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진짜 고흐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화]

왜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을까
글 입력 2020.01.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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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흐가 호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줄로 알았어"



많은 사람들은 고흐가 사망한 원인을 자살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고흐의 타살설을 다룬다. 근거가 되는 이야기는 2011년 미국의 두 전기작가인 스티븐 나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에 의해 제시된 가설이다. 이후 2018년 법의병리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와 범죄작가 론 프랜셀의 저서 '진실을 읽는 시간'에서 다시 한번 다루어진다.


이들이 주장하는 타살설의 근거는 이러하다. 총상의 각도가 혼자서는 쏠 수 없는 각도였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고흐가 쉽게 총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고흐가 향하던 장소와 상황이 자살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르네 세크레탕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고흐를 괴롭히던 정황이 알려졌고, 이를 통해 고흐의 사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흐의 실제 사망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밝히는 일은 역사의 영역이 되었다. 아직도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주장이 오가지만, 그를 죽인 범인이 있다고 해도 아마 모두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하나의 전설적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죽음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모든 이야기의 결말에는 교훈이 남듯, 이야기로 변한 고흐의 죽음은 어떠한 메시지를 부여받았다. 그의 삶과 죽음은 광기와 고통을 통한 창작으로 표현되고,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받았다. 예술가는 고통과 광기가 있어야 하는 프레임이 고흐에게 부여된 것이다. 어쨌든, 결국 시간이 지나고 그의 인생에서 남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뿐이었다.


고흐는 복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호밀밭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겨눠 죽었다고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단지 고흐를 보고 싶은 대로만 바라본 것 아니었을까? 일부는 예술계가 그의 극적인 죽음을 통해 그의 인생과 작품에 드라마를 더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는 고흐가 진짜 그의 인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의 인생이 아닌 가짜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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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광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견해는 멀리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략) 몇몇 지식인들만이 얘기하던 이 새로운 신화는 고흐라는 인물을 만나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신화가 얼마나 있기가 있었던지 오늘날까지도 고흐는 대중들의 머릿속에 여전히 예술가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생전에 그림을 그리다가 미쳐버린 르네상스의 화가 반 데르 고에스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사실 고흐 자신도 한때 창작과 광기의 관계에 흥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흐의 작품은 정말로 그의 광기의 산물이었던 것일까?"


진중권 교수는 대중들이 고흐를 광기의 산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의 삶이 광기의 삶이라는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또한 같은 지점을 의심하고 다룬다. 정말 대중들이 바라보는 고흐가 진짜 고흐였을까?

 

*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영화, 책, 전시들은 무수히 많았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마찬가지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이러한 시도들 덕분에 고흐와 대중들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고흐의 천재성을 다루고, 미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흐에 대해 계속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고흐의 스타일을 이용한 상업성에 지나지 않았고, 고흐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전시와 작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부는 '빈센트 반 고흐'가 일반명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고흐의 스타일이 독보적인 만큼 유명해지기도 쉬웠지만, 그 이상의 확장이 어려운 고정된 스타일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고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고흐의 삶과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보단 고흐의 스타일이 멋지다고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고흐를 다루는 전시, 영화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고흐의 그림과 인생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 대중들이 알고 있는 고흐의 모습에서 어떤 점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창작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좇고 있으며, 그것이 속으론 어떤 느낌인지, 그림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힘든지,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헌신적이어야 하는지를 특히 화가들의 입장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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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시선을 보여준다. 아주 가까운 시선으로 밀접하게 고흐를 다룬다. 고흐를 연기한 윌렘 대포는 직접 고흐가 올라간 산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고흐의 시선으로 피사체를 바라보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기도 했다. 영화의 기본적인 촬영 또한 핸드헬드(Handheld) 기법이 사용되었다. 고흐가 시각적으로 불편을 겪고 있었다는 점을 반영해 영화는 고흐의 시선을 흐릿하게 처리한다. 또한 그가 노란색을 사랑하게 된 시선을 표현하면서, 그가 바라본 노란색 세상을 카메라로 담아낸다.


*


줄리언 슈나벨 감독은 고흐의 시선을 반영해 카메라를 사용하고 자살설이 아닌 타살설을 가져왔다. 그가 영화에서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예술가 반 고흐가 아닌, 인간 반 고흐를 담아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모두가 생각하는 고통과 광기의 예술가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고흐의 고통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체험하면서 말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영화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느껴지는 것은 고흐의 시선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본 영화였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 At Eternity's Gate -


연출 : 줄리언 슈나벨
 
각본
장 클로드 카리에
줄리언 슈나벨, 루이스 쿠겔버그
 

출연

윌렘 대포, 오스카 아이삭

매즈 미켈슨, 루퍼트 프렌드


장르 : 드라마(미국, 프랑스)

개봉
2019.12.26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 111분
 
수입 : 찬란
 
제공/배급 : ㈜팝엔터테인먼트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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