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 아이디, 패키지, 잡 "디자인 매거진 CA#248"

디자인 매거진 CA#248
글 입력 2020.01.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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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디자인을 보는 창


 

디자인 매거진인 만큼 눈앞에 보이는 전면의 시각 기호들이 매력적이다. 이미 표지부터 마음을 빼앗겼다면, 표지를 넘기는 순간 이들의 매력에 더욱 빠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의 디자인을 보는 창’을 캐치프레이즈로, 세계의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생각 그리고 통찰력을 담아낸다. 매거진 내부 텍스트는 필드에 있는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본 적 없고 간 적 없는 곳의 애니메이션 작가, 타이포 디자이너가 되어본다.

 

시각적 즐거움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매거진을 빠르게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속에 있는 영감이 마구 꿈틀댈 것이다. 문단마다 지그재그로 배치된 텍스트, 선명한 이미지, 깔끔하고 정확하게 들어오는 레이아웃. 중간중간 등장하는 광고마저 감각적이다. 연 6회 발행하는 이 매거진은 2020년 1-2월 호로 벌써 248번째를 맞이한다. CA #248은 아이디어Idea, 패키지Package, 잡Job 세 가지 테마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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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정은 길 찾기다"


 

내게 미술을 알려주셨던 선생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이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길, 때로 길조차 없는 허허벌판 위에서 방향을 선택하는 일. 이 모든 과정들이 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표현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 곧 작업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비단 미술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순수미술과 디자인은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되지만, 생각을 시각 언어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동일시될 수 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어디에 종착지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디어IDEAS 섹션에서는 권준호, 양선희, 정규혁, 짐 서덜랜드 등 7명의 디자이너가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는가’ ‘최고의 아이디어를 키우는 방법’ ‘최고의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회화는 ‘시’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함축적이고, 알 듯 말 듯한 메타포로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계속해서 알고 싶고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반면 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하는 디자인은 이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디자인 스튜디오 벡스터&베일리의 공동 창업자 맷 벡스터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아이디어만이 대중에게 큰 감명을 안겨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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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에이전시 코제트가 만든 ‘아치를 따라가세요’는 맥도날드 로고 일부를 잘라 시각 언어를 만든 것으로, 간단한 형태와 색채만으로도 메시지 전달이 탁월하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초반에 떠오르는 컨셉 자체를 아이디어라 할 수도 있고, 그 컨셉을 끌어나가는 방향을 아이디어라고 할 수도 있다. 두트폼 공동 창립자 양선희는 ‘기발하다는 말은 새롭거나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말 대신, 기발하게 표현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는 우리를 항상 새로움으로 놀라게 하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AMV BBDO는 북태평양 국제 해역에 있는 프랑스 크기의 쓰레기 섬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쓰레기 제도’ 광고를 위해 국기, 여권, 화폐를 디자인해 선보였다. 디자인이 가진 문제의식과 기발한 아이디어(또는 기발한 표현)은 이렇듯 갈등 속에서도 긍정적인 힘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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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실천이 제작한 2019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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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V BBDO가 디자인 한 '쓰레기 제도'의 화폐, 국기, 여권, 우표

 

 


사공이 2명을 넘어가면 그 배가 침몰한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이디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효과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마지막 실천까지 끌어나가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학교 팀플이나 외부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디자이너들의 고충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디만 일방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요구대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디자이너들은 스스로의 존재가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가 아닌 시키는 대로 만들어내는 기계와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일상의 실천 권준호와 두트폼 공동 창립자 양선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종종 돈을 냈으니 원하는 대로 무조건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대표님의 취향을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디자이너를 협업자가 아닌 을로 대하는 나쁜 태도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업자이다. 타협이 아니라 협업해야 하는 관계이다. 디자이너는 순수예술가가 아니고, 클라이언트는 돈 주고 사람 부리는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특히 의견을 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존 아이디어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아이디어 오너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공이 2명을 넘어가면 그 배는 침몰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와이든 케네디의 수잔 호프만은 말한다.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죠.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의 머리에서만 나왔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해 탄생합니다. 물론 아이디어 구상에 관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니 적합한 사람만이 관여해야 하는 것은 맞겠지만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시도하며 팀 내의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감각으로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몸으로 경험하고 체득한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통해, 적절하고 균형 잡힌 거리를 유지하는 법도 배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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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 먼저, 디자인이 먼저?


   

‘디자인’이라고 했을 때 내가 떠올리는 것은 포스터나 웹 디자인 같은 시각물과 유려한 곡선을 가진 가전제품이 전부였다. 실제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은 단순 형태와 기능을 고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브랜딩, 마케팅, 색채, 영상디자인,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 다양한 지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조금 진부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눈을 떠서 물을 마시고, 신발을 신고, 식재료를 사고, 버스를 타고, 하루 일과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에는 디자인이 스며 있다.

 

특히 음식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며, 적어도 3번 이상은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바쁘거나 요리를 하기 귀찮을 때는 간단한 과자류를 사 먹기도 하는데, 가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디자인의 향연이 펼쳐진다. 맛보다 특정 브랜드의 로고나 디자인 또는 포장재의 형태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디자인 에이전시 엘름우드의 디렉터 헬렌 하틀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라든가, 각종 심리 상태를 유발하는 기호들이 보다 더 큰 역할을 합니다. 모든 감각의 채널로부터 입력되는 신호들이 섞이면서 감정이 유발되죠. 그러니 브랜딩 작업에서 해야 할 건 감정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음식을 감성적으로 구매하는가?라는 의심부터 걷어내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서 와, 취업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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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그리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유용하면서도 꼭 알아내고 싶은 것은 ‘어떻게’다. 어떻게 내가 배운 공부를 잘 녹여내어 더 큰 프로젝트로 이어나갈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팀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쌓아나가야 하는지.

 

이 섹션에서는 조금 뻔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것들에 대해 써 내려간다.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킹, 경험을 쌓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툴 사용 능숙도를 높이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외부 활동 또한 중요하다. 나 또한 전시 기획을 준비하며 돈 문제, 의견 취합 등 다양한 문제들로 막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예술가들의 작은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내 프로젝트에 대해 말한 뒤로 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공간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는 이들이 있었고, 흥미로운 주제라며 연락처 교환을 요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시 기획에서 공간 대관료가 가장 지출이 컸는데, 이 작은 모임으로 인해 우리 팀은 무료로 공간을 빌릴 수 있었고, 재미있는 홍보 영상 프로젝트도 함께 했다. 채용 공고나 공모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네트워킹을 통해 직접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권수진 디자이너는 이력서만 보내고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회사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포지션의 사람들에게 직접 포트폴리오를 보내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이메일이 묻힐 가능성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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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전시회 포스터 

 


물론 이 조언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스튜디오 int 대표 이재민은 너무 이해타산적인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신인이든 시니어든 좋아 보일 리 없다고 말한다. 회사에 직접 연락하여 보낸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당차 보일 수도 있으나, 오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취향의 폭이나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조언하면서 본인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반면 권수진 디자이너 말대로 전문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너무 세분화되어 있는 업무를 다 배울 수 없으므로 대학 때 했던 과제들을 떠올리며 본인이 가장 재밌어하는 일을 알아내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전문화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았고, 본인과 어울리는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의 조언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되,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맞는 것,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될 법한 것을 추려내어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속에서 본인이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고, 후에 당신이 이런 매거진에 몸이 기억하는 것들을 풀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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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Idea, 패키지Package, 잡Job 세 개의 큰 주제 이외에 디지털 플랫폼과 디자인, 전 세계를 위한 타입 디자인 등 작은 기획 기사 글도 흥미롭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설을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퍼스트아베뉴머신은 페이스북과 손을 잡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패터슨의 신작 소설 <더 셰프>를 메신저에 옮겨 놓았다. 국내에서는 밀리의 서재 또한 이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2020년 3-4월 호 CA#249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디자인에서의 미학, 왜 중요한가?’ ‘강연과 연설의 기회,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 ‘모노타입의 창작 공장 방문기’ ‘대중시위와 컬러’ 흥미로운 주제만큼 또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글을 읽고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샘솟았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이라는 다큐멘터리 또한 추천해본다. 의상, 자동차, 신발, 타이포, 무대, 건축, 인테리어 분야의 디자인 이야기를 이번에는 영상 이미지로 넘겨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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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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