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원 순위 조작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음악 시장

우리는 더 이상의 거짓을 원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0.01.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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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에 TPO(Time Place Occasion)이 있다면, 음악에는 계절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 계절감을 고려하여 따뜻해지는 봄에는 어쿠스틱, 습하고 더운 여름은 edm, 어딘가 쓸쓸한 가을은 포크, 추운 겨울은 발라드를 많이 듣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당연히 음원 차트에 반영이 된다. 특히 여름 상위권 차트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매년 여름이 되면, 많은 아이돌 가수들의 발랄한 댄스곡이나 시원한 힙합곡들이 음원 차트의 상위권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여름은 너무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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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음원 사이트 중 가장 점유율이 높다는 멜론의 7월 월간 차트를 보면 1위부터 10위 중 단 두 곡(청하-Snapping, Anne Marie-2002)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라드이다. 심지어 아주 유명한 가수도 아니고, 대부분이 이름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초면'인 가수들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트렌드에 뒤처진 걸까?", "대한민국 사람들 다 여름에 땀 흘리며 발라드 듣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원래도 음원 차트 위주로 듣는 편도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다행히도 이상하다고 여기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음원 사재기’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었다.

 

2018년도 ‘ㅇ도 안 대고 ㅇㅇ 먹기’(당시 두 가수의 이상한 음원 추이를 비꼬며 나온 말)부터 시작된 ‘음원 사재기’에 대한 희미한 의심은 2019년을 통과하며 기정 사실화된 합리적인 의심으로 변화하였다. 그만큼 2019년의 가요계는 사재기가 판을 치는 공간이었다. 심지어 그런 의심을 받는 노래들은 어찌나 다들 비슷한 지, 다들 죽음이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이별'을 겪고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는 (마지막에 현학기까지 등장하면 금상첨화이다) 쌍팔년도에도 촌스럽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은 구질구질한 감성으로 포장되어 있는 발라드 곡들이었다.

 

SNS 팔로워가 1000명도 안 되는 가수가 체조 경기장쯤은 가뿐히 채우는 몇 만의 팬덤이 있는 아이돌 가수의 음원을 쉽게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생판 처음 본 신인 가수의 첫 데뷔 싱글이 인지도 높은 베테랑 가수의 컴백 곡을 가뿐히 이기고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였다. 물론 인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좋은 아티스트들의 곡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활동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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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수 박경 트위터 (현재는 삭제된 상태)

 

 

심증은 가득한데 물증은 없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지난 11월 24일 가수 박경의 트위터에 “ㅇㅇㅇ처럼 ㅇㅇㅇ처럼 ㅇㅇㅇ처럼 ㅇㅇㅇ처럼 ㅇㅇㅇ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라는 글이 올라오게 되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저런 말을 하냐는 식의 비판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발언을 지지하며 그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할 만큼 음원 사재기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경에게 '저격'을 당한 소속사들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며 박경을 고소하였고, 그들 사이의 법적 공방이 시작되며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월 4일 <그것이 알고싶다>방송에서 음원 사재기에 대한 취재가 방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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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쳐 화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여러 의혹들에서 시작해 현재 음악계에 종사하고 있는 가수와 프로듀서들, 그리고 음원 사재기 대행사의 내부 고발자들의 입을 빌려 수많은 대중들이 제기한 의혹들에 뚜렷한 형체를 부여해주었다. 그 내용은 대중들의 예상 그 이상이었고 참담했다. 음원 사재기 대행사들은 브로커를 통해 가수나 소속사와 접촉하여 그들이 만들어낸 ‘흥행 공식’에 맞춘 노래를 만들도록 하고 돈을 받아 음원 사재기를 자행한다. 소속사들이 지겹도록 말하는 '바이럴 마케팅’은 그저 역주행이 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명목을 만든 것이었으며 실상은 돈을 주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음원 순위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음원 순위 조작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다. 그리고 그 이면을 살펴보면 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우선 경쟁에서의 공정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음악이 경쟁의 수단이 되는 것은 음악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의 장이 펼쳐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 안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음악 시장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가 그 중간 과정에 개입을 하여 인위적으로 조작을 한다면 그것은 전체 음악인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음악 시장의 침체를 야기한다.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한 프로듀서는 현재 많은 뮤지션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을 한 바가 있다.

  

또한 음원 순위 조작은 음악의 본질을 해친다. 음악은 아티스트와 대중 모두에게 자기표현이며 동시에 타인과의 소통이 될 수 있다. 음악은 그 자체로 미를 추구하거나 타인과 어떤 형태로든 공감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음악의 본질이다. 하지만 음원 순위 조작은 이러한 음악의 본질 자체를 해한다. 브로커들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아티스트들에게 자신들이 정해놓은 흥행 공식에 따르면 '성공'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리고 차트 조작으로 대중의 선택의 영역에 침범한다. 이것은 예술의 가치를 해하고 음악의 본질을 흐리고 짓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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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이 도입한 5분 차트

 


<그것이 알고싶다> 음원 사재기편에서 언급한대로 기획사, 브로커, 실행사, 대행사, 음원 사이트, 불법을 방임한 관계 당국 모두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음원 차트라는 제도 그 자체에 대해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이러한 음원 순위 조작 사태는 음원 차트라는 제도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극단화 되어 보여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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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차트는 현재 음악의 트렌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현상을 반영하는 지표로서 기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음원 차트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1시간마다 변동하는 실시간 음원 차트는 단순히 현재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많이 듣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음악의 가치까지 매기는 일종의 '성적표'가 되고 있다.

 

한 가수가 낸 음악이 아무리 질적으로 훌륭하다고 해도 차트에서 힘을 내지 못한다면 그 가수의 활동 전체가 저평가되기도 한다. 게다가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 ‘5분 차트’라는 것을 만들어내며 5분마다 변화하는 지표를 공개하게 되며 이러한 기현상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음원 사이트들에 존재하는 'Top 100 전체 재생' 버튼은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획일화하며 음악 시장의 경직을 야기하는데에 아주 크게 일조하고 있다. 차트에 올라오지 못하는 수많은 좋은 곡들은 특정한 매니아층 이외에는 닿지 못하고 최신 앨범 리스트의 뒷페이지로 밀려난다. 반면 차트에 올라오게 되는 곡들은 'Top 100 전체 재생'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쉽게 밀려나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차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말이 통용되기 시작하며 흥행 공식을 따르는 양상성 곡들이 기승을 부리고, 음악보다 마케팅 전략이 우선시 되며, 더 나아가 현재의 음원 순위 조작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기이한 상황 속에서 음악은 더이상 예술이 아니라 경쟁과 자본주의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음악이 자신의 가치를 펼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문화 예술의 소비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없다는 것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 일 수록 우리는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야한다.

 

음원 순위 조작을 직접적으로 시행한 기획사, 브로커, 실행사, 대행사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라. 뿐만 아니라, 음원 사이트는 폐단만을 낳고 있는 음원 차트를 없애고, 다채로운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시행하라. 우리는 건강하고 깨끗한 문화 예술의 장을 원한다. 더 이상의 거짓은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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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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