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여행자의 천명, 이별에서 살아남기 [여행]

글 입력 2020.01.2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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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답이 없는 사람이다. 길치에 조심성 없고 사람 잘 믿고… 그런 주제에 사람을 좋아하고 말이 많으니, 여행 내내 문제가 끊이는 날이 없었다. 주변에서 ‘여행의 신이 저주를 내린 것 같다’라는 평까지 들었을 정도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트러블 트래블(trouble travel).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1년이 넘게 여행을 하고 오장육부 무사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호시탐탐 다시 나갈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였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고 싶게 만드는 걸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 여행에 대해서, 거기서 깨달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트러블 트래블: 여행자의 천명, 이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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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이 열어준 깜짝 생일파티.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 속 미소가 행복해보이는 만큼, 딱 그만큼 헤어지고 힘들어했다.

 

 

누군가 나에게 여행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내게 여행은 사람이었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것도 사람이었고, 힘겨운 여행을 지속하게 만들었던 것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었다. 여행자라는 신분 때문에 내가 맺는 모든 인연엔 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처음 만나서 알아가고, 친해지고, 애정을 느끼고, 유대감을 쌓아가고…그 다음 수순은 늘 이별이었다. 장기여행자라서 그나마 일정을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을 더 있는다 할지라도 내가 떠나야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으니 말이다. 여행 중에 나는 누군가를 애정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자마자 이별을 받아들여야했다.


그리고 그 이별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하나가 다 나에겐 슬픔이나 아픔이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헤어져야한다는 게 너무 슬펐고, 지구 반대편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높은 확률로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아프기까지 했다. 만약 우리가 먼 길 돌아서 다시 만난다고 할지라도 서로의 상황과 입장이 달라지면 지금과 같은 관계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심지어 개중에 몇몇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바디랭귀지와 번역기로 소통을 했었기에 헤어지면 더 이상 연락을 이어갈 방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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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날 정도의 호의를 베풀어준 이들을 만난 아마시아를 떠나 도착한 트라브존에서의 일출.

이렇게나 황홀한 일출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고, 단지 허망함에 몸서리칠 뿐이었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온 다음에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까지 외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특히나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터키를 떠나왔을 때는 거의 1주일간은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전화를 하거나 글로 마음 정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겨우 그 상태를 벗어나고 나서도 약 3주간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한 느낌을 지워내지 못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여행과 맞지 않는 사람인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데 내게 헤어짐은 너무 아팠으니까. 실제로도 터키에서 만났던 한 여행자는 내게 “헤어짐은 여행가의 천명”이라며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인연들에 그렇게 의미를 두지 말라고 말했다.


나라고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의 한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여행자’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나 나를 환대해줬던 것일 가능이 크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나 사랑한 이유가 내가 여행자라는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기댈 곳 없이 홀로 떠도는 여행자에게 사람들의 정이란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짧게 만났기에 아직은 서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고 그랬기에 이토록이나 사랑스러울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고 어떻게 인연들의 의미를 축소해보려고 고민을 해도 결론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고 사랑해줬던 사람들에 대한 더욱 큰 애정과 감사로 끝이 났다.


이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고민해봤다.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선 정녕 이별에 익숙해져야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사랑하되 아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그러다가 문득, 저 질문 자체가 모순이며 사랑을 한다면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괴로움의 이유는 사랑이었다. 많이 사랑했고, 사랑받았기에 나는 그렇게 괴로운 거였다. 이별에 익숙해지고, 이별이 아무렇지 않아진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별에 익숙해진다면 그때야말로 여행을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쉽지도 않았던 여행, 내가 괴로워할 만큼 소중하고 애틋한 것들도 더 이상 없다면 굳이 지속할 의미도 없으니 말이다. 원체 미련 가득하게 타고난 내게 사랑했던 것들은 뒤에 남겨놓고 앞을 보고 달려가는 것은 맞지 않았다.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충분히 아파하고, 아쉬워하고, 그렇게 보듬어주고 나아가는 느리고 쉽지 않은 방식이 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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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친구 나디아. 스쳐가는 인연이라 생각했으나, 우크라이나에 갔을때

자신의 집에서 일주일이나 머물게 해줬다. 지금은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하나. 여행자의 인연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인연에 의미를 두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여행과 인연에 의미를 두고 아파하는 여행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후자를 고른지 얼마 되지 않아,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인연들은 아예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줬다. 바로 ‘인연에 의미를 두면서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에 웃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수많은 인연으로 가득 찼던 터키와, 그에 대한 외로움에 몸부림을 쳤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2년차 여행자 프레야는 이런 내 고민에 웃으며 ‘지구는 생각보다 좁다’고 말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네 마음 잘 알겠고, 너무 예쁜 마음이지만 헤어짐에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인연이라는 것은 참 기묘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던 인연도 이 좁은 지구에서 돌고 돌다보면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다시 마주치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말 우습게도 나도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하게 됐다. 저 말을 했던 당사자인 프레야를 약 3달 뒤 불가리아에서 다시 만났고, 아제르바이잔에서 함께 어울려 놀던 우크라이나 친구 집에 정말 우크라이나에 들렀을 때 머무르게 돼서 함께 어울렸다. 우크라이나에서 연을 맺게 된 알래스더와 루마니아에서 다시 마주쳐 남은 일정을 함께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3년은 뒤에 다시 찾게 될 거라 생각했던 터키에 여행 막바지에 다시 들러, 눈물의 이별을 했던 친구들과 다시금 상봉했다.


이 일 외에도 우연히 말을 섞게 된 리투아니아 사람이 알고 보니 대학동기의 친구인 데다가 심지어 그 사람의 절친은 고등학교 친구의 절친이었다거나, 나를 호스트 해줬던 사람이 또 다른 친구를 호스트해주는 등. 상상치도 못했던 인연들이 엮이는 일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인연들을 충분히 소중히 여기고 아끼면서도, 이별에 아파하면서도 초연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 당장 헤어져야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아쉬워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에 웃을 수 있는 관계. 여전히 헤어질 때는 눈물을 보이기 일쑤고, 그리움에 몸서리를 치지만 그래도 이제는 웃으며 장난스런 인사말을 건넬 수 있게 됐다.

 

"See you somewhere in the world!"


사랑했고, 사랑해줬던 당신들께 충분한 감사를 표하며, 바라건대 이 지구 어딘가에서 다시 한 번 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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