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계사를 넘나드는 100세 노인의 폭발적인 예술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공연]

폭탄전문가 알란 칼손의 폭탄 예술을 보여드립니다.
글 입력 2019.12.21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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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폭발이다.”

 

오카모토 타로의 명언이다. 예술은 인간의 삶 그 자체, 강렬하게 살아가는 자가 생명을 분출하여 폭발시키는 것. 그 삶이 바로 예술이다. 아쉽게도 현대에는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뒷전인 채 패러디하여 폭탄 마들의 클리셰 대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칼손’이야 말로 “예술은 폭발이다.”를 상징하는 이데아적 인물이다. 그의 삶은 예술이며, 그의 삶은 폭발이며, 그의 폭발은 예술이며, 그의 예술은 폭발이다.

 

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시대였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매듭진 역사는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 알란 칼손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기보단, 그저 문제를 우스꽝스럽게 폭파할 뿐이다. 그의 영웅담을 듣다 보면 복잡한 문제로 갈등을 겪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역사를 바꾼 조연은 세상에 많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한 이중스파이 ‘후안 푸욜 가르시아‘, 소련에 미국의 원자폭탄 기술을 유출한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을 막은 영웅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역사의 물결을 뒤흔든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짜릿하게 만든다. 소설은 그것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단 한 사람이 그 모든 물결을 뒤집어놓고 다닌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것도 그 점 때문이 아닐까?

 


6. 그냥 가보고싶어서 간 미국에서 우연히 핵 개발에 기여하다.jpg



연극은 소설의 장점을 연극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승화시켰다. 소설은 근대 역사를 한 사람에게 압축시키는 데 그쳤다면, 연극은 그 역사적 인물 모두를 단 5명에게 압축시켰다. 배우들은 오펜하이머이자 스탈린이고, 김일성이며 프랑코이고, 마오쩌둥이자 해리 트루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세계사는 밤을 새워도 재밌을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하품이 나오는 따분한 이야기일 수 있다. 연극은 그런 따분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5명이 그 수많은 사람들을 연기한다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맞다. 보는 동안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움마저도 유머러스하게 탈바꿈했다. 예를들어 6명 이상이 나와야 하는 장면에서는 사람이 1명이 모자라다. 그런 장면에서 1명은 필연적으로 2명을 동시에 연기해야만 한다. 2명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1명의 노고를 극중극 형식으로 연출하여 관객들을 재미에 빠지게 한다. 그중에서도 동물이 나오는 장면은 관객들 모두가 폭소하는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5. 스페인으로 간 알란. 전통춤으로 나라를 알린다.jpg

 


연극에 맞추어 조금씩 각색된 부분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다. 원작에 등장하는 갱단은 'Never Again' 이었지만 연극에서는 라임을 맞추고 싶었는지 'Never Ever'였다. 볼트가 네버! 에버! 라는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 조금 더 인상 깊게 느껴졌다. 갱단원 볼트가 소설과 연극은 다른 이유로 화장실에 들어갔고, 알란 칼손이 거세를 받는 장면도 삭제되었는데 굳이 안 느껴도 될 혐오감을 배제해주는 배려가 엿보였다.

 

나아가 원작에서는 알란 칼손은 남성의 서사에 불과했지만, 해당 작품에선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진행됐다. 특히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끄는 주인공인 노인 알란칼손을 남성배우 오용과 여성 배우 배해선으로 더블 캐스팅했다. 나의 관람 일에는 배우 배해선님이 출연했다. 할머니 알란으로서 전달하는 연극의 메시지는 원작과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런 알란은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뉘어 무대에 등장하는데, 5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알란의 성장 서사를 담당한다. 알란의 시작은 할머니였다가 청년이 되고 소녀가 된다.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성적 구분에 처음은 혼란스럽지만 서사에 있어 알란의 성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극의 진행과 함께 깨닫는다.

 


1. 100세 생일 파티가 열리기 1시간 50분 전.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도망치다..jpg


 

이러한 부분들은 작은 부분이지만 중요한 갈래가 바뀌기도 하였다.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의 소설 속 알란 칼손은 연극에서 순수하고 올곧은 인물로 탈바꿈했다. 소설 속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트렁크를 훔쳤지만 연극에서는 훔칠 의도는 없었던 인물처럼 묘사된다.


원작자가 근대사의 어둠과 그들의 바보 같은 면을 조명하고 싶었다면, 연극을 위해 각색한 사람은 알란 칼손이라는 사람의 인생관을 관객들에게 설파하고 싶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창문을 넘어 양로원을 탈출하는 장면을 상당히 공을 들여 연출했고,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연극이 끝날 때도 창문을 넘어 극장을 탈출한다. 그 구성 덕에 연극의 여운은 더 깊이 가슴 속에 남았다. 그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도 같은 구성을 써본다.

 

“예술은 폭발이다.”


 


알리미.jpg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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