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내가 긍정의 힘을 믿는 이유 [사람]

그동안 내 삶에서 원동력이 되어준 가장 큰 감정에 대해 쓰고 싶었다.
글 입력 2020.01.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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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을 스펙으로 만들어주는 것


 

‘긍정적인 사고’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빠의 한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아직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대외활동에 지원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만들던 때였다. 그때의 나는 인디자인 자격증을 딴 지 얼마 안 된 실력으로 서툴게 자기소개서를 만들었다. 그 자기소개서는 그때의 내가 가장 하고 싶었고 인원도 적게 뽑는 대외활동에 낼 것이었다. 문제는 그때의 나는 이미 몇 차례 대외활동에 떨어져 자신감이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대외활동 지원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냐는 아빠의 물음에 나는 열심히는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아빠께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낸 대외활동은 다 떨어졌어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죠?”

 

아빠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으시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뭐든지 많이 떨어져 봐야 스펙이 되지!”


 

그 말 한마디를 듣고,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어떤 용기가 생겼다. 집을 나서고 학교에 가는 내내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빠의 대답에는 ‘불합격’이라는 명백한 실패를 ‘스펙’으로 봐주는 어떤 마법 같은 관점이 들어있었다. 바로 긍정적인 관점.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동안 내가 친구들로부터 ‘너는 참 긍정적이다.’소리를 자주 들어왔다는 게 떠올랐다.

 

내가 그동안 어떤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여러 일을 해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누군가는 너무 진부하다고 뭐라 할 수 있겠으나, 긍정적인 사고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기형도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썼는데, 만약 그 시의 작가가 나였다면 그 시의 제목은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긍정은 나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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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을 믿는 이유 첫째,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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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SNS에서 우연히 ‘연말에 정리해야 하는 인간관계’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남을 쉽게 헐뜯는 친구, 질투가 심한 친구 등등 여러 사람이 나왔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김 빼는 사람’이었다. 그 문구를 보니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절친했던 그 친구를 차차 멀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저것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는 성향이 반대여서 걱정이 많고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친구와 만나는 게 즐겁다기보다는, 눈치를 살피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친구는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면 응원보다는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안 될 거면 어떡하냐, 저렇게 하면 안 좋다던데.

 

대외활동에 계속 떨어져 초조해하던 나에게 아빠께서 ‘그러게 미리미리 스펙 좀 쌓아놓지 그랬냐.’ ‘네가 부족해서 그런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쩔 거냐.’ 식으로 말씀하셨다면 난 분명 그날 우울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동안 몇십 명 뽑는 대외활동도 떨어졌는데. 인원도 적게 뽑는 이 활동에 붙겠어?’ 생각에 의욕이 꺾여 제출을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빠는 그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떨어져도 그건 최악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스펙(경험)이 될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서를 만들면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데 힘을 쏟지 않아도 되었다.

 

그 말은 그날 하루만 나에게 힘을 준 것이 아니라, 자기소개서를 만드는 내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기소개서를 낸 대외활동으로부터 처음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걸 시작으로 여러 대외활동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긍정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긍정의 힘을 믿는 이유 두 번째,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과 약속한 분량의 글을 써야 하는데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한글 파일의 빈 창 앞에서 글이 얼마나 쓰기 싫은지 핸드폰만 내리 두세 시간을 했다. 그래놓고 눈이 피로해지자 침대에 쓰러져 네 시간은 잤고 눈을 떴을 땐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실컷 놀아놓고는 우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슬럼프인가?’ ‘오늘 하루를 다 날렸네.’라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는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살 수는 없잖아. 오늘 나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를 쓰레기처럼 보낸 것처럼 보여도, 사실 쉰 것을 한 거야.


오늘 푹 쉬었으니 내일은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이걸 보고 누군가는 저건 포장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상 저 때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나는 쓰레기야.’하고 자조하면서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 기분으로 잠들면 ‘나는 쓰레기니까’ 생각이 내일도 영향을 주어 글을 못 쓰게 되었다. 쓰레기 같았던 내 하루를, 수고한 내가 쉰 날로 바꿔주는 것이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하루를 보낸 거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긍정적인 사고가 좋은 이유는 어떤 결과를 마주해도 그걸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쓴 소설을 공모전에 낼 일이 많은데, 떨어질 때마다 ‘와, 더 좋은 타이밍에 등단하려고 떨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떨어진 건, 내년 신춘문예까지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책을 읽어서 내년에 더 성숙한 작가로 등단할 기회라고 여기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공모전에 입상하지 못한 게 부끄럽거나, 슬픈 일이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배우게 한 경험이 된다. 중요한 건, 이렇게 생각했을 때 매번 떨어지더라도 계속 도전해보는 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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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긍정의 힘이 잘 발휘되었다고 생각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고등학생 때 논술 대회를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논술시험의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문제를 내신 선생님께서 우리를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으로 생각하고 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우등생들도 답안을 다 쓰지 못한 채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 건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나도 이 문제를 낸 선생님께 원망의 감정이 들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 이 대회에 참여해보지 못했으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볼 일이 얼마나 있겠어. 대학교 시험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빈 답안지를 낼 수는 없으니까, 최소한 답안지는 다 채우는 걸 목표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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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의 나는 문제가 요구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내 겨우 에이포 한 장 분량의 답안지는 다 채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에서 나는 입상을 했는데, 절대 내가 글을 잘 써서 입상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그때의 나는 문제가 요구하는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논술 대회에서 절반 이상이 답안지를 채우지 않고 중간에 나갔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든 답안지를 다 채웠다는 것 자체에 큰 가산점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긍정의 힘을 믿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개인적인 내 경험을 쓴 것이라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 한다. 나도 힐링 서적이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강조하는 자기 계발서를 읽고 공감은 되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 경험이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품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날 속이거나 내 감정을 억누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나의 상태를 온전히 포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긍정적인 사고가 약으로써 기능하는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고서도 큰 소리 내어 엉엉 운 적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구청에서 열리는 토론대회에 결선 진출을 못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나서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아 가며 열심히 준비했고, 나 스스로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결선에 아예 진출하지 못한 건 큰 충격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닥을 치며 큰소리로 울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처음엔 위로해주시던 엄마도 몇 분 지나서 시끄러우니 네 방에 들어가라 하실 정도였다.

 

평상시에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는 결선 진출하지 못한 건 나에게 절대 좋은 경험이 될 수 없었다. 좋은 경험은 명백히 상을 타는 쪽이었다. 그동안 쏟은 노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기에 통곡을 했다. 이십 대가 된 지금도 그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좋은 결과가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내가 포용할 수 없는 일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태의 나에겐 애써 긍정적인 사고를 주입시키기보다는,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나를 포용해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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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인생이 고해(苦海)라고 말한다.

난 이왕이면 인생엔 멋진 상들이

잔뜩 숨어있다고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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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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