너무 어렵다.

 

연극을 보기 전,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사랑에 관해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불륜’이라는 소재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첫 번째 이야기 ‘약사의 아내’까지 유효했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아가피아’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사프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유부녀 아가피아에게서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가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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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남편을 둔 마고(미셸 윌리엄스)가 이웃집으로 이사 온 대니얼(루크 커비)을 사랑하게 되는 게 영화의 핵심 내용이다. 줄거리만 보면 흔한 불륜 영화 같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불륜을 감히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 대단한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고 어떻게 시드는지 덤덤하게 보여준다.

 

연극도 마찬가지였다. 한 발자국 물러서 결혼과 사랑에 얽매인 인간들을 관객들에게 전시하기만 했다. 자, 보세요. 여기 이런 인간들이 있어요. 당신은 누가 옳다고 생각하나요? 한 번 마음대로 판단해 보세요. 라며 누군가가 판을 깔아준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내린 답은 뭐냐고? 모르겠다. 누가 옳은지(그른 사람들은 잘 알겠다), 그래서 불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변해버린 저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유지태가 물었을 때, (안 봤지만) 이영애는 변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사랑이 원래 변하는 거냐고. 아니면 사랑이 아니니까 변하는 거냐고. 많은 사람이 후자라고 믿는 것 같다. 그렇게 믿어야 ‘사랑’이라는 말이 지닌 신성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프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아가피아도, 대니얼을 향해 달려갔던 마고도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확신했다. 그와 자신이 나누는 건 사랑이니까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마고도, 아가피아도 마지막엔 혼자 남겨지게 된다. 도덕적인 비난도 불사하고 선택한 ‘진정한 사랑’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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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세 여자가 기차표를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명확한 목적지를 대지 않음으로써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벗어나려고 한 현실은 가부장제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욕망을 강하게 억압한다. 연극은 총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그중에서 남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남편의 시야 밖에서 몰래 욕망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이야기 ‘약사의 아내’에서 주인공인 약사의 아내는 엄청난 지루함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젊은 군 장교들이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자 환희를 느낀다. 남편은 자고 있다. 마음껏 욕망해도 된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교들을 유혹하고 장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유혹에 넘어간다. 짜릿한 일탈의 결말은? 남편이 깼다. 장교는 도망갔고, 자신을 잃은 채 약사의 아내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지루한 삶만 남았다. 아내의 허무한 표정이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욕망은 단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 ‘아가피아’와 네 번째 이야기 ‘소피아(불행)’에서 아가피아와 소피아의 욕망은 성욕도, 잠깐의 일탈도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다. 나는 현실에서 불륜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에 질색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랑을 응원하고 있었다. 불륜을 옹호하는 것도, 상대가 배우자보다 더 좋아 보여서도 아니었다. 아가피아와 소피아가 행복해지는 길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역시 허무하게 무너졌다. 남자들은 모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가피아와 소피아를 외면했다. 제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랑도 가부장제의 벽을 뚫기엔 너무나 약했다.

 

연극은 여자들의 욕망을 조금도 이뤄주지 않았다. 나는 그 결말이 원망스럽기는커녕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사의 아내가 장교와의 일탈에 성공해도, 아가피아가 사프카와 사랑을 이어나가도, 소피아가 남편의 친구와 떠난다고 해도 그녀들은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들을 사랑하지도, 주체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장교에게 약사의 아내는 성욕의 대상에 불과하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바람둥이 사프카에게 아가피아는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이다.가장 진정한 사랑처럼 보였던 ‘소피아(불행)’ 속 남편의 친구마저도 소피아를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그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만 취해있었다.

 

남성의 구원으로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들이 향한 곳은 기차역이었다. 누군가는 그 발걸음을 비겁한 도망이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의지라고 말하고 싶다. 가정으로 돌아가지도, 또 다른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지도 않고 홀로 당당하게 기차에 오르는 그 발걸음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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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언급하지 않은 게 있다. 세 번째 이야기 ‘나의 아내들’이다. 유일한 남성 주인공인 라울이 자신이 아내 7명을 죽인 이유를 얘기하는 게 주 내용이다. ‘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했지만, 이야기의 톤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살해하는 순간을 묘사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살해의 이유가 너무나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라울은 아내가 귀찮아서, 감정 기복이 심해서, 노래를 많이 해서, 지나치게 똑똑해서, 파티를 즐겨서, 시인과 바람을 피워서, 본인이 장모를 죽이려다 실수해서 살해한다. 연극을 보면서 라울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이렇게 살인을 거듭하면서도 왜 계속 결혼을 하는 건데?’ 답은 알고 있었다. 남성에게 순종적인 아내란 얼마나 완벽한 존재인가. 라울에게 아내는 동등한 인격이 아니라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 도구가 자신을 인간이라고 알리는 순간, 라울은 망설임 없이 살해했다. 과장된 코미디 뒤에 숨은 본질은 무척이나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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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 얘기로 돌아오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유지태가 물었다. A가 답했다. 원래 사랑은 변하는 거야. B가 답했다. 사랑이 아니니까 변하지.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구구단은 한참 전에 뗀 나는 고민 끝에 기권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어서 변하는 것도 봤고,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유통기한이 다했거나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것도 봤다. 드물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도 봤다.

 

어렸을 때 내게 결혼은 사랑의 맹세였다. 그런데 살면서 만난 수많은 부부 중 진정한 사랑이 느껴지는 부부는 몇 쌍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조건은 상대방을 대상이 아닌 인격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 속 아내들은 남편에게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어떻게 사랑에 지배와 복종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연극에서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은 건 남편이나 불륜 상대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녀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집에서 나와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제부터 본인이 정한 인생을 살기로 한 그녀 자신이다. 기차에 오른 순간, 그녀들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었다. 기차가 출발한다. 그녀들은 점점 이전에 살았던 집과 멀어져간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신을 향한 애정은 더욱더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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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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