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어긋난 가족’ 내러티브 [영화]

평범한데 심상치 않은 가족영화를 원한다면
글 입력 2019.12.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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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의 스틸컷 중 하나.

 

 

 

1. 내러티브 영화의 영화성,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내러티브 영화는 장면을 구성하기 위한 재료들을 현실에서 찾기에 기본적으로 영화 안에서 현실을 재생산한다. 관객은 양자가 물리적으로 명확히 구분됨에도 무의식적으로 영화의 시공간과 현실의 시공간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객에게 눈앞의 상황이 영화임을 상기시키는 기제는 내러티브(narrative)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내러티브는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힘이다.

 

내러티브는 관객에게 현실의 요소들로 만들어 낸 사건들의 연속으로 현실적이지만 명백하게 비현실적인 서사를 전달한다. 이로써 영화적인 위화감을 형성해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세계의 시공간에서 벗어나 스크린 너머의 영화적 시공간을 응시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내러티브는 영화의 성격이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를테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인위적인 영상기술이 최소한에 가깝게 쓰일수록 중요해진다. 극단적으로는 이것만이 영화와 현실의 완전한 동일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기술적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러티브를 가시적으로 구현하면 관객의 이목이 내러티브에 쏠릴 것이므로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메시지를 드러내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도 있다.

 

내러티브가 결정적인 중추로 작용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90년대에 일본 영화계에 등장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감독으로 초기에는 상실의 모티프를 주제로 한 오즈적, 형식주의적인 영화를 제작했으나 2008년 개봉한 <걸어도 걸어도>의 흥행 이후 제작 방향을 돌려 가족애와 관련된 소재를 주로 다룸으로써 현대적인 가족영화라는 장르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하여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감독이 구축한 가족의 내러티브는 가족의 일상을 스크린 위에 변칙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의 다큐멘터리성, 리얼리즘적인 논픽션의 세계를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이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내러티브가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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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왼쪽)

 

 

 

2. 영화 속 의미작용의 실체와 작동과정: 메츠의 영화기호학을 중심으로


 

<고전영화이론의 흐름>을 집필한 더들리 앤드류는 이 책에서 크리스티앙 메츠의 기호학이 영화의 작동 방법을 밝히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주장한다. 메츠가 정립한 영화 기호학은 그에 의하면 영화가 의미를 어떻게 구현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지를 설명할 포괄적인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래서 메츠 영화기호학의 목표는 개별 영화나 영화 장르들에 특별한 성질을 부여하는 의미작용의 특정한 패턴들을 밝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앤드류는 기호학의 입장에서 영화의 기능이 어떻게 파악되는지 연쇄적인 형태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 영역의 중심에 시네마적 사실들이 있으며 시네마적 사실들의 핵심에 의미작용의 과정”이 있다. 이때 시네마적인(the cinematic) 사실이란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것, 즉 스크린 속의 영화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와 하위 약호들에 대한 것을 가리킨다.

 

영화의 원 질료는 이미 수용 단계에서부터 이차적으로 가공된 질료이므로 앤드류가 파악한 메츠에 따르면 관객이 해야 할 일은 질료들의 초기 상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이차적으로 주어진 질료들을 바탕으로 영화의 시네마적 사실을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질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의미작용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의 의미작용(signification)은 텍스트에 약호화된 메시지들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표현의 과정을 가리킨다. 의미작용을 거쳐 관객에게 전달되는 의미는 상호소통성이 아닌 스크린의 일방성에서 비롯된다. 이때의 의미들은 관객이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할 약호들과 함께 매개적(mediate)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기호학의 입장에서 영화의 약호들은 반드시 관객이 직관적으로 또는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관객이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은 기호학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미시적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약호들을 통해 개별 메시지들이 영화적 의미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개별 메시지들의 연속체인 텍스트가 개별 약호들의 연속체인 체계로 구현되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서 체계는 패턴화된 텍스트 안에서 개별 메시지들을 개별 약호들과 함께 방출하도록 강제한다. 모든 메시지와 약호들의 상위에 존재하는 이 체계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내러티브 그 자체다.

 

고레에다 감독의 다큐멘터리적 영화에서 이 내러티브는 가족애가 덧씌워진, 사건의 중심에 가족이 놓여 있는 형태로 구현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가족의 삶에 존재하는 비일상적인 모순들을 폭로하는, 어긋난 형태의 내러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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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또 다른 스틸컷.

유리는 노부요 부부의 친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가족이 아닌 걸까?

 

 

 

3.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 일상에 내재하는 비일상적인 폭력


 

그렇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영화 전반에서 최상위 체계로 기능하는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크게 표면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표면적인 측면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현대사회가 규정한 일반적인 가족 구성에서 벗어났다는 특징을 보인다.

 

곧이어 살펴볼 <어느 가족>과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통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먼저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시바타 가정에서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안의 아들인 쇼타 시바타와 아버지인 오사무 시바타, 어머니인 노부요 시바타는 혈연관계가 아니며 ‘지위 상으로’ 딸일 것 같은 아키 시바타 역시 셋과 혈연으로 묶여 있지 않다. 아이들의 할머니로 등장하는 하츠에 시바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영화 초중반부에 시바타 가정은 가정폭력으로 거리를 떠돌고 있었던 유리를 데려오기도 하는 등, 피로 이어지지 않은 가정의 전형을 보여 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이러한 비혈연성이 다소 약화되나, 세 자매가 배다른 여동생을 데려와 가정을 꾸린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혈연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다음으로 현대사회가 규정한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과 두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어떻게 다른가. <어느 가족>의 시바타 가정은 현대사회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이다. 현대의 가족 구성의 경우 어머니와 아버지, 그 밑의 자녀들로 구성된 핵가족이 보편적이라 인식되는데, 이와 달리 시바타 가정은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 자녀 세대가 공존하는 비현대적인 양상을 띤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가족의 비일반성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코우다 가정은 배다른 동생인 스즈가 들어오기 전까지도 세 자매만이 가족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스즈가 들어온 후에는 네 자매가 한 가정을 이룬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정의 형태는 핵가족이다. 그래서 부모 세대 없이 자녀 세대로만 이루어진 이 가정 역시도 시바타 가정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규정한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듯 스크린 안에 등장하는 가정들은 면밀히 살펴보면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한 발 떨어진 비일반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비일반성은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비일상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시바타 가정이나 코우다 가정이나,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극렬한 가정불화에 시달리거나 외부세계로부터 엄청난 위협을 받는 등의 갈등을 겪지 않는다. 이렇게 표면적인 비일반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가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모든 인물들이 제각기의 삶을 아주 일상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고,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어울리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같이 먹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과 함께 표면적인 비일반성에서 기인하는 비일상이 동시에 전개됨으로써, 관객은 평화로운 분위기 이면에 가정이 시달리고 있는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일상에 내재된 비일상적인 폭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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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틸컷.

네 자매의 모습. 꽤나 후반부의 장면이다.

 

 

 

4. ‘어긋난 가족’ 내러티브가 실현되는 과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에서, 일상과 비일상이 변증법적으로 작동하는 ‘어긋난 가족’ 내러티브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는 메츠가 제시했던 영화 형식을 검토함으로써 유추할 수 있다. 앤드류에 따르면 메츠는 영화를 “모든 약호들과 그 하위약호들의 합”으로 제시한다. 또한 “매체의 표현 질료를 통해서 의미작용을 산출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먼저 약호는 메시지나 의미를 산출하기 위해 새겨진 논리적인 형식이다. 메츠가 약호를 “영화의 메시지를 허락하는 규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약호들의 합이 영화라는 말은, 규칙에 의해 허락된 메시지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을 영화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영화는 이러한 표현 질료인 약호를 통해 개별 메시지들의 연속체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우리에게 전달하여 일련의 의미작용을 산출한다. 앤드류가 밝히길 메츠는 텍스트를 관객과 분석가 모두에게 하나의 진동하는 체계로 작동하며 개별 메시지들이 적절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이들을 구조화한다. 그리고 이때 텍스트로 하여금 하위 메시지들을 통제하도록 역할을 부여하는, 체계 그 자체가 선행한다. 이 체계가 바로 ‘어긋난 가족’ 내러티브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구조적인 최상위 체계로서 이 내러티브가 작동하고 그 아래에 위치한 텍스트가 체계의 명령을 받아 개별 메시지들을 포괄하고 구조화하며, 각각의 메시지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감시한다.

 

이때 메시지의 수행을 논리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형식이 약호다. 따라서 내러티브가 실현되는 과정은 하위의 텍스트가 개별 메시지와 약호에 의해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이 과정을 거쳐 의미작용을 서사라는 산물로 산출한다. 고레에다 감독에서 내러티브는 이렇게 거대한 체계인 동시에 의미작용의 근본적인 기제가 된다. 이는 영화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면서 메츠가 말했던 것처럼 “문화, 관습, 작업의 산물”로서 “단지 세계를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대체로는 (무의식적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사명을 띤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구현된 구체적인 예시로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과 2016년 제39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어느 가족>의 시바타 가정에게서 가족의 내러티브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시바타 가정의 구성원은 모두 비혈연의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또한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쉽게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정상적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좀도둑 신세인 오사무는 어린 아들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친다. 노부요는 겉보기에는 공장 일을 하는 등 비교적 정상적인 일에 종사하지만 오사무처럼 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츠에의 연금을 노리고 가족의 구성원으로 편입시켰다는 사실이 작품 중후반부에서 드러나고, 하츠에가 죽은 이후에도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그녀의 죽음을 은폐한다. 아키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성인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쇼타는 새로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에서 가시적으로 멀어졌다는 괴리를 안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내러티브가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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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가족은 유리를 "납치"한 걸까?

 

 

관객은 이와 같은 비정상성에도 불구하고 여느 가정처럼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는 시바타 가정을 보며 위화감을 느낀다. 이 위화감이 많은 메시지들의 약호로 기능한다. 관객은 가족의 구성과 관련된 면모에서뿐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에서도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위화감에 시달린다. 위화감뿐 아니라 당혹감도 느낀다. 시바타 가정의 삶은 상식적인 가족의 모습과 정반대인 동시에 지극히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범법을 저지르고 사회로부터 암묵적으로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격리되어 있음에도 작품 최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이들은 평화로운, 보통의 가족들이 일상을 보내듯 그렇게 삶을 향유한다. 이 모습들을 보며 관객들은 끊임없이 당황하고 위화감에 시달리며 때로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그동안 자신이 정립해왔던 가족의 의미를 다시 숙고해보기에 이른다. 메시지와 약호들의 연속을 마주하며 관객은 서서히 이들을 지배하는 텍스트 그 자체, 즉 ‘가족의 정상성과 비정상성’이라는—내러티브 체계에 의해 패턴화된 의미에 접근한다. 그리고 영화의 초후반부에서 노부요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는 장면과 뿔뿔이 흩어진 시바타 가정의 결말을 관람함으로써 결국 비정상적인 가족에게 주어진 일상적인 생활이 비일상적인 폭력으로 해체된다는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 그 자체를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체계에의 인식은 곧바로 의미작용의 산출로 이어진다. 이때의 의미작용은 스크린 속 약호화된 메시지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가족의 정상성을 규정하는 일은 과연 얼마나 정당한지 물어보는 과정이었음을 확인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메츠가 설명했듯이 단지 세계에 존재하는 가정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관객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으로 진행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는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첫째 사치, 둘째 요시노, 셋째 치카 세 자매로 이루어진 코우다 가정은 배다른 동생인 스즈를 데려오며 네 자매, 다시 말해 자녀 세대만 존재하는 가정을 작품의 초반부에 완전히 확립한다. 이 가정은 부모 세대 없이 자녀 세대만으로 가정을 꾸렸다는 점에서 관람객에게 물리적인 위화감을 제공한다. 또한 부모 세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기에 이 가정 역시도 시마타 가정과 마찬가지로 정상성에서 꽤나 멀어졌음을 관객에게 암시한다.

 

학교를 다니는 스즈를 제외한 세 자매는 착실하게 사회생활을 보내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셋 모두 스즈를 최대한 각별하게 보살피지만 각자의 부모들이 빚어낸 껄끄러움이 은연중에 세 자매와 스즈 사이를 파고들기에 서로간의 간극이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코우다 가정 역시도 이렇듯 ‘어긋난 가족’ 내러티브의 체계 안에 종속되어 있고 관객은 시바타 가정에서와 같이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비일상적인 갈등들을 포착한다. 생모가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되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 급작스럽게 집안에 들어온 스즈와 온전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 스즈의 언니들인 세 자매 각각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충들, 각자의 어머니들을 향한 원망 등.

 

네 자매는 가정에 닥친 내외부의 폭력들과 각자가 지닌 감정의 골을 분출하며 관객에게 공감과 이해, 안타까움, 당황스러움 등 다양한 약호들을 제공한다. 관객은 이것들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메시지들을 해독하여 이 영화에 함의된 텍스트, ‘가족의 정상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의문과 가족에 닥친 위기와 폭력의 극복’이라는 집합체를 읽어 낸다. 그리고 이 텍스트에 관여하는 내러티브를 직시하여, 그간의 메시지들과 약호들을 종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가 보편으로 규정하는 가족 구성원의 형태를 만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것이 본 영화에서 산출되는 의미작용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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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하게도 어울리는 자매들

 

 

 

5. 내러티브의 작동: 내러티브 영화에서 영화적인 것의 성립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내터리브 영화에서 내터리브 그 자체는 영화의 전 과정을 통제하고 의미작용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로 기능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세계와 그의 가족영화에서 구현되는 ‘어긋난 가족’의 내러티브에서도 나타나듯 내러티브는 영화에서 체계인 동시에 약호화된 메시지를 전달하여 의미작용을 만들어내는 기제다.

 

앤드류에 의하면 메츠는 서사를 “사건들의 시간적 연속을 현실화시키지 않음으로써 진행되는 닫힌 담론”으로 정의하고 영화가 서사들의 집합을 통해 구술되는 사건과 서술의 사슬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그가 의미작용을 한 사회의 문화와 관습, 작업의 산물들로 규정하고 서사와 영화의 기본 단위들을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내러티브의 작동 과정과 서사의 현현을 연결할 고리가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내러티브가 인식되기까지 관객이 해석하는 수많은 메시지와 약호들이 서사의 전개 과정도 같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내러티브로 위시되는 의미작용의 과정이 최대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과, 내러티브 영화 특성상 스크린 안의 이미지 요소들이 리얼리즘적인 성격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고려할 때 영화적인 것의 발현은 궁극적으로 내러티브의 작동으로 발현되는 서사에서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어느 가족>이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관객이 거치게 되는 영화 해석의 단계도 내러티브로부터 암호화된 메시지인 서사를 해석하여 나름의 의미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는 문학 작품을 읽고 독자가 주제의식을 구축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래서 내러티브 영화의 영화성은 내러티브를 통해 서사성을 이끌어내어 영화를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에서 성립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영화는 이러한 내러티브 영화의 영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의의를 지닌다. 현대 가족영화의 정수를 체험하고 싶다면 이 감독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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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가족>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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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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