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 취업은 하고싶어] 02. 신이 나를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 때

#죽고 싶어도 괜찮아
글 입력 2019.12.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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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신이 나를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 때

#죽고 싶어도 괜찮아

 


 

 

나는 무교다. 종교가 없다. 엄마 쪽 집안이 기독교고 아빠 쪽 집안이 불교라서 어릴 때부터 찬송가와 염불을 동시에 들으면서 자랐다. 친구 따라 교회 가면 아빠가 화를 냈고 아빠가 화를 내면 엄마가 화를 냈다. 해서 난 마침내 철저한 무교가 되었다.


이런 내가 신을 찾은 적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키우던 거북이가 생사를 오락가락할 때였다. 지금은 거북이였는지 자라였는지 그 친구의 정체성마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당시에 그 존재는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해서 그가 온종일 힘도 없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 화장실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박았다.) 생애 처음 ‘기도’라는 걸 했었다. 거북이를 살려주면 뭐든 하겠다고 울면서 빌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거북이는 살아났다. 그 이후로 신을 믿게 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 순간이 기억되는 걸 보면 무언가를 간절하게 빌었던 그 경험이 스스로도 꽤 강렬했나 보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나는 또다시 신을 찾게 되었다. 취준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


얼마 전, 모 기업의 인적성 시험을 봤다. 생애 첫 인적성 시험이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도형도 열심히 돌리고 표도 열심히 해석하고 소금물의 농도도 구했다. 만약 대한민국의 20대 인구가 지금의 절반이라면 그래도 이 시험이 인재 채용 과정에 포함될지 의문이 들긴 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보게 함으로써 지원자의 멘탈을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임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생인 나는 중간고사를 모두 내팽개치고 인적성 준비에 올인했다. 일주일 동안 문제집 4권을 시간 맞춰가며 풀었고 온종일 문제를 풀며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왔다. 거기서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죽었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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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준비하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신이 있다면, 신한테도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이 시험은 꼭 붙게 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껏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과 의미를 다해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에 비해 성과가 대단하지 않다고 느꼈다. 지금껏 내가 놓친 운과 기회들을 신이 잊지 않고 킵해놨다면, 그 총합을 내 인생의 다른 어떤 순간보다도 이번에 써 주길 바랐다. 그만큼 간절했고, 열심히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노오력은 디폴트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영민함 혹은 영악함이 필요한 현대사회에서 지금까지의 나는 허둥지둥 일단 들이받고 보는 덩치 큰 곰 같았다. 애초부터 나는 세상 모든 것이 걱정인 걱정 인형이었으며 욕심은 많지만 차분함은 적어 안달복달 스스로를 굉장히 괴롭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시험에서 떨어진 여러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싶었다. 그러자 비단 이 시험 하나만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실패라는 데까지 결론이 미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번아웃 증후군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 잘 안 풀릴 때 ‘짜증 난다’, ‘속상하다’와 같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와 같이 사고가 극단적으로 뛰어 버리면 번아웃 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때 당시의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역시 난 뭘 해도 안 된다고 스스로를 비관했다. 많이 지치고, 많이 겁났던 것 같다.


나는 분명 내 인생이 너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도화지 같은 내 인생에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지 두려우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노력과 설계를 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엉망진창의 몰골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더욱 두려웠다. 이 실패를 통해 신이 없다고 믿어 버리는 게 아니라, 신이 나를 까먹었다고 믿게 되었다. 세상을 향한 분노보다도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증오가 커졌다. 난 왜 존재할까, 살 이유가 없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그냥 산다 등등은 내가 그 시기에 실제로 했던 말과 생각들이다.

 

***


이러한 나에게 약간의 일격을 가해준 것은 단지 한 문장이었다. 그 날도 갑작스럽게 기분이 우울해졌고, 나는 친구에게 내 인생은 신이 버린 인생이라며 한탄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신이 너를 버려도

네가 너를 안 버리면 되지.

 


왜 신이라는 존재가 내 인생의 성취와 실패들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내 인생을 다른 존재에게 외주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인생을 부여잡고 끌고 나가야 할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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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마음가짐이 약간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냥 이 시기에 적응이 된 걸 수도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취준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디폴트값의 불안과 우울에 익숙해져서 작은 기쁨과 의미도 전보다 크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봐줄 만하다. 지금의 나 역시 여전히 남과 비교하며 자신감 없어지고, 내가 뭘 해낼 수 있을까 싶어 두려워하다가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결국엔 약간은 괜찮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내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침내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인 봉사 계획도 세웠고, 일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다가 알렝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도 읽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 비하면 분명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또 이렇게 깊어진 내가 조금은 괜찮은 것 같다.


해서 2019년 12월의 나는, 조금 시간이 걸려도, 결국에는 나만의 의미가 있는 일을 만날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을 갖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자양분이 될 가지각색 형태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고, 그것이 어떤 명칭의 직업과 직무로 표현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취준생’이라는 평면적인 워딩 안에 나라는 입체적인 인간을 가두고 싶지 않다. 취직이라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내 몇십 년의 커리어 인생에서 고작 첫 발자국일 뿐이다. 단지 그것뿐. 인생에서 취직이라는 단어는 딱 그 정도의 무게감만 가지면 충분하다. 이 시기가 주는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기를.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 생각을 나는 오늘 또 남겨본다.

 


[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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