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벨문학상 작품 읽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도서]

글 입력 2019.12.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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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설 주인공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행동하기보다는 사소한 일을 관찰하고 고찰하고 사색하기를 좋아한다.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이나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날의 위한 우산'을 읽으면서 느꼈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속 주인공도 비슷한 주인공이다. 침울하고 철학적이고 한없이 진지한.

 

하지만 이 작품 속 '나'에게는 한트케만의 특징이 담겨 있다. 그에게는 발저의 어린애 같은 천진함이나 게나치노의 수줍음 없이, 더 자폐적이고 의심에 차 있는 주인공이다. 묵묵히 고뇌하며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아내 유디트가 남긴 짧은 편지에서 책은 시작한다. 오래 싸우고 증오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난 것에 놀란 '나'는 그녀를 찾아 떠난다.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그는 지금까지 자기 인생의 반쪽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주인공의 자아가 변화하는 성장 소설임에도, 내게 독특하게 다가왔던 건 우리의 주인공 '나'가 그렇게 어리지 않다는 것(이제 서른 살이다)이다. 결혼했고, 직업도 있고, 이미 인생의 성숙기에 도달한 사람 같다. 스승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가족을 떠나는 등 익숙한 성장 소설의 도식을 따르기에 그는 지쳐 보인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그는 무엇과 긴 이별을 하는 걸까?

 

우리는 나이 든 뒤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다시 변화할 수 있을까? 이혼도 결혼도 다 말쑥한 어른의 일 같은데 주인공은 계속 내면에 풀리지 않는 불만을 품고 있다. 억누르고, 번민하고, 투덜거리듯 계속 고민하는 '나'가 호감 가는 인물형은 아니다. 매력적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만약 어느 파티에서 그를 보았다면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늘진 얼굴로 진지하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초반의 지루함만 넘기면 유디트와 '나'가 서로 권총을 갖고 멜랑콜리한 기 싸움을 하는 장면까지 순식간에 읽는다. 존 포드와 유디트의 마지막 문장을 눈에 담고 책을 덮으니, 가슴에 서늘하고 맑은 바람이 불었다.

 

*

 

처음에는 주인공의 독백이 유난스럽고 과도하게 보인다. 왜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행동을 반추하고 타인을 관찰하려는 걸까? 책을 읽다 보면 그 시도는 주인공이 세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고자 타협하지 않는, 진지한 삶의 태도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옛 애인 클레어와 그녀의 딸 베네딕틱과 함께 여행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강요나 부담 없이 곁에 있는 두 사람과 함께하면서 주인공은 조금씩 변화한다. 그는 클레어와 과거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토론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왔고, 어릴 때는 이러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어쩐지 내가 변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허물을 벗는 뱀처럼, 탈피하는 감각은 어떤 느낌일까. 그의 성장은, 자아의 변화는 외부의 사건 때문에 벌어지지 않는다. 그는 성장을 겪거나, 맞닥뜨리지 않는다. 그는 탈피하듯, 시간의 흐름에 맞춰 천천히 변한다. 계속해서 타인과,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고심하고 관찰한 결과, 그는 자신이 서른 살의 변화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묘한 감회에 젖은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고자 했으나 그 노력을 만족스러운 대가를 얻지 못했다. 사랑했던 아내와는 끝없이 다퉜으며 결국 그녀는 떠난다.

 

아내를 찾아야 하는 건, 사라진 그 여인이 자기 자아의 타자. 반쪽이기 때문이다. 애증 하는 그녀 없이 그는 고독하고 홀로 있는 존재일 뿐이다.

 

*

 

그의 깨달음은 실측백나무를 통해 이뤄진다. 그는 깨달음으로 사회 속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다. 대신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어린 시절과의 이별을 통해 고독한 인간으로서 세계에 존재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죽일 듯 싸웠던 유디트와 재회했을 때 그녀는 더는 그를 뒤흔들 수 없다. 권총도 그를 겁 줄 수 없다. 죽음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번민과 책과 내면을 탐구하고자 했던 갈망은 예상치 못한 여행을 통해 끝을 본다. 탈피가 끝날 무렵 다시 만난 아내의 모습은 어쩐지 환상 같다. 그가 오래 의지했고,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과거의 자아같이 느껴진다.

 

결말이 평화롭다 해서 희망찬 건 아니다. 그는 아내와 헤어질 테고 여전히 고독하지만 공허하지 않게 삶을 살아갈 것이다. 본래 탈피는 혼자서 껍질을 벗겨내는 괴로움에 비해 외적으로는 미미한 반짝임만을 남기는 것. 나는 그의 절제된 문장과 무심해 보이는 대사들 사이에서 그 통증을 발견했다. 그리고 1부가 끝날 무렵에는 주인공을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문단도 있다.



나는 클레어에게 옆방으로 건너가서 아이를 좀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베네딕틴이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그 애가 지독히 외로울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우리 둘만 여기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저 건너편의 그 미성숙한 존재가 고통스러울 만큼 따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져. 지금 당장 아이를 깨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따분함을 쫓아버려야 할 것 같아. 아이가 지금 따분한 잠과 꿈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느껴져서 하는 소리야. 아이 곁에 같이 누워 위로의 말을 해주며 아이가 그 기나긴 외로움을 잊게 만들어주고 싶어.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그 즉시 의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 그러니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내용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곧바로 수긍할 수 있어." 나는 클레어에게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군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가 얼마나 구원되기를 바랐는지 들려주었다.


- P.107-108


 

변화는 피할 수 없고, 괴로움은 길고 긴 밤으로 계속된다. 시간의 더께를 품은 그는 지난날과 기나긴 이별을 이루어 내야 하지만, 밤이 되면 문밖 어둠 속에서 혼자 떨고 있을 영혼과 함께하고 싶다고 속삭이는 주인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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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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