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란의 창문 밖, 진정한 가치를 만나다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

글 입력 2019.12.2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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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메인포스터A2.jpg

 
 
 
100년을 살아도 변치 않는 '알란'의 철학


1. 100살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100세 노인.jpg


 

'알란'은 확실히 평범한 100세 노인은 아니다. 그는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에 엄청난 영향력을 펼치며 살아왔다. 그의 폭탄 제조 능력 때문이었을까,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폭탄을 제조했고, 전쟁과 목숨이 오가는 위험천만한 여행을 했다. 그는 그 속에서 잘 살아남았다. 무려 100년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고, 창문을 열고 새로운 여행을 다시 떠났다.


그의 인생에 목적지란 딱히 없었다. 굳이 있다면, 그는 늘 말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늘 한결같았다. 누울 침대, 밥과 술,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는 그것들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면, 어디든 그의 목적지가 되었다. 쉽게 겪기 어려운 수많은 경험을 겪고도 '알란'은 무엇도 더 바라지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의 인생에 그를 설레게 만들던 것은 바로 '폭탄'이었다. 그는 폭탄 만드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순수하게 즐겼다. 그에게 폭탄은 즐거움을 주는 무언가 외의 의미가 없었다. 폭탄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그는 그저 능력 있는 기술자였지만, 그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달리, 그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순수한 감정을 따랐고, 그에게 중요한 것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7. 핫도그 장수 베너, 좀도둑 율리우스, 농가주인 구닐라, 코끼리 소냐와 행복한 시간.jpg


 

누군가는 ‘알란’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가 더 큰 돈, 권력을 얻을 기회를 잡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100살이 된 그의 곁에 끝까지 남은 건 그의 친구 ‘유리’와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에게 아무리 큰 사건이 스쳐 갔어도, 그가 아무리 대단한 일들에 연루되었어도, 삶의 끝에 그에게 위로를 건네고 힘을 준 건 그의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유리’ 아들의 전화와 ‘아인슈타인’의 전보는 그의 삶이 행복했음을 증명했다. 역사적인 일들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한결같았다. 침대, 밥, 술, 그리고 친구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은 그의 100년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8. 유리소비치 포포프와 운명적 만남.jpg


 

또한, 큰 사건 앞에서도 늘 침착했고, 감정의 동요 없이 꿋꿋이 살아오던 그가 처음으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고양이 ‘몰로토프’와의 이별이었다. 그는 생전 처음 겪어본 고통이라며 절규했고, 이성을 잃었다. 어떠한 정치적 사건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던 ‘알란’이 처음으로 자신을 잃던 순간이었다. 그를 진정으로 움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몰로토프'를 향한 사랑이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세 노인>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세상에는 우리를 흔드는 많은 것들 있다. 정치 체제, 사회 이슈, 권력과 욕심 등에 우리는 자꾸만 흔들리고, 진짜 원하는 것을 잃게 된다. ‘알란’은 자신을 흔드는 것들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진실한 가치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떨까.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말, 100년이 흐른 후에도 가치 있는 무언가일까?


 

16. 길을 잃었던 아인슈타인의 전보가 도착하다.jpg


 

때로는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단에 이끌려 원치 않는 결과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순간, 궁극적으로 바라던 무언가는 변질되기 쉽다. ‘알란’은 자신의 목표에 상당히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그는 계산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했다. 폭탄을 사랑하는 마음도, 행복을 꿈꾸던 모습도, 그가 솔직하지 않던 순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100살이 되어서도 진실한 관계를 맺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특별히 대단히 이야기하거나, 감정적으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간 인생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말하던 진리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어.”,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는 100년을 살았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닌, 100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알란’만의 인생 철학이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세 노인”이 말하는 인생 철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여전히 꿈꿀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담담히 펼쳐 놓는다.


 
'연극열전'의 걸작, 장르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정말 훌륭한 연극이었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연극열전’에 대한 감탄을 멈출 수 없다. 연극이기에 만나볼 수 있던 것들이 넘쳐났고, 스토리를 넘어서 관객이 연극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2. 공연을 시작합니다!.jpg


 

'젠더 프리 캐스팅', '캐릭터 저글링', 그리고 무대 설정. 모든 것은 ‘연극’만이 담아낼 수 있는 매력을 최고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연출가, 배우, 그리고 관객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함께 맺은 암묵적인 약속으로 인해 연극이 완성되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배우와 관객이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않고도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는 보여줬다.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배우의 성별을 지우고, '캐릭터 저글링'으로 배역을 주고 받는다. 관객은 이름표를 통해 배역을 받아들인다. 또한, 자동차 인형을 보고 자동차라고 인식하고, 스페인 춤을 보고 무대 위를 스페인이라고 믿는다. 관객과 배우는 공연장 내에서 서로 합의된 것들을 진실로 믿고,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간다. 관객이 믿어주지 않는다면 연출의 의도는 실현될 수 없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실현했고, 차별성 있는 공연을 만들어냈다. 연출의 의도에 따라 배우와 관객은 공연장에서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해 냈고, 극이 끝날 때까지 현실을 잊고 완전히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열연과 소품의 적절한 활용, 무대의 구성은, 60명에 달하는 인물과 세계 곳곳의 장소를 그대로 구현해냈다.


 

5. 스페인으로 간 알란. 전통춤으로 나라를 알린다.jpg


 

연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즐거움이었다. 책은 표현의 제약이 없고, 영화는 장소의 제약이 없다. 하지만, 연극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표현, 모든 것들이 무대 위에서 제약된다. 이 한계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완전히 극복했고, 공연장 내의 소소한 약속은 작품에 대한 즐거움을 더했다. 이렇게 표현되고, 이렇게 극복될 수 있다는 데서 감탄했고, 관객과 배우는 모두 공연 속에서 작품에 매료되었다.


연극에 사실이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무대 위에 있으면 양동이도 사람이 되고, 사다리도 히말라야가 된다. 무대라는 공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이런 표현에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마법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는 연극의 이런 특성을 200, 아니 300% 활용했다. 무대 위에 실제 배우는 5명뿐이었지만, 분명 그 공간에 8명의 사람과 3마리의 동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타 연극에서는 볼 수 없던 많은 장치가 활용되었다. 자칫 몰입을 훼손할 수 있던 소품의 축소나 비유적 표현에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기발한 표현법으로 오히려 극의 즐거움을 확대했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만의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캐릭터 저글링'이 어떻게 다가올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공연을 본 후에는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가히 최고의 연극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보고 싶은 연극, 벌써 그리운 '알란'


17. 다시 촛불을 붙이는 알란.jpg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연극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 그 어떤 누구에게든 "최고의 연극"이라고 말하며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었다. 오래 남는 울림과 순간의 즐거움, 연극으로서의 매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삶에 지친 사람이라면 '알란'의 진심에 반하고, 삶이 지루한 사람이라면 연극의 묘미에 실컷 웃고, 삶의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알란' 일당과 함께 진정으로 향할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알란'이 100년간 지켜오던 가치는,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은희.jpg


[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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