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칼렛 오아라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 [도서]

오아라, 노아, 김순옥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1.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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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작가의 ‘스칼렛 오아라’는 자칭타칭 속물이라 불리는 가난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오아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오아라 외에도 노아, 김순옥 등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가치관과 욕망을 내밀히 들여다본다. 이번 오피니언에선 오아라와 노아, 김순옥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아라 배경.JPG



이승민 장편소설 『스칼렛 오아라』. ‘오아라’는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이십대 후반의 가난한 무명작가로 미모와 필력을 겸비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짜증나도록 욱신거릴 뿐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그리하여 오아라는 과외하는 학생의 아버지이자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원장인 김중권을 유혹하기로 하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오피스걸이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는 넷. 코스프레 페티쉬가 있는 남자 A, 마조히즘의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 B, 사모님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생활하는 동갑내기 노아, 이혼 후 오아라와의 소박한 생활을 꿈꾸는 KY성형외과 대표원장 김중권이다. 오아라는 낮에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고, 밤에는 스칼렛이 되어 여러 명의 남자들을 상대하는 이중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온갖 럭셔리 브랜드 광고가 다 들어간다는 <더 피플>지로부터 화보성 인터뷰 제안을 받고,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작가로 발탁된다.

 


 

오아라의 이야기


 


마인더숍에서 봤던 벤틀리의 뒷모습, 훔치고 싶은 디올 백, 청담파라곤의 웅장한 정문, 김중권의 BMW 가죽시트, 겐조 옴므의 향기, 로열 코펜하겐 찻잔.


오아라는 자신에게 진정한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는 대상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물···. 한데 속물이 뭐 어때서.


 

오아라는 지방지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이십대 후반의 여성 작가다. 평범한 작가의 삶이 그렇듯, 그는 여전히 가난과 마감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꿈’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책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가 원하는 건 미모와 필력을 겸비한 채 청담파라곤에서 살고 가로수길과 한남동 라이프를 즐기는 삶이다. 그가 좋아하는 샤넬, 디올 등의 명품을 가격표 따윈 보지 않고 사는 삶, 연예인에 버금가는 셀러브리티과 되어 모든 여성의 동경을 받는 삶.


하지만 신은 야속하게도 오아라의 꿈을 들어줄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그나마 오아라의 생계를 지탱했던 신춘문예 상금은 어머니의 병원비로 다 썼으며, 계약한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전화가 울릴 뿐이다. 그래서, 결국 오아라는 오피스걸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오아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 대상인 속물, 오피스걸 등의 수식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아라를 함부로 욕할 순 없다. 궁지에 내몰린 삶을 택한 건 오아라가 아니었을 뿐더러, 허황된 꿈에 대한 절망감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상실감을 갖게 한다. 돈에 쫓기는 삶에서 최대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피스걸 활동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던 오아라에게 돈이 주는 달콤함 또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가난하면서 명품을 좋아하는 것은 죄가 됐지만, 돈 많은 사람이 명품을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오아라에겐 명품을 좋아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돈’의 가장 큰 매력이었으리라.

 


 

노아의 이야기


 

캡처.JPG

 

 

노아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상처를 품에 안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호스트바’로 일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게 그의 선택이 아니었듯, 노아의 삶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모님들과 동거녀 김순옥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 뿐이었다.

 

그런 그가 주체적으로 바뀐 계기는 ‘오아라’였다. 자신처럼 몸 파는 일을 택한 오아라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다가, 오아라와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오직 가족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친밀함을, 오아라에게서 느낀 것이다.


노아의 인생에서 결핍돼 있던 ‘주체성’이 발현되자, 비로소 노아는 행복해진다. 돈보다 우선되는 가족애를 드디어 찾았기 때문일까. 평범한 사람들에겐 당연했던 것이 노아에게만 당연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당연하지 못한 사람으로 편입돼 있는 현실에, 그는 더욱 주체성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김순옥의 이야기


 

오아라는 돈, 노아는 주체성이 결핍돼 있었다면 김순옥에겐 자존감이 결핍돼 있다. 그는 오아라의 미모와 편집장 윤석향에게 인정받는 필력을 은밀히 부러워하다가 이내 집까지 몰래 들어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김순옥이 열등감을 느끼는 상대는 오아라 뿐만이 아니다. 그는 편집장인 윤석향과 그의 아내를 보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한다. 그저 열등감을 표출하는 감정이 저마다 달랐을 뿐이다.


오아라에겐 무시로, 윤석향에겐 애증의 감정으로, 윤석향의 아내에겐 은밀한 동경으로 나타났다. 낮은 자존감과 평범한 타인에게서 느낀 은근한 열등감은 왠지 모를 공감을 준다. 김순옥의 행동이 추접해 보이면서도 이해가 가는 이유다. 그래서 김순옥을 마냥 미워할 수 없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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