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이다. 일년 동안 뭘 했나, 생각해 보면 숨가쁘게 달린 기억밖에 없다. 사람이 좀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쉴 줄도 알고, 나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밖에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멀쩡히—사실 멀쩡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하고, 잘 웃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잘 지내다가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에만 들어오면 ‘더 나아지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거나 여러가지 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정말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뚝뚝 떨어져서 충전이 시급한 사람들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위로 받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망설인 경험, 다들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도 다 똑같이 힘들고 지친 상태인데 나만 못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 털어놓으려고 하다가도 마음을 접어 버리는 것이다.
<그림 처방전>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그림으로 심리 상태를 읽어준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나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혹은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 상태를 콕 집어 진단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떤 그림에 시선이 머무르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키워드는 ‘관계’와 ‘자존감’ 이다. 타인과의 관계와 자존감은 뗄 수 없는 존재다. 관계라는 것은 내가 타인과 맺게 되는 것인데, 이 관계가 긍정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관계의 구성원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긍정적인 마음은 자존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계라고 해서 타인과의 상호작용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가이 로즈의 <초록 거울>
작가는 내면을 돌아보고
그 속에 무엇이 비치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사실 절대 쉽지 않다. 나 역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올바른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떠나 보내고, 무너진 마음을 다스리는 모든 과정 속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 높은 자존감을 가지는 것이 그 베이스가 된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 채찍질을 가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조여 버리거나 탓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 마음을 조금은 풀어 둘 필요가 있다. 극단으로 달리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맺은 관계는 그다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마음을 다하는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공허한 내 마음을 살피자고. 나를 잃지 말자고.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점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위로가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피상적인 위로가 아닌 그림을 통해 눈으로 한 번, 마음으로 한 번 직관적으로 와닿는 명확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