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욕망할 줄 아는 여성들의 이야기 - 체홉, 여자를 읽다

글 입력 2020.01.0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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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세기 초의 고전문학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적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담긴 그 책에는 한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도망치는 자, 방관하는 자, 책임지려는 자, 악용하는 자 등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했다.

 

책을 다 읽은 뒤 사람들과 그 책의 뛰어난 점에 관해 토론했다. 인물 한 명 한 명을 언급하며 그들이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를 파악하는 시간도 가졌다. 토론이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아쉬움을 뒤늦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아쉬운 점은 바로 '그 수많은 인간 중에서 여성 인물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등장하는 한 명의 여성 역시 끝까지 주인공의 엄마로만 불렸다. 그 책에선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벡델 테스트라는 게 있다. 미국의 여성 만화가인 엘리슨 벡델이 1985년에 만든 테스트로, 할리우드 영화들이 최소한의 젠더 개념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벡델 테스트의 관문은 그리 높지 않다. 세 가지의 질문만 통과하면 된다.

 

1. 이름을 가진 여성이 적어도 두 명 존재하는가.

2. 그 두 캐릭터가 서로 대화하는가.

3. 남자 관련 주제를 제외한 다른 주제로 대화하는가.

 

앞서 언급한 책은 당연하게도 벡델 테스트의 한 가지 질문도 통과하지 못했다. 통과하지 못한 건 그 책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좋아했던 수많은 19세기, 20세기 초 고전문학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여성 서사를 소개하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를 진행하는 팀 헤이메이트(윤이나, 황효진)의 강연에서 벡델 테스트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젠더 의식이 높은 게 아니라 그것마저 통과하지 못한 작품이 규탄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이 뒤따라왔다. 그러나 21세기가 도래한 지 20년이나 된 지금도 문화 예술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젠더 의식을 가진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헤이메이트는 생각하는 여성, 욕망하는 여성이 나오는 작품이 그런 작품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나온다고 다가 아니다.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무장한 여성 인물의 등장은 오히려 작품의 젠더 의식 부재를 여실히 드러낼 뿐이다. 생각하는 여성, 욕망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떠올려보았다. 몇몇 작품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 수는 극히 적었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지금에야 슬슬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19세기엔 오죽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안톤 체홉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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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나의 아내들', '불행'이란 제목이 붙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체홉하면 떠오를법한 인간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유머감각을 반복되지 않게끔 다양한 상황으로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

 

 '약사의 아내'는 늦은 밤,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군 장교들과의 짧은 만남을 보내는 약사 아내의 이야기다. 한밤의 외도로 지루함을 떨치는 여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가피아'에서는 점잖은 아내 아가피아가 동네 한량 사프카에게 매력을 느낀다. 두 사람은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일탈을 벌인다.

 

 '나의 아내들'은 7명의 아내를 살해한 라울 시냐브로다가 자신이 왜 아내들을 살해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극이다.

 

 '소피아'는 남편의 친구와 위험한 관계가 되기 직전의 여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점차 불륜을 넘어 홀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려낸다.


 

<체홉, 여자를 읽다>는 안톤 체홉의 미발표 단편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나의 아내들’, ‘소피아’를 바탕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이다. 그 네 편을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여성들의 불륜이다.

 

불륜은 예술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누군가에게 결혼은 성스러운 사랑의 맹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일 수도 있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혼 제도만큼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이 충돌하기 쉬운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작품에서 불륜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필사까지 했던 단편 소설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남성이었고 그는 아내가 있는 상태에서 처음 본 여인과 관계를 맺는다. 소설에는 그 행위의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소설에 나오는 수치스러운 과거와 권태로운 현재가 모두 남성의 불륜을 납득하게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관계 맺은 여성은 주인공의 고뇌를 나타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불륜은 여성의 삶과 더 밀접한 소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결혼 제도의 영향력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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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여성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다. 여성은 결혼한 순간부터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라는 객체로 전락한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기혼여성의 고민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물론 여성이라고 해서 불륜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단죄하고 싶지도 않다. 단죄하기 이전에 그녀들의 마음속에 숨겨졌던 욕망을 먼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이 연극을 알기 전까지 안톤 체홉의 소설을 읽어보기는커녕 그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남성주의적인 시선으로 가득한 19세기 고전문학에서 사회적 약자,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흥미로운 정보를 접했다.

 

체홉이 그려낸 여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선하든 악하든 입체적인 모습일 거라는 기대가 든다. 그 전에 먼저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체홉, 여자를 읽다
- 희극과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 -


일자 : 2020.01.07 ~ 2020.02.02

시간

화~금 20시

주말, 공휴일 15시

월 공연없음

 

*

01.24(금), 01.26(일), 01.27(월) 15시 공연

01.25(토), 01.28(화)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주최/기획

씨어터오컴퍼니


관람연령
만 14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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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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