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캐롤(Carol) [영화]

캐롤 그리고 윤희에게
글 입력 2019.12.1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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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달력의 숫자가 스물다섯에 가까워지니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선 벌써 미슬토우를 매달고 그에 어울리는 영화를 찾고 또 보게 된다. 캐롤이라는 영화를 안 건 사실 꽤 오래됐다. 워낙 주변에서 좋은 평이 자자한 영화이고 그만큼 추천을 많이 받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약 두 번의 겨울을 지나 2019년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캐롤에 손을 뻗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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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러닝타임은 118분. 내내 무겁다. 땅 아래에 깊게 묻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보는 기분. 테레즈와 캐롤은 어떻게 될지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운명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함에도 둘은 운명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금세 눈을 피한다. 테레즈와 캐롤은 이상하리만큼 서로에게 고정된 시선을 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일부러 두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캐롤의 장갑으로부터 둘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캐롤 그리고 윤희에게



영화를 보던 중 같은 퀴어 영화인 <윤희에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나 시대는 많이 달랐음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남성이 두 사람의 관계에 장애물로 그려진 것. 우선 남성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린다. 윤희의 오빠와 윤희의 남편은 직접적으로 그 관계를 방해한 것은 아니지만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부부관계, 이 또한 순전히 남편 입장에서 해결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 관계로 둘은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캐롤의 남편 하지 또한 도청까지 해가며 양육권을 빼앗으려 하고 부부 관계를 이어가길 바랐고, 리처드 또한 테레즈에게 아무렇지 않게 과거 본인이 만났던 여자들과의 성관계까지 언급해가며 관계를 이어가길 바랐다.

 

둘째는 가족 구성원이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것. 윤희는 쥰을 사랑했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캐롤도 그랬다. 둘의 관계는 한 번 무너졌고 캐롤은 심리치료를 받았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동성애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정신적 질환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조심스럽게 적는 것은 이 또한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혐오의 눈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그들이 더욱 안쓰러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동성애는 사랑의 아주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셋째는 손편지와 필름카메라라는 요소를 넣은 것. 사실 둘 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영화의 여운이 더 길고 영화가 더 마음 속에 깊게 자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편지라는 수단은 글의 조각들뿐만 아니라 발신인의 숨결까지 담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 보아도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또 어떠한 의도로 넣었는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윤희에게의 새봄과 캐롤에서의 테레즈는, 형태와 인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메인 인물을 한 번 더 프레이밍 해서 담아낸다. 이러한 아날로그함과 입체적 인물을 평면에 담아내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더 제시하는 형식이 생각보다 영화의 큰 부분으로 기억에 자리잡았다.

 

마지막으로 겨울을 배경으로 한 것. 그 이유는 모르겠다만 역설적이게도 겨울이라는 분위기가 영화를 오히려 더 따뜻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던, 그리고 어느 곳의 겨울이었던, 한색으로 가득한 윤희에게, 난색으로 가득한 캐롤 모두 영화를 통틀어 가장 온도 높은 인물은 윤희와 쥰 그리고 캐롤과 테레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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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not afraid"


 

영화를 통틀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가 끝을 보여줄 즈음 필의 파티에서부터 테레즈가 캐롤을 찾아가는 장면에 수많은 이성애 커플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파티 장소에서도 택시를 잡으러 나간 도로변에서도, 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테레즈는 많은 이성애 커플을 스쳐 지난다. 또 필의 파티에서는 레즈비언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여성이 테레즈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아마 그 여성과의 짧은 대화가 캐롤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캐롤을 찾아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 열린 결말 아닌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리는 이 영화의 마무리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위에도 언급했듯 영화를 보는 내내 둘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단 1퍼센트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리상 해피엔딩이 지루하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간절하게 해피엔딩을 바랐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영화는 글을 쓰면서도 벌써 그립기에 겨울이 가기 전 한 번 더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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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ngel, flung out of space"


 

스토리도 너무 좋았지만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요소가 참 많았다. 가장 크게 눈이 갔던 것은 캐롤과 테레즈의 옷과 잡화. 테레즈의 베레모가 나올 때마다 속으로 너무 예쁘다! 너무 잘 어울린다!를 외쳤고, 이러한 요소들을 품은 영화의 전반적인 색감 자체가 톤 다운된 컬러들이 이루는 조화의 정석이 아니었나 싶다. 옷이나 잡화 이외에도 크게는 공간적인 배경 작게는 자잘한 소품들까지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다.

 

또 배우들의 연기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캐롤과 테레즈 그 자체였다. 어쩜 이 여자는 이름도 캐롤일까? 이 여자는 테레즈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캐릭터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윤희에게와 다르게 두 사람의 지위와 나이 차이를 둔 설정까지도 색다르고 너무 매력적이었다. 자석의 N극과 S극 처럼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결국 서로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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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랜만에 긴 시간 동안 연필을 붙들고 있었다. 캐롤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2년 전의 내가 같은 장면을 그린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사진에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다고 한다. 그림도 다를 것 없다. 오브제에 대한 애정이 연필 끝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캐롤을 들으며 적는 이 글의 마지막 줄. 흠뻑 젖은 구름처럼, 어둡고 무겁지만 따뜻하며 또 안정감을 주는, 가히 사랑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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