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 영화 '결혼이야기'

완벽함을 강요 받는 엄마들에게
글 입력 2020.01.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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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일 때문에 항상 바쁘셨고,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회, 소풍, 각종 행사, 심지어 졸업식에도 오시지 못했다. 친구들과 비교되는 김밥천국에서 산 김밥이 들어있는 내 도시락, 운동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친구들, 혹시나 엄마가 늦게라도 오실까 하는 마음에 문에 고정되어 있던 내 눈. 엄마 대신 할머니가 와주셨지만, 실망감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실망, 그리고 서운함은 더욱 커졌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심해지면서 나는 엄마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렸다. 엄마가 나를 신경 쓰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라며. 엄마는 내가 투정을 부릴 때 마다 항상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미안해’ 이 세 글자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엄마는 일하시느라 참가하지 못하셨고, 엄마는 집안의 어른들께도 항상 죄송하다고 하셨다.


아빠도 똑같이 일하느라 못 오셨는데 아빠는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고생한다며 어른들은 아빠를 걱정했다. 두 분 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왜 엄마만 죄송하고 미안한 걸까? 어릴적 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던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세상은 ‘엄마’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워킹맘’, ‘슈퍼우먼’, ‘모성애’, '엄마는 위대하다’ 등 엄마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완벽성을 강요하는 말은 매우 많다. 한 가정과 자식은 엄마와 아빠 둘이 함께 만든 것인데, 그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엄마에게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일하지만, 육아와 집안일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반면에, 주말에만 아이를 보거나 청소나 빨래, 설거지를 ‘도와주는’ 아빠는 다정하고 좋은 아빠이자, 이상적이고 완벽한 남편이다.


어릴 적에는 우리 아빠가 이런 면에서 좋은 아빠이자, 엄마에게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생각이다. 도와준다니, 집안일과 육아는 공동의 책임인데 왜 엄마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아빠에겐 도와주거나 안 해도 무방한 일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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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청한 넷플릭스의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이 영화는 부부가 이혼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한 부부가 이혼하는 과정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다른 시선으로 보고 싶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극 중 엄마 역할인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변호사와 함께 이혼 조정에 관한 리허설을 하는 장면이다.

 

상담사가 니콜에게 엄마로서 장단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니콜은 자신의 장점은 아이의 말을 잘 듣고, 놀아 주고,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애를 돌보고 애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단점은 너무 엄격하고 과보호를 한다는 것이다.

 

니콜의 말을 듣던 변호사가 그렇게 해서는 절대 소송에서 이기지 못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과음하고 애한테 호통치며 욕하는 엄마는 용납 못 해요."

"아빠는 부족해도 그런가 보다 하죠."

"아빠는 실수투성이라 사랑하지만, 엄마가 그런다면 사람들 다 들고 일어나요. 구조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죠."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짜증 나지만 현실이 그래요."


 

짜증 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엄마를 대하는 시선이다. 엄마는 과음하고, 아이에게 호통을 치면 안 된다. 하지만 아빠는 아이에게 엄격하고 호통을 쳐도 괜찮고,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과음해도 된다. 게다가, 엄마는 잠시라도 아이에게서 한눈을 팔면 큰일 난다.


작은 실수도 엄마에겐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아빠는 실수해도,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다며 응원을 받는다. 그리고 아빠의 실수로 아이가 다치면, 엄마가 없어서 그렇다며 아빠를 위로하거나 짠하게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가끔 지하철을 타면, 아이가 시끄럽게 울거나 보채면 모두 엄마를 째려보거나 욕을 한다. 요즘은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일명 ‘노키즈 존’ 까지 생겨나고 있다. 노키즈 존이 과연 아이를 금지하는 것일까? 노키즈 존은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엄마들을 처벌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가 시끄럽고 보채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시선들은 모두 엄마를 향한다.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아이가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에, 아빠와 아이가 함께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도 봤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빠를 도와주고 대단하다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 것은 응원받을 행동이 아닌 당연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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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유독 ‘엄마’를 향한 시선이 따갑다. ‘슈퍼우먼’, ‘워킹맘’ 겉으로 보면 엄마를 칭찬하는 의미의 단어인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엄마로서의 완벽한 역할을 강요하는 단어이다. 엄마는 바쁠 뿐이지, 절대 나쁘지 않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고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엄마가 본인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우리가 엄마를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면서, 엄마에겐 완벽성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된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 날카로운 시선 대신, 돕고 응원하는 격려의 시선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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