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성 중심의 포르노그래피요소를 여성의 눈으로 보기: 야한 영화의 정치학

야한 영화는 남자의 것이다, 사회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글 입력 2020.01.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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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 담긴다. 혹은 예술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이미 논의되고 있는 문제를 지지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문제와 관련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것마저도 의도이다. 제작자의 가치관이 담겼으므로.


영화는 그런 가치관들을 기반으로 관람객에게 여러 갈래로 생각의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영화평론가 작가의 책 역시도 역사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을 병렬하여 놓고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시대에 따라 성적 표현과 상징성은 변모한다. 따라서 ‘야한’ 영화도 변화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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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6)

 

 
1장에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피임지지운동과 참정권 등에 대한 논의가 커지면서, 여성, 동성애 등 마이너리티 이슈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아니러니하게도)무성영화들에 대하여 소개한다. 2장에서는 혁명의 흐름, 1960년대에 가치 전복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3장에서는 1970년대 영화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유신정권 등 억압과 규제 아래서 펼친 저항의 담론으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저항 이후 패배주의까지 좌절하기도 한다. 반면 미국은 영화등급제가 시행됨에 따라 우후죽순의 검열이 사라져 이전의 행태를 고발하는 시나리오를 주축으로 한다. 이러한 사회상에 성을 투여한 담론적 영화계를 살핀다.

4장에서는 여성 소비주의의 연속성과 착취적 형태를 돌아보면서, 도구로써 여성이 어떻게 1980년대에 조명되고 고착되었는지 본다. 프랜차이즈 형식이 영화에도 접목이 되면서, 흥행하는 영화를 시리즈물로 제작했는데 에로티시즘에서는 한국의 <애마부인>이 대표적이다.

5장에서는 1990년대이다. 비교적 여성 감독이 많아져,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여성의 욕망을 그리거나,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여성이 이야기의 대표 서술자가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성적 타자화에서 벗어나 흐름에 탑승하기 시작한 에로티시즘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2000년대 이후 ‘혁명으로서의 섹스 그리고 에로티시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섹스는 단순한 성적 욕망의 발현을 벗어나, 혁명으로 가치를 전복한다. 유희의 성만을 그렸던 과거와 달리 더 넓은 범위의, 이분법적 성에 대한 현실의 차이성을 진솔하게 그리는 영화들이다. 작가가 이 책을 엮게 된 이유와 우리 시대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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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8)

 


"영화 속 섹스는 때로는 저항과 혁명의 기제로, 자유의 암시로, 그리고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 쓰이며 성적 엑스타시의 재현 수단을 초월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의 군정권은 하층과 노동계급의 실상을 영화에 재현하는 것을 집중으로 규제했기 때문에 자극적인 성인물의 외형으로 감추었다. 호스티스라는 장르로 노동계층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성과 노동 착취 사이에 시대상을 숨겨 그려냈다. 결과적으로 네크로필리악한, 남성의 포악한 성적 발현의 대상으로 무기력하게 공격당하는 여성 서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도덕적 검열로 여성의 적극적 성적 욕망 표현은 제지했다.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소개하며, 작가는 당시 영화 포스터가 가진 구도에 대해서 말했다. 여성의 알몸을 중심으로 가학적인 문구를 성기 주변에 배치했다. 이러한 카피는 ‘성녀 구도’를 바탕으로 희생하는 여성을 당연시하는 사회 흐름을 주도했다.

여성을 쾌락을 위해 시각화했으나, 과거시제로 표현하여ㅡ예를 들어, 영화제목 중 <모두가 사랑했던 영자>가 있다.ㅡ 공공영역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에로티시즘이 가미되지 않은 영화들마저 여성캐릭터의 신체를 시각화하는 형식의 포스터를 유행시켰다. 이것이 관습이 되고, 아직까지도 잔재가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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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묘녀> (1984)


 
그러나 영화 <묘녀>의 경우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영화학자 로빈우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가져다주는 존재는 처녀귀신, 구미호 등이다. 즉, 현실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인 유색인종, 여성, 하류층, 동성애자 등인 경우이다. 이들은 사람이 아닐 때가 되어서야 권력을 가진다. 사람으로서 절대 누리지 못할 권력이다.

영화 <묘녀>는 여성의 타자화와 권력의 전복을 위한 공포 역할을 배정받은 여성 두 가지 모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스토리의 시작은 역시나 복수지만). 남자 주인공 ‘훈’은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두려워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반면 스크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는 성적 욕망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탐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 욕망이 복수의 도구, 여성이 가진 유일한 공격성, 무기로 치부되어 괴물성을 구축하는 요소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묘녀>에서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첨가되어 고양이가 저주인형이 된다. 물론 ‘마녀-고양이’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도구성을 고려해본다면 손꼽히는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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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의 연대기> (2018)

 

 
제일 재미있었던 말은, 그 시대마다 다른 검열이 법과 문화가 충돌하는 마찰의 순간에도 영화예술의 폭을 넓혀주는 새로운 표현으로 생산의 기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민주주의에서 고전적인 법의 큰 틀은 잡힌 상태에서 의의가 제기되면 기존 법을 수정하고 추가하는 형식이다.

20세기에 여성과 아동이 당하는 가정폭력을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으로 확장했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의 감독, 김보람은 21세기에 생리 또한 공적영역으로 들여놓을 것을 투쟁한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는 2020년 현재, 페미니즘의 고전이 되었으며 생리대 기부 운동의 큰 축을 건설했다.

인류의 반이 생리라는 과정을 겪음에도 대한민국은 생리보다 몽정에 관대함을 가지며 몽정은 남성의 전유물로 통용되는 상식선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생략된 성 교육은 너무나도 광범위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김보람 감독은 여성의 선택권과 본인의 몸에 대한 알 권리에 대해서 유쾌하게 연대하고자 한다.

김보람 감독은 이후, [생리공감]이라는 책을 추가로 발표하며 생리에 대한 죄의식을 심은 남성중심 사회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을 태어나게 한 이 피가,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생리, 그리고 성 구분의 공적 영역 상 논의는 이제 ‘조개’ 껍질을 깨부수어 이야기해야 한다.


도구소모적 여성에 불과했던 그 세상을 견뎌낸 영화계의 직업여성 모두에게 위로한다. 피눈물의 영화들을 2020년에 보고, 그 뒤에 숨은 노고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성의 이분법적 구분과 성 구분으로 인해 법이 차등적용되는 지금 세상이 녹아있는 지금의 영화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책 <야한 영화의 정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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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영화의 정치학
영화사에서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가?
 
지은이
김효정
 
출판사 : 카모마일북스
 
분야
페미니즘
영화평론
 
규격
152mm * 225mm
 
쪽 수 : 248쪽
 
 발행일 
2019년 12월 18일
 
정가 : 22,000원
 
ISBN
978-89-98204-70-9 (93680)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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