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닿는 이야기 - 영화 "컨택트"(Arrival, 2016)

문과 판 SF 영화라고?
글 입력 2019.12.1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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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다.

영화 <컨택트 (Arrival, 2016)>와의 만남은.

 


We are so bound by time, by its order.

우리는 시간에 너무 얽매여있어요,

특히 그 시간의 순서에...


<컨택트(arrival,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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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문과 판 SF영화’란 수식어가 붙었다. 나름 영어학을 전공했다고 언어학을 SF 장르에 어떻게 적용했을지, 문과 판 SF 영화란 과연 어떤 영화일지, 궁금증을 안고 극장에 간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나는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해서 <컨택트>와 처음 만났다. 그 첫 만남은 강렬했으면 아주 좋았겠으나, 그리 긍정적이진 않았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땐,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혀 이해 가지 않았다.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일종의 틀로 작용하고 새로운 언어는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언어학, 기호학을 공부하며 질릴 정도로 들어왔던 이 문장을 그저 ‘외계인’이라는 소재로 다시 확인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언어학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문장과 ‘hannah’라는 영어 이름만을 남기고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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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이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문과 판 SF 영화’라는 문구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흐릿한 잔상으로만 남아있던 <컨택트>에 대한 기억은 나름 선명한 글자들로 남았다. 여전히 완벽하게 동의할 순 없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을 조금씩 곱씹어 보려 한다.

 

루이스 뱅크스는 언어학 전문가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에 들어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학생들 대다수는 자리를 비웠고, 수업을 방해라도 하듯 학생들의 휴대폰에선 알림이 계속 울린다. 뉴스를 틀어보란 학생의 말에 켠 TV에선 정체 모를 비행물체가 지구 12곳 상공에 나타났다는 속보가 들린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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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몬태나 주 상공에 나타난 비행 물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루이스는 언어 소통 학자로 투입된다. 비행 물체 속에서 나타난 괴생명체의 정체를,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한 조치이다.

 

영화는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와 과학자 이안 도넬리가 외계에서 온 생명체들과 소통해나가는 과정을, 동시에 정체 모를 괴생명체의 출현으로 벌어지는 세계 곳곳의 혼란을 그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 끼치는 영향과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생명체들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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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 포드(영화 속 인물들이 외계 생명체를 부르는 명칭)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사람의 언어와 확연히 다르다. 음성과 관계없는 표의문자를 사용하며, 하나의 기호가 수많은 단어를 포함한다.


루이스는 이들과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언어를 분석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친다. 그들과의 접촉(contact)이 계속될수록 루이스는 이상한 꿈을 꾼다. 정체 모를 아이가 나오고, 아이는 그녀를 ‘엄마’라 부른다.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언어학적 핵심은 ‘언어를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관점의 변화’이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인류의 시간 개념을 거스른다. 루이스는 이들의 언어를 연구하고 학습하면서 이 독특한 시간 개념을 알게 된다.


이들에겐 과거-현재-미래가 일직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평적으로 조각조각 분리되어 떠다니는 인생의 순간들은 루이스를 덮쳐온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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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컨택트>가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이 나타난다. 당신의 미래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 미래를 바꿀 것인가, 고스란히 맞이할 것인가.’ 비극적인 결말이 정해져 있지만, 행복한 여정이 가득한 여행이 있다.


누군가는 이 여행길에 앞에서 비극을 알면서도 그 기쁨을 맞이하러 길을 나설 것이고, 누군가는 애초에 희망 없는 여행길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옳은 선택이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 갈래 길에서 루이스의 선택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야기의 퍼즐이 얼추 맞출 수 있었다. 이야기의 윤곽을 인식하고 난 뒤 가장 먼저 찾아온 아쉬움은 제목이었다. 이 영화의 개봉 원제는 ‘Arrival’, 도착이라는 의미다. 무언가 닿지 않던 곳에 드디어 닿았다는 어감을 준다. 헵타 포드와의 접촉(contact)을 통해 루이스가 당도한(arrival) 곳은 그녀의 미래였다.

 

루이스는 새로운 생명체,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웠고, 이를 통해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 짓는다. 관객들 역시 그녀를 지켜보면서 각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되돌아본다. 결국, 돌고 돌아 이 이야기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에 대한 탐구이다. 그렇기에 헵타 포드와의 접촉에 더 많은 비중을 주는 contact라는 제목보다는 루이스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arrival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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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애매한 균형 역시 아쉬운 점 중 하나다. 영화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은 ‘루이스 뱅크스’라는 여성의 인생이다. 이 인물이 외계 생명체와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마주하는 스토리가 ‘arrival’이라는 큰 줄기라면, 이 외계 생명체로 인해 발생한 세계의 혼란과 그들과 소통하려는 사회적인 움직임은 ‘contact’라는 부가적인 줄기다.

 

새로운 언어와의 접촉을 통해 진정한 ‘나’에게 당도하는 것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이라기엔, 루이스를 제외한 외부의 움직임이 다소 많이 그려진다. 외계인의 침략을 걱정하면서 공격을 가하려는 움직임들이 루이스의 인생과 비슷한 비중으로 묘사되면서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이 남았다. 단순히 헵타 포드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으로 시간의 순서를 거스를 수 있다는 설정도, 루이스가 본 ‘미래의 루이스가 과거 자신의 행동을 알지 못한다’는 점도 의아함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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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작은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원작에 비해 영화는 두 생명체가 각자의 언어 체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과정이 더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는 평이 있다. 더불어 헵타 포드의 언어를 배우는 일을 통해 시간 질서를 재정립하는 원리를 ‘페르마의 정리’에서 찾는다.



페르마의 원리란, 빛의 이동 경로가 최소의 시간이 걸리는 경로라는 원리이다. 어느 경로가 최소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는 변분법이라는 방법을 쓰면 된다. 빛의 입장에서 보자면, 빛의 알갱이인 광자(光子, photon)가 미리 모든 경로를 탐색하고 경로별 소요시간을 계산한 뒤에 최소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광자는 자신이 출발하기도 전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_이종필(물리학자), <헵타포드의 일괴암적 인식>, 씨네 21, 2017


 

언어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사람과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 영화가 ‘문과 판 SF영화’라 불릴만하지만, 끝에 남은 의뭉스러움은 결국 원작을 읽고 싶다는 마음만 남겼다. 언어 교류를 통해 나를 확장하는 과정,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이론, 무형의 상징물인 언어로 상상을 자극하는 원작을 경험하고 난다면, 오히려 영화 <컨택트>가 묘사하는 유형의 풍경들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원작을 읽은 뒤 다시 만날 <컨택트>를 상상하며 살며시 이 영화와의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해본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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