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년간의 여행을 마치며 [사람]

글 입력 2019.1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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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라는 말. 이별의 아쉬움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은 삶의 자명한 진리인 것 마냥 계속해서 되풀이 되었다. 끝이 예견된 이별은 얼마간의 마음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지만, 어떠한 이별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필요 이상의 아픔과 설움을 남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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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학교

 


한 해를 떠나 보내며 5년 간의 학교 생활과도 이별해야할 때가 되었다. 학교라는 게 그렇듯 그 끝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아직 학교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나보다. 잠에 취해, 술에 취해 비틀대며 걸어가던 등교길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 애썼다. 눈에 닿는 골목마다 추억이 담겨 있어 왜인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5년 전 동기들과 첫 식사를 했던 허름한 중국집과, 철 없이 수업시간에 몰래 향하곤 했던 피시방, 제 집 마냥 드나들며 늘어져 자기도, 친구들과 회포를 풀기도 했던 과방과, 더위도 추위도 잊은 채 찾아가던 학교 뒷골목까지. 별 시덥지 않은 순간들도 향수 가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나 선명한데, 언젠가는 더듬거리며 찾아갈 아득하고 희미한 기억의 한 조각 파편이 될 테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저 제 속도에 맞춰 착실하게도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소중함을 미리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싶어 아쉬움이 밀려왔다.


 

 

3.


 

길고 긴, 어쩌면 짧은 그 시간동안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과 헤어졌다. 갓 스무살이라는 철 없을 시절에 만난 동기들은 어느새 별 말이 필요 없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고, 수많은 술자리와 세 번의 공연 제작 활동, 두 번의 공연장 아르바이트와 여러 대외 활동을 통해 만난 선후배, 동료들은 관계의 명명과 나이 차이를 허무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전공 지식과 학교 안팎에서의 활동 내역들, 힙겹게 따낸 여러 자격증들을 차치하고 학교 생활 중에서 내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사람이었다. 조건도, 배경도 모른 채 만나던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달리, 수많은 이해 관계 속에 자리잡은 대학 친구는 흔히 비즈니스 관계나 겉친구로 여겨지기도 한다더라. 그 사이에서 진정한 인연들을 만났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누군가는 내게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지난 5년 간 내게 의미 없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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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연 워크샵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 생활에 대한 별다른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갖은 이유로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었던 나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겠다며 짐짓 쿨한 척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관계에 의미부여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의사 표현도, 감정 표현도 어설펐던 나는 어느새 함께 웃고 떠드는 법을 배웠고, 가끔씩은 같이 울고 화내며 무언가를 나누는 법을 알아갔다.

 

대학 생활 동안 몸도 마음도 참 많이 아팠다. 요새는 어디 아픈 데 없냐 물어오는 이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구태여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 대신, 내가 로또 당첨되면 우리 엄마랑 나눠 가져, 몇 십년이 지나도 생일 케이크는 같이 불자, 따위의 실 없는 말들로 진심을 전하곤 한다.


 

 

5.



수많은 인연 끝에 스물 넷의 내가 남았다. 어른인 줄로만 알았던 스물 넷의 나이는 보잘 것 없었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여전히 삶의 가닥을 못잡은 채 헤매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간의 여정은 어둡고 광막한 삶에 작은 등을 환히 켜주었고, 단출하고 빳빳한 삶의 한 페이지에 의미와 은유가 가득히 담긴, 손 때 묻은 흔적을 남겼다. 이렇게 차곡차곡 삶의 한 페이지들을 쌓아가겠지. 결국 완성되는 건 먼 훗날의 '나'라는 한 사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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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증명하는 듯 학교 생활은 결국 끝나고 말았다. 구구절절 떠들어댄만큼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로 인해 아파하고, 아쉬워하며, 상처받기도 했다. 남들만큼 치열한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 받는 법을 넘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이들 덕에 그저 혼자인 줄로만 알았던 삶을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 괜찮다고,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유난스럽다 생각할 만한 나의 학교 생활은 내게 이런 의미를 남겼다.


 

 

6.


 

나의 20대.


돈 벌이를 위해 강행했던 아르바이트에서 날 선 모습을 온기로 보듬어주는 이들을 만났고, 불안한 마음에 향했던 취업 교육에서는 내 자신을 억누르던 부담감을 덜어내고 그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 이들을 만났으며, 술이 좋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반복했던 술 자리에서는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 학교에서 만난 모든 이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팎에서 늘 함께 울고 웃으며 내게 가족과 같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여느 청춘들과는 달리 그리 치열하지도, 애가 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구구절절 써내려간 이 글이 그저 꽃밭에서 탈피하지 못한 어린 청년의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글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곁에 선 이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의 제목이다. 사실 여행 에세이의 제목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을 담백하게 그려내는 문장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활기를 되찾아가며,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학교와 함께한 지난 오년간의 세월은 사랑이었고, 여행이었다.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학교는 매순간을 톺아보며 추억하고 싶은 여행지가 될 것같다.

 

*


언젠가 말했듯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수많은 우연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져 벌어진, 그래, 확률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든 운명처럼 다가온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깨닫게 된 것 같다. 몇 년간의 생활을 양분삼아 이제서야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거쳐가는 학교 생활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동안 만난 이들에게 이 한마디를 한 번쯤은 숨김없이 전해주고 싶어서다. 고맙다고,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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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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