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벽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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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쬐면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이 원활하게 분비되면 행복과 안정을 느낀다. 그래서 일조량이 적은 새벽이 되면 세로토닌 분비도 줄어들어 우울감이 들고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쨍쨍한 여름 햇볕을 만끽하다 가을이 되면 계절을 타게 되는 것처럼, 새벽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 감성에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한 나른함이 더해지면 우리는 센치한 감정에 빠진다. 그렇게 새벽 감성에 취해서 때로는 SNS에 흑역사를 남겼다가 다음날 맨정신에 괴로워한다.
새벽은 나의 시간이었다
나는 새벽시간을 좋아했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작은 소리조차 소란이 되는 그 어두운 시간이 좋아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때 나는 새벽에 깨어있는 걸 선택했다. 느즈막이 일어나 남들보다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반복되면 나 자신의 게으른 천성에 질려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며 새벽까지 이어가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래도 새벽이 좋았다. 때로는 혼자서 땅을 파고 들고 괜히 혼자 삽질을 하기도 했지만, 관심을 나 자신에게 돌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생각을 하다 보면 명료해지는 것들이 생겼다. 생각이 연달아 떠오르면 하나는 글로 적어 정리해두고 다른 생각을 따라가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에 빠지고 감성에 젖어서 글을 썼다가 다음날 소리 지르며 지우기도 했지만, 꾹꾹 눌러두었고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을 마주하고 정리하기도 했다.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억울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새벽에 부정적인 감정을 끄집어내는 건 결코 건강한 생활은 아니지만, 눌러두고 숨겨두는 것도 건강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라서 나는 호르몬이 이끄는 본능을 따라갔다. 흑역사니, 뭐니 했지만 그렇게 후회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새벽에 한 일 중 가장 잘못한 건 수면 패턴을 망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직장인은 새벽을 탐할 수 없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직장인으로 소임을 다하면서 새벽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직장인에게 어제 잠을 못 잤다는 말은 새벽까지 깨어있었거나 중간에 깨서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는 말이다. 새벽이 어느새 반드시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 되면서 새벽 감성으로 흑역사를 쌓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직장인과 새벽을 검색하면 아침 운동이나 영어학원이 결과로 뜬다. 퇴근은 언제 할지 모르고 점심시간은 너무 짧으니 몸과 정신이 멀쩡한 시간대를 찾아 잠을 줄이고 새벽 시간을 끌어다 쓴다. 잠을 자지 않아 찾아오던 새벽 감성은 사라지고, 잠을 일찍 끝내고 맞이하는 새벽 생활이 성큼 다가온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새벽을 배워간다.
나처럼 체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면 더더욱 예전의 새벽을 욕심낼 수 없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깨어있으면 주말 이틀 중 하루를 잠을 채우게 된다. 주말에 일정이 있으면 금요일 새벽은 고스란히 잠에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한 번씩, 주말을 잠에 빼앗길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생체리듬을 망쳐가며 새벽을 차지한다. 예전엔 새벽이 선택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양자택일도 사치가 된다.
동심과 안녕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던데, 새벽과 헤어지는 건 직장인으로 진화하는 순간일까.
새벽은 이제 나의 시간이 아니다
새벽을 붙잡고 싶어도 내일을 위해 밤부터 잠에 들어 새벽을 통과하고 아침을 맞이할 날들이 이어져 있다. 새벽을 감성적으로 보내는 생활이 건강하지 않은 걸 알고 있지만,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입이 즐거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건강하지 않은 새벽을 지내고 싶다.
새벽이면 나를 지배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이젠 새벽을 잃어 생각도 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어느 시간을 잘라다가 생각의 꼬리를 물어야 할까.
새벽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장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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