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정용 홈 비디오카메라는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시각예술]

아라리오뮤지엄에서 만나는 비디오 아티스트
글 입력 2019.12.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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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뮤지엄에서 만나는 비디오 아티스트


 

어느 날씨 좋은 날이었다. 이런저런 일들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일에는 전시 감상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차가우면서 따뜻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나뭇잎과 새소리를 귀에 담으면서, 골목길을 천천히 만져본다. 전시 공간이 많은 종로나 홍대를 걷다 보면 새로운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순간보다 가슴 뛰고 설레는 순간이리라. 무작정 걷다 만난 ‘뮤지엄’ 팻말에 흐르듯이 빨려 들어간다. 홍대 지역의 웬만한 갤러리나 미술관, 대안공간은 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크게 자리한 공간을 왜 이제껏 몰랐을까.

 

 

아라리오뮤지엄은 ㈜아라리오의 창업자인 김창일 회장이 남다른 안목과 열정으로 수집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컨템포러리 아트뮤지엄입니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서울과 제주에서 사무실, 영화관, 모텔 등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을 기존의 건물들이 지닌 역사적인 가치에 현대미술의 문화적 가치를 더하여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구관은 故김수근이 내세운 “공생”의 건축관이 잘 드러난 건물입니다. 한옥의 구조를 도입한 내부의 공간은 서로 막힘없이 연결되며 크고 작은 방들이 중첩되어 나타납니다. 1977년 증축을 거치며 더욱 복잡해진 내부는 한눈에 파악되지 않으며, 동일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이 공간이 주는 감흥을 제대로 느끼기 힘듭니다.

 

 

과연 그렇다. 백남준부터 키스 해링까지 이미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작가들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곳은 보통의 전시 공간과는 조금 다르다. 천장이 이상하게 낮았다가, 아주 높았다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가, 마치 비밀 통로로 향하는 것처럼 빙빙 도는 계단을 내려가기도 한다. 정해진 동선은 없지만 공간과 작품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화장실을 지나고, 끝없는 방을 지난다.

 

게다가 내가 관람하던 시간에는 관객이 2-3명 정도로 적었다. 건물이 넓다 보니 다른 관객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이 넓은 건물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밀 요새를 탐험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그만큼 아라리오 뮤지엄의 매력에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작품뿐만 아니라 비밀스러운 공간이 한몫한다. 작품이 배치된 공간은 그 매력을 더욱 극대화한다. 비밀 계단과 장소에 숨겨진 듯 아닌 듯 존재감을 내뿜는 작업들을 마주칠 때마다 보물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에 웃음과 두근거림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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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먼저, 브라운관이 먼저?


 

40년간 27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설명에 걸맞게 책에서나 볼 법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작품들에 사전 지식을 가지고 방문한다면 보물을 마주치는 기분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 반가웠던 작품은 아무래도 백남준 작가의 작업들이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보존과 유지에 대해 몇 가지 논란이 있었기에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다익선>은 브라운관으로 이루어진 설치물인데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이 브라운관이 노후해 화재 위험 및 안전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가동이 중단되면서 이것을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옳은가, 이렇게 작품을 꺼두는 것이 옳은가, 등의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으로써는 화면을 모두 꺼두는 편이 좋겠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 건물 1층에도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있다. 여러 화면으로 이루어진 이 거북이 형태의 조형물은 특별한 날에만 화면이 켜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졸업 전시를 보러 온 외부인들이 이것이 작품인지 알지 못해 작품에 훼손 직전까지 가는 사건이 있었다. 졸업전시 내내 비가 와서 관람자들은 우산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고, 물에 젖은 우산을 1층 구석에 둔다는 것이 그만 그곳에 있던 백남준 작품 위나 바로 옆에 두었던 것이다. 작품 앞에 벨트스텐드가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까지 우산을 밀어 넣어 작품이 물에 젖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커뮤니티에는 ‘저 빨간 선은 작품 보호를 위한 게 아니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거야…’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미술관에서도 그리고 매일 가는 학교에서도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항상 꺼져 있는 영상은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도 모호하게 만든다. 이번 학교에서 일어난 소동에 이러한 지점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결정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다. 백남준은 작품 제작할 때부터 작품이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을 예상했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브라운관을 교체해도 좋다’는 의사를 밝혔다. “백남준 작품의 핵심은 곡면 브라운관의 영상”이라는 의견에 따르면 화면이 나오지 않는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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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No-mad, 백남준, 1994, acrylic paint on reinforced plastic, 14 televisions, satellite antenna, camcorder, suit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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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첼로, 백남준, 1971, video tubes, TV chassis, plesiglass boxes, electronics, wiring, wood base

 

 


비디오의 등장


 

사실 영화라고 불릴 만한, 그러니까 영상 예술 물은 비디오가 나오기 전에도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가 만든 영화는 필름 태엽을 돌려서 현상을 하고, 말리고, 다시 필름을 돌리는 과정을 모두 거치면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비디오는 그러한 장소성과 접근성에 변화를 가져온다. 한 마디로 혁신을 일으켰다. 3시간에서 4시간은 걸리던 작업 시간이 2분이라는 시간으로 대폭 축소되고 그 자리에서 비디오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백남준도 이런 미디어 아트의 흐름에 발맞춰 걸어간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Sony사에서 나온 가정용 홈 비디오 카메라를 구매한 백남준은 퍼포먼스를 하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영상을 상영하기도 하였다. 퍼포먼스 아트가 가진 시간의 특수성을 영상을 통해 연장시킨 셈이었다.

 

 

백남준은 전자매체를 작품에 도입하여 새로운 예술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한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TV첼로는 세 개의 브라운관으로 첼로의 형태를 구현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작은 화물차와 텔레비전을 결합시켜 현대인의 방랑자적인 삶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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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니아 쿠라나, 2000, video, black & white, silent


 

비디오아트와 퍼포먼스 아트는 이처럼 긴밀한 관계성을 띄고 있다. 이 당시 여성 작가의 퍼포먼스 작업도 많이 등장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성 작가는 ‘공예’ 작업만을 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 관념과 달리, 소니아 쿠라나Sonia Khurana는 <새Bird> 라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2분이라는 짧은 영상 속에 담아낸다. 신체의 극복에 관련한 작업을 통해 여성이 옷을 벗는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사회적 인식을 깬다.

 

 

소니아 쿠라나는 자신의 신체를 표현의 도구로 삼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이를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는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새>에서 누드의 쿠라나는 좌대 위에 서서 비행을 시도하지만 계속 바닥으로 추락한다. 작가의 벗은 몸은 사회가 갖는 미의 기준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빌 비올라,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현대미술의 영상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영혼과 불멸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물, 불, 공기, 흙을 소재로 종교적 숭고함이 느껴지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백남준의 조수였다. 애버슨 미술관에 비디오 미술 분야의 기술자로 활동하던 그는 그 당시 백남준, 브루스 나우만 등의 전시를 돕게 된다. 이때는 비디오 아트 즉 미디어 아트 분야가 막 태동하던 시기로, 젊은 빌 비올라는 그들의 작업을 통해 매체를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을 배우고, 또한 많은 비디오 아티스트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은 슬로 모션을 주로 사용한다. <물의 순교자>에서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 위로 물방울이 그를 훑고 아래로 떨어진다. 슬로모션으로 바라보는 이 움직임은 물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상황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스스로 말했듯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 동물의 창조성, 식물의 창조성, 물의 창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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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수보드 굽타, 1999, video, color, silent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이렇듯 비디오의 특성을 이용한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수보드 굽타Subodh Gupta의 <퓨어Pure>는 영상을 반대로 되감기 하여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처음 이 영상을 마주하는 관객은 이것이 반대로 재생되는 영상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정교하게 움직임을 설계하여 진행하는 이 퍼포먼스는, 얼굴과 몸을 위에서 떨어지는 물로 씻어내리는 행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행동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이상하게 몸에 붙어 있는 갈색의 오물 덩어리가 늘어나기만 한다. 작가는 분명 위에서 떨어지는 것은 깨끗한 물방울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달라붙는 덩어리들에 의문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수보드 굽타는 인도를 상징하는 도상이나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이용하여 변화하는 인도의 사회문제들을 지적해왔다. <퓨어>에서 소의 배설물을 뒤집어쓴 채 샤워를 하고 있는 굽타는 씻어낼수록 오히려 더러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후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8-90년대를 끝으로 비디오 아트의 시대는 일단락된다. 인터넷을 통해 더 방대한 정보들이 비디오보다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디오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혁명이 일었던 것처럼 지금의 시대에서는 유튜브 같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더 길고 오랫동안 특정 행위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변화해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시대도 뒤집히고 회전하고 대체되고 나아갈 것이다. 이 흐름에 맞추어 또 어떤 예술 매체가 탄생할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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