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트렉다움에 관한 고찰, 툴루즈 로트렉展

글 입력 2020.01.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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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jpg

 

 

프랑스어로 빨간 풍차를 뜻함. 파리 몽마르트에 있는 카바레. 캉캉. 그동안 물랑루즈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고작 이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개념 하나를 생각했을 때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선명한 이미지로 뇌에 출력되어 나온다는 점과 하나의 장소가 바로 한 사람의 이미지로 통한다는 점은 어쩌면 위대한 일이다. 생각을 더해볼수록 아주 뚜렷한 상징성을 겸비한 이 위대함은 그 인물에 관한 궁금증을 내 뇌에 한겹 더 덧대는 듯 했다.

 
결론은 로트렉이 더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얼마전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툴루즈 로트렉전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로트렉의 회고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후 ‘최초’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남다른 의미에 끌렸던 것은 전시를 하루 빨리 찾아야 했던 당연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한 사람이 문득 알고 싶어졌던 순수한 호기심에 오랜만에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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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의 작은거인, 로트렉.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전 교양수업 시간이었고 이후 기억속에서 뿌연 안개가 될뻔했던 그를 다시 끄집어 올린 것은 최근 읽었던 화가들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로트렉의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던 무렵, 오랜만에 미술작품을 보고싶다는 갈증이 함께 포개지던 그때쯤, 때마침 알게 된 그의 전시는 ‘이건 무조건 가야돼’ 쿠폰을 써야할 절묘한 타이밍과도 같았다.
 
전시장을 들어선 후 빨간 커튼을 두손에 가득 실은 설렘으로 힘껏 열어젖힌 후 마주한 빨강으로 도배된 벽과 흘러나오는 흥겨운 캉캉 멜로디는 아주 성공적인 전시 도입부였다. 이제껏 관람해왔던 전시는 첫 섹션이 시작되는 동시에 작품감상의 공간에 바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 로트렉 전의 테마는 본격적인 관람 전 예술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최고의 에피타이저로 시작되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함께 동행한 독일 친구와 전시장의 창문 양쪽에 서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던 것은 마치 예술의 공간 속에서 우리도 하나의 작품이 된 듯한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여담으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독일에선 로트렉을 툴루즈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어 입장한 또다른 공간에선 실제로 빨간 풍차와 몽마르트의 거리의 카페들이 즐비하고 있어 물랑루즈의 향기를 제대로 흠뻑 맡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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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전 7개나 되는 섹션을 모두 관람하려면 꽤 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겠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로트렉에게 늘 친구와도 같았던 연필드로잉에서부터 시작해 그가 남긴 수많은 포스터까지 오는 과정에서 솔직히 말하면 아주 큰 감흥은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전시장을 나올 때 미묘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분명 시간에 쫒기며 작품을 관람했던 상황도 아니었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머리와 마음이 꽉차 무겁지만 행복한 기분이 드는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의 드로잉에서 로트렉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순간을 묘사하는데 있어 뛰어난 실력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다른 느낌은 읽어낼 수 없었다. 이후 여러 섹션을 거쳐 관람한 그의 또다른 작품들을 보며 '로트렉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동일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여럿 존재한다는데서 그에게 작품 속 사람은 어떤 의미였을지, 또한 그 사람에게 로트렉은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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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전시관람이 끝난후 아쉬움을 지울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처음 전시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혹은 내가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더욱 풍부한 지식과 함께 동반해야했던 것일까 고민하며 여러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기도 했다. 일단 기대가 달랐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로트렉의 작품들은 유화작품들이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대부분 그의 드로잉과 포스터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유화작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한번 더 깨달았고 로트렉의 색다른 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어쩌면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당시 사람들의 엄청난 경쟁에 불을 지피게 했다던 그의 수많은 포스터를 보며,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포스터라는 말에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포스터의 독창성을 탐구해보는 나만의 시간도 가져보았다.
 
포스터의 핵심글귀를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배치할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에 대한 보답으로 탄생한 각 작품의 개성, 로트렉이 하나의 포스터를 완성하기까지 걸린 평균 작업시간, 그의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큰 특징 중 하나인 뚜렷한 색채대비 등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물밀듯 찾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포스터를 관람하던 중 옆에 있는 분이 '이 작품 속 사람은 아까 본 작품에 나왔던 그여자네'라고 말했던 것을 우연히 들은 후론 작품 속 인물에 더욱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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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의 단조로움 속에서 노란색이 주는 선명한 대비, 그리고 캉캉 춤을 추고 있는 제인아브릴과 그녀를 보는 악사의 시점이 동시에 그려진 포스터를 통해 당시 캉캉 춤의 대가인 그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던 동시에, 로트렉에게 제인아브릴의 화가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전시장에 여러 점 있었던 작품 속 중요인물이자 검은 챙모자에 다홍색 스카프가 매력이었던 브뤼앙이 당시 인기몰이 샹송 가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통해 본 무뚝뚝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브뤼앙은 로트렉에게 소중한 은인이자 다정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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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에 관한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로트렉의 포스터가 너무 앞선 형식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한 카바레 주인에게 항의하며, 그의 포스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한브뤼앙을 예로 들수 있다. 또한 그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로트렉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노래를 멈추고는 "여러분 여기 위대한 화가이신 툴루즈 로트렉이 오셨군요"라고 로트렉을 환영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로트렉다움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비롯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 이 단어가 떠올랐을땐 그저 그의 작품에 대한 총체적 느낌의 일부분으로 단정지었지만, 그의 작품과 이야기를 조금씩 더 알아나간 후 그것은 로트렉이라는 한 사람을 반영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하나의 전통이었던 귀족간의 근친혼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다리뼈가 약한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부러진 다리 뼈가 더 이상 성장을 멈춰 키가 152cm에서 멈췄다. 귀족체면을 유독 중시했던 그의 아버지는 로트렉을 외면했고 이후 로트렉이 물랑루즈의 문란한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걸 보고 가문의 성을 쓰지 말라고 단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배경 속에서도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더욱 단단해졌고 슬픔과 고독을 유쾌한 성격으로 승화시켰다.
 
Everywhere and always ugliness has its beautiful aspects;
it is thrilling to discover them where nobody else has noticed them.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 구절은 그가 당시 사회상을 비판하는데 있어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과 거침없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있어 따뜻한 눈길을 항상 잃지 않았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당시의 여배우나 매춘부들을 편견없는 시선으로 바라봤던 로트렉.
 
사회라는 큰 공간이자 시간에 편승하지 않으며,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자신의 신념으로 굵은 획을 그을 수 있었던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되어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리뷰에 어떤 말을 써야하는지 한참을 기웃거리며 행복하지 않은 결말의 엔딩크레딧을 본 것같은 감상에 젖어 전시장을 나왔다. 하지만 지금 로트렉다움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내 생각과 경험에 비추어 정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로트렉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 또한 뜻깊고 감사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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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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