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강탈당한 일상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이유 - 사마에게 [영화]

와드의 눈으로 본 사람들의 일상과 알레포를 난 잊지 않을 것이다.
글 입력 2020.01.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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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이어주는 통로, 기록물


 


당신 이거 찍고 있어? 전부 다 기록해. 어떻게 그들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어.


 

폭격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가 카메라로 찍고 있는 와드에게 외친 절규였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우리를 전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폭격 소리가 우리의 귀를 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층에 연기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화면으로 보였다. 그 순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 옆으로 전쟁이 생생하게 가까이에 와있음을 느꼈다. 연기를 뚫고 어둠 속인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그 과정은 다 1인칭으로 찍혔기에 나는 와드의 불안감을 다 느끼며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타인과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병원엔 사람이 흘린 피가 난무했고, 그들의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 흐른다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타인의 일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내가 모르고 무관심할 수 있었나 반추하게 되었다.

 

와드에게 절규했던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세상이 이럴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런 무차별적인 학살이 세상에서 용인되면 안 된다. 하지만 세상 반대편에서 이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갈 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지도 못했다.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 나는 기록물이라는 건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먼 거리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걸 깨달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나는 이제 그들이 겪는 일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난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와드와 함께 호흡하며 그녀가 느낀 불안, 공포를 느꼈다.

 

이제 이 기록물을 본 나는 그전의 나와 다르다. 이제 최소한 뉴스 기사 제목에 ‘시리아’가 포함되어 있다면, 무조건 관심을 갖고 읽어보게 될 것이다. 전쟁에 참전한 나라들의 결정을 똑똑히 감시하고 바라보는 하나의 눈이 될 생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사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와드는 시리아를 탈출했다 해도 그 안에 또 다른 수많은 사마와 와드가 남아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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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기록물들은 타자화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현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그려낸 것이었다. 와드는 자신뿐만 아니라, 전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모두 기록했다.


나는 영화를 보며 내내 눈물만 흘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보고 웃기도 하며 그들의 삶에 함께 할 수 있었다. 군인에게 발각되지 않게 우는 사마를 모두가 동요를 부르며 달래는 웃지 못할 장면에 웃기도 하고,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남편으로부터 감을 선물 받은 아내가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는 걸 보며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순간들의 기록이 의미 있었던 것은, 알레포에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알레포를 살 수 없는 도시로 만들려는 정부에게 투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탈당한 일상


 

와드의 일상을 찍은 영상 속에선 폭격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와서 영화를 보면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일상의 일부분을 찍은 영상에서도 이 정도였는데, 실제 삶에서 얼마나 더 많은 폭격이 끊이지 않았을지, 그 자리에 있던 와드와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지 헤아릴 수 없었다. 더 놀라웠던 건 귀를 때리는 듯한 폭격 소리가 계속 들려도 영상 속 사마는 울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녀는 폭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 하고 약하게 떨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사마에게 폭격 소리가 일상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라는 자명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영화 속에서 죽어나가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속해서 나왔다. 와드도 사마를 잃을 것을 너무나 두려워해, 아이가 죽기 전에 먼저 죽은 부모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끝까지 아이를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죽은 걸 확인한 의료진이 한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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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격으로 거리에는 유리조각 잔해와 총알들이 굴러다녔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는 파괴된 지 오래였다. 아이들은 다 무너져가는 버스 안에서 해맑게 운전대를 잡고 놀았다. 알레포가 이렇게 파괴되니 떠나는 주민들도 늘었는데, 자신의 모든 친구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정부의 방침으로 알레포를 모두 떠나야 할 때, 우는 엄마의 뺨에 눈물을 닦아주며 ‘이제 알레포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전쟁을 다 알고, 느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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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줄래?


 

영화 속에서 와드는 사마에게 죄의식을 갖고 미안해한다. 그걸 보고 ‘부부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건 죄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선 죄의식을 갖게 하는 행동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의해 일상을 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은 와드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을 알레포에서 강제로 떠나게 되어야 했을 때 다시 생각이 났다. 와드는 알레포를 떠나기 전에 자신의 신혼집을 카메라로 찍으며 눈물을 흘린다. 와드가 신혼집으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집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찍으며 행복해했던 장면이 생각이 났다. 그들은 전쟁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던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고, 강제로 떠나야 했다. 사람들을 매일 죽음에서 건져내는 선하고 용기 있는 그들은 행복할 일상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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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삶과 일상을 앗아갔다. 전쟁은 절대 민간인들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알레포를 강제로 떠나면서 우는 와드의 지인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난민들은 다 저렇게 와드와 마을 주민들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깨달음도 느꼈다.

 

부끄럽게도 나는 난민에 대해 낯섦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난민을 향한 가짜 뉴스들도 너무나 많고 그 안의 내용들은 다 극단적이어서 그들이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확인한 그들은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고, 삶을 살아가려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들의 선택권 없이 전쟁으로 삶을 빼앗겼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이 품고 있는 선함만이 희망을 보게 한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곳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거야. 이 병원처럼.



알레포를 떠나기 전에 와드의 남편이자, 병원의 의사였던 하짐이 한 말이다. 그전에 세웠던 병원이 폭격에 무너져 내렸어도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로 세운 이 병원에선 20일간 890건 수술이 진행되었고, 6천 명 환자를 치료했다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독재 반대 시위에 참여하며 순간들을 촬영한 와드. 뉴스에 얼굴까지 드러내며 알레포의 상황을 알린 하짐, 그들이 병원을 세우고 폭격이 일상인 알레프에서 살아가는 걸 보며 ‘나라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그들은 상업 영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영웅이 아니었다. 기록이 시작되는 2012년 와드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하짐도 같은 대학에서 의과생이었을 뿐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용기로 사람들을 구해내는 걸 보며 나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총에 맞은 임산부와 그 뱃속에 있던 아이를 구해는 장면을 보면서는 경외감까지 느꼈다. 아무리 깨워 봐도 눈을 뜨지 않는 아이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의료진은 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노력 끝에 아이는 눈을 떴다.

 


 

사람이 있으면 그곳엔 결국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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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것이다. 와드와 함지가 서로를 사랑해서 낳은 사마가 눈앞에 존재하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 이를 증명한다. 알레프를 떠나면서 와드는 내레이션으로 이렇게 말한다. 사마의 이름의 뜻은 하늘이다. 그녀의 이름을 하늘이라고 지은 건 더 이상 공습이 없는 깨끗한 하늘을 언젠가 보여주고 싶다는 와드의 소망 때문이었다. 와드와 함지는 사마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독재 정치를 펼치는 정부에게서 투쟁하고 알레프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살았던 것이었다.

 

와드는 자신이 사랑한 알레프의 모든 순간을 기록했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알레프를 잊을 수 없다. 그것만으로 알레프는 더 이상 파괴당한 마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실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엔 사랑이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을 난 잊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도 전쟁의 공포가 남아있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흉흉해진 상황이지만 사람이 있는 곳엔 사랑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푸른 하늘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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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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