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을 정의하는 새로운 틀 – 국카스텐 2집 [FRAME] [음악]

글 입력 2019.12.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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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은 하나의 틀이다. 틀 안에 이미지가 들어있는데 여기서 틀은 하나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선은 생명과 호흡이 있는 시선이다. 우리가 평소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싶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자칫하면 추상적이고 진부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기에 새로운 시선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하지만, 그 주체가 국카스텐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국카스텐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시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새로운 시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이 단지 비유적인 표현인지, 그저 그들의 불가능한 것을 향하는 의지의 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면을 발견해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시선을 인식하게 할 수 있다.

 

국카스텐 2집 [FRAME]을 비평하기 전, 먼저 국카스텐을 소개하려고 한다. 국카스텐(Guckkasten)은 중국식 만화경을 뜻하는 독일어이다. 그들은 만화경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같이 아날로그함 속에 숨어있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영상처럼, 음악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을 모티브로 했기에 이름을 국카스텐이라 지었다. 국카스텐의 이름에 걸맞게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도 ‘사이키델릭 락’을 토대로 한다. 국카스텐의 음악에서 들리는 몽환적이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사운드가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음악뿐 아니라 음악의 가사에서도 사이키델릭함을 느낄 수 있는데, 비유적인 표현과 간접적이고 시적인 가사가 음악과 합쳐져 기괴함을 만든다. 또한, 앨범과 노래의 커버 사진에서도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진다.

 

국카스텐 1집 [Guckkasten]에서는 국카스텐 특유의 날 것 그대로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2집에서는 보다 절제된 사운드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다. 이번 앨범에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절제된 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누구나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우주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고통을 겪어야 단단해진다. 예전엔 직구였다면 이제는 변화구도 구사할 수 있게 됐다.”라며 웃으면서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애잔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느껴진다.


   

 

[FRAME], 새로운 시작


 

국카스텐에게 2집이란 1집과 마찬가지로 ‘시작’을 의미한다. 1집이 그들에게 음악으로의 첫 번째 발걸음이라면, 2집은 내면으로, 음악으로의 다시 시작을 의미한다. 2집 [FRAME]에서 시련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심경을 담은 ‘변신’이라는 곡을 타이틀곡이자, 첫 번째에 수록했다. 이처럼 이번 앨범에는 그들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표현해 담은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는 15곡이 수록돼있다. (지난 1집에서는 히든 트랙을 포함해 총 13곡이 수록되었다. 있었다.) 4년의 공백에 비하면 조금은 아쉽다. 소송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곡을 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이번 앨범은 그들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 소송, 곡 작업에 많은 시간이 집약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꾸미기]국카스텐_frame.jpg

1집 [Guckkasten]의 커버 사진은 화려한 색감으로 현란한 음악이 연상되는 그림인데, 이번 앨범 [FRAME은 단조롭다. 흰 배경에 대충 붓으로 쓱 그린 듯한 네모난 틀, 그것도 완벽하지 않은 틀이다. 붓의 압력이 달라 일정치 않고, 완벽하게 이어지지 않은 틀이다. 그 틀(시선) 안에 국카스텐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것은 그 자신들마저 스스로 정의 내린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새로운 시선을 부여)은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들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 스스로를 새로운 틀에 집어넣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생명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그들이 재해석한 사물을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앨범 사진에서 틀은 닫혀있지 않는 것에서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들이 던진 새로운 시선이 제한되지 않도록 하였고, 사물의 가능성을 열어둔 의도라 짐작된다. 앨범 커버 사진에서 느껴지는 엉성함,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전해진다.

 


Track List

 

변신

소문

깃털

Frame

카눌라

오이디푸스

Montage

푸에고

미늘

작은인질

감염

저글링

스크래치

Lost

 

  

[FRAME]은 타이틀 곡이 무려 세곡이나 되는, 약간은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간 앨범이다. 첫 번째 ‘변신’, 7번째 ‘오이디푸스’ 그리고 마지막 수록곡 ‘Lost’가 타이틀 곡이다. 맨 처음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곡 ‘변신’을 통해 순수하게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어린아이처럼, 자신들도 음악적으로 끝없는 변신을 하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모든 걸 버리면서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곡이다. 이 곡은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자는 앨범 전체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Lost’는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끝맺음 곡이다. 앞 수록곡들은 강렬하고, 힘찬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었다면, ‘Lost’는 낮게 울리는 저음과 우울을 위로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은 항해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마무리된다. 타이틀곡과 수록된 곡들이 엉키고 설켜 충돌하면서 ‘새로운 시선’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변신 : 변신을 통한 자아의 타자화


 

 


첫 번째 수록곡 ‘변신’이다. 이 곡은 앨범의 첫 번째 수록곡이자, 국카스텐이 음악을 그만둘 만큼 큰 사건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을 담은 곡이다. 아이가 변신하며 노는 것처럼 전혀 다른 무엇으로 변신하는 놀이는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다른 것으로 ‘변신’의 과정에서 자신의 낯선 모습을 발견한다. 변신하는 나는 몸과 정신이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하고, 낯설고 신비로운 상태가 된다. 몽환적이지만,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이 곡에서 특히 실험적인 일렉기타의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어린아이가 하는 게임에서 나오는 전자음처럼 악기 소리보다는 신호음에 가깝다. 뚝뚝 끊기는 일렉기타의 반복되는 소리로 듣는이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곡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어린아이가 되어 어떤 것으로 ‘변신’하도록 듣는 이를 이끈다. 도입부는 전자음과 보컬의 작은 속삭임으로 시작된다.

 

지금부터 시작될 재미있는 놀이는

여기저기 숨겨논나를 찾아 저지른다이제 난 변신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르고 숨을 고른 후 일렉기타의 소리와 힘차게 발을 구르는 드럼이 등장하면서 변신 놀이의 시작을 알린다.

    

지금부터 시작된 끝이 없는 놀이는

여기저기 태어나 가득 채워 터트린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변신) 놀이는 생명력이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 태어나기도 하며, 무언가를 터트리기도 한다. 이처럼 놀이는 생명력이 있고, 다른 무언가를 터트릴 만큼 힘이 있으며 역동적이기까지 한다. 놀이는 다른 무언가를 터트린다는 의미가 더 알맞을 것이다.가사의 ‘터트린다’는 표현에 집중하자면, ‘터트린다’는 표현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것을 터트리며 새로운 무언가로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가정한다면, 놀이는 기존의 것을 터트리면서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기존의 것을 터트리면서 대상 안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한다. 그 근거는 ‘Turn out’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모습을 드러내다, 나타나다’는 뜻으로 나를 벗어나서 이루어지는 변신이 아니라 ‘온몸이 부서지며’ 그 안에서 숨겨진 다른 자아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사에서 언급된 변신의 대상은 무엇인가. ‘무지개, 달빛, 살아난 그림, 철없는 낙서(들), 산 채로 잡은 시’로 변한다. ‘무지개’, ‘달빛’은 일시적인 것들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사라져 없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변신의 대상은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이다. 이 변신은 가사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해가 뜨기 전’까지로 제한된다.

 

계속해서 시작된 신비로운 놀이는

남김없이 태워도 다시 살아 움직인다

 

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비로우면서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난 그림’, ‘철없는 낙서’, ‘산 채로 잡은 시(詩)’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력 있고,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특징을 띠고 있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변신 놀이를 통해 타자가 된 ‘나’는 ‘벽에 걸린 나’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으로 노래는 끝난다. 자신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타자가 된다는 걸 강조하면서 노래를 마무리한다.

 

 

 

깃털 : 몰락한 자들의 숭고함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몰락한 자들을 위한 노래 ‘깃털’.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 하나를 지켰지만, 정작 그 삶은 지키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들)는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몰락을 감수한다. 누가 그를 욕할 수 있는가. ‘깃털’은 몰락한 자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숭고한 표정과 몸짓에 집중한다. 몰락한 자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또한, 자신들도 하나(음악)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몰락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곡은 ‘깃털’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나른하며, 허공에 나는 듯한 몽환적이다. 가사를 제외한 음악을 듣는다면 구름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포근하다. 하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음악과 다르게 처연하다.

 

저 멀리 가늘하게 떨어지던

아픈 꿈은 남겨진 이야길 하네

이곳은 견딜 수 없이 춥다고

 

깃털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버림받아 떨어지고 있다. 깃털을 지탱하던 것에서부터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깃털이 떨어지면서 추위에 떨고, 길이 없이 떨어지고 있으며 안개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게다가 바람조차 버린 깃털의 운명은 땅에 떨어지는 것뿐이다. 화자는 그런 깃털을 보고 ‘아름다운 외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 두 눈에 고여 있다. 여기서 깃털은 몰락하고 있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몰락한 자들의 표정이 이런 것일까. 몸은 상처로 가득하지만, 표정만은 숭고한 그런 것 말이다. ‘깃털’을 마지막 수록곡 ‘lost’와의 공통점은 두 곡 모두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lost’는 후회와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다면 ‘깃털’은 온 몸을 던져 내가 가진 ‘단 하나’를 지켰고, 몰락함에도 후회가 없는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Frame : 깨트림 속 새로움


 

 


앨범 [FRAME]의 테마인 ‘frame’은 하나의 시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죽은 사물 혹은 이념에 시선을 둠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곡 ‘frame’은 기존의 것을 깨트리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래서 도입부에서 일렉기타의 찌르는 듯이 날카로운 소리로 시작한다. 또한, 보컬의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무엇이 남아 있나?

부재하던 작은 환상들도

너무 많이 버려진

살아있던 어린 독백들아

조금씩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어 날 깨트려라

조금씩 움직이고 움직이고

움직여 날 깨물어라

 

‘Frame’을 관통하는 가사 부분이다. 너무 많이 알려져 진부한 것들을 흔들고, 깨트리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조금씩 움직이고 움직여 날 깨물어라’는 가사처럼 버려진 사물이 움직여서 어떠한 행동을 취하도록 한다.

 

 

 

오이디푸스 :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자


 

 


오이디푸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등장인물이다. 오이디푸스의 부모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을 듣고 두려워 오이디푸스를 버린다. 오이디푸스가 자라 청년이 된 후 자신을 둘러싼 예언을 듣는다. 오이디푸스는 그 예언을 피하려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고, 테바이에서 스핑크스의 저주에서 구한 공로로 테바이의 왕비와 결혼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왕비는 자신의 어머니였고, 오이디푸스가 죽인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충격에 받은 그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비로소 진실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오이디푸스 왕』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려는 것조차 운명에 갇혔다는 것을 말하지만, 이 이야기를 인간이 감히 운명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를 조명한다. 오이디푸스가 두려움에도 진실을 알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에서 앞선 곡 ‘깃털’이 떠오른다. 자신의 전부인 하나 즉, 진실을 알기 위해 지키기 위해 그 나머지를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바로 오이디푸스다.


도입부에서 퍼커션이 인상적인데,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피하려 걸었던 모습을 표현했다. ‘운명을 피하려고’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오이디푸스의 힘찬 발걸음이 연상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오이디푸스의 강인한 의지가 드러난다. 또한, 가사에서도 오이디푸스라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가 드러난다.

 

길을 흘리는 겁 없는

어린 소년은 앞으로 저어 간다

 

그리곤 운명을 피하려 ‘버린 눈’을 지닌 어린 소년은 부은 다리를 이끌고 운명과 싸우기 위해 걷는다. 어둠과의 싸움에서 깨져버린 나는 절망하지 않고, 아침이 오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비로소 밤을 이겨 내고’ 아침이 밝아오고,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작은 인질 : 죽은 영혼을 위한 진혼곡


 

 


이 곡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어와’라는 추임새와 보컬의 판소리 창법 때문에 국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배를 타면서 부르는 ‘한’을 품고 있는 화자의 비애가 느껴진다. ‘작은 인질’은 장 포트리에의 작품 <인질> 역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연작들은 나치의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 곡도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조용한 음악에 한을 품은 듯한 보컬이 어우러져 비애감을 극대화한다. 이 곡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배’라는 모티프다. 강 위에 떠다니며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상황. 이 노래를 들으면 죽은 자의 뼈를 강에 뿌리면서 넋을 기리는 모습과 그리스 신화의 망자들이 건너는 강이 연상된다.


이 가사의 화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살아있는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슬픔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와 여기는 어딘지

어와 난 여기 있는지

어와 난 흘러왔는지

어와 난 남아 있는지

 

누가, 대신 내 노를 저어주려나

누가, 고단한 고요함을 덜어 주려나

 

타자는 죽었고, 자신은 이 세상에 남아 있다며 자책하는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죽었는데 나는 남아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배를 타고 강에 온 행위가 애도라고 가정한다면, ‘누가 내 노를 저어주려나’라며 어떠한 위로도 소용없을 만큼 슬프다는 것을 말한다. 강물이 부족해 움직이지 못하는 작은 배를 위해 눈물을 흘려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하자고 절규한다.

 

강물이 시들어서

고향도 못 가는 작은

배야 울자, 마른 강이 차도록 울자

 

다음으로 망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 가사를 망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그리스신화에 나온 망자를 태운 배가 형상화된다. 망자는 5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첫 번째 강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이 생각난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비통해하면서 강을 건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죽은 망자가 누군가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것인가 애통해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Lost : 순수한 20대를 위한 위로


 

 

 

“미련하도록 순수했던 20대의 성장통을 노래한 곡입니다. 제대로 된 항해는 해보지도 못한 채 생채기만 가득 남은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는 곡입니다.”


 

속삭이는 듯한 보컬의 목소리, 도입부의 일렉기타의 소리가 뱃고동 소리가 고요하게 연주된다.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기 전부터 생채기로 온몸이 뒤덮인 청춘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Lost’도 ‘미늘’, ‘작은 인질’처럼 배 모티프를 사용했다. 배를 타고 생을 시작하며, 배를 타면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을 나타내는 데 배가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곡을 마지막에 수록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삶의 모순, 비극, 부조리에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자며 청춘들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풍파를 거치면서 ‘그럼에도’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곡이기 때문에 이 곡을 마지막에 수록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어제, 서툰 밤에, 달에 취해

삯을 잃었네. 삯을 잃었네.

어디 있냐고 찾아봐도 이미 바보같이

모두 떨어뜨렸네, 남김없이 버렸네


우린 익숙해져 삭혀버린 달에 취해

아무 맛도 없는 식은 다짐들만 마셔대네

 

일한 대가로 받는 삯을 잃어버린, 바보같이 모두 버린 청춘들의 방황을 표현한다. 청춘들은 그 방황이 익숙해진 듯 눈물만 삼키고 있다.

 

우린 이제서야 저문 달에 깨었는데

이젠 파도들의 시체가 중천에 떠다니네

떠다니네, 봄날의 틈 속에서

흩어지네, 울며 뱉은 입김처럼


꿈에도 가질 수가 없고

꿈에도 알려주지 않던

꿈에도 다시는

시작되지 못할 우리의 항해여

 

이 곡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울고만 있다. 계속되는 방황에 지쳤고, 할수 있는 건 우는 것, 그리고 좌절뿐. ‘꿈에도’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 고통받고, 절망하는 청춘들. ‘다시는 시작되지 못할 우리의 항해여’라며 무언가 미완결된 상태로 남는다. 위로에 꼭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이 가사는 다른 곡과 비교해서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독자가 이 가사 원문을 음미하고 단어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감상하는 바람이다.

 

*

 

국카스텐 2집 앨범 [FRAME]에는 ‘죽어있는 사물에 생명을 불여넣는다’는 포부가 잘 담겨있었다. 특히, 삶의 모순, 비극을 다룬 ‘카눌라’, ‘감염’ 등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새롭고 통찰력 있는 시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카스텐의 [FRAME]은 평소에도 좋아했고, 많이 들었기 때문에 비평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평한 후 그들이 말하려는 바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가사를 곱씹으면서 생각하고, 음악을 반복해서 들음으로 그들의 음악 세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음악과 가사를 해석해 비평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끝으로, 이번 앨범의 컨셉이자 주제인 “죽어있는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을 스스로 명심하면서 비평하면서 비평가의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국카스텐 그들의 행동처럼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비평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죽어있는 작품-죽어있지 않더라도-을 재해석함으로 작품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는 것이 비평가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앨범 [FRAME]은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오지영.jpg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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