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행복] Prologue : 행복한가요? 사소합니다

뮤지컬을 좋아합니다
글 입력 2019.11.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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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힘들 때가 있다. 우울하거나, 지치거나, 외부의 상황에 고통받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다. 경중은 있겠으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좋아하던 것도 무감각해지거나,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눈물이 나는 일이. 유치원생 아이도, 청소년도, 학생도, 취업 준비생도, 직장인도, 엄마와 아빠도 살아가는 모두에게 삶의 무게만큼 부정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죽기 직전까지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함에 잠겨 있었다. 심하게 울적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무기력했다. 행복하고 신나며 즐거울 때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때의 기억보다 지치거나 무기력할 때의 기억이 항상 더 커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없어졌다.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 학습을 하다 복도로 나와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쳇바퀴를 타는 거 같은 시간이라고. 이대로 대학생이 되면 취업을 해서 또 쳇바퀴를 타듯 매일 같은 하루를 보낼 텐데, 참 싫었다. 어른이 되기 전부터 40년 뒤의 인생이 얼추 보인다는 게 끔찍하게도 지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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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지금, 그때의 생각과 다르게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은 항상 다른 데다가, 지금은 쳇바퀴를 타듯 뱅뱅 도는 일상이 부러우니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40년 후 미래를 떠올려볼 때, 새로운 일이 잔뜩 펼쳐질 미래가 기대되기보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만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당신이, 주변 많은 사람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했을 테다. 사람은 의외로 늘 비슷하다.

 

사람이 비슷하기 때문에 예술이 탄생한다. 보편적 감정은 사람을 공감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좀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와 사람이나 풍경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공연 역시 아무리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근저에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상황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먼 미래가 배경이고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신뢰와 사랑, 성장이 주제인 <어쩌면 해피엔딩>처럼.

 

뮤지컬과 연극을 좋아하는 나는 종종 공연에서 내 인생을 발견할 때가 있다. 공연을 볼 때 가사가 귀에 와 박히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껌처럼 단물이 빠져나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응원을 받기도 한다. 최근 공감한 건 에 나오는 구절이다. 몇 년 전 공연을 볼 땐 별생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듣자 조금이나마 의미를 알 것 같다.

 

 

 

 

매일 부축받고 일어나는 그 기분 알아? 신문 부고란을 볼 때마다 질투해봤어? 확 뛰어내리고 싶은 내 벼랑 끝 인생 꿈이나 꿔봤어? 죽은 채 사는 기분! 찬란했던 나의 꿈은 바로 잿빛이 되고 발은 땅에 붙었는데 죽음이 날 쫓아와!

 

 

다이애나는 이어 자신의 남편에게 말한다. 너도 아프다지만 안 그래 보여. 넌 몰라. 상처를 가지고 있고 우울함에 잠식된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부분 외엔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뚜렷하게 보이기는 하나 신경 쓸 만큼의 체력과 기력이 없어 모르는 체하는 걸지도 모른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기 지쳤다는 점까지, 다이애나를 이해할 수 있다. 슬프게도 그렇다. 죽은 채 사는 기분이 어떤지, 다이애나와 동일한 감정이지 않을지라도 안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피로해져서 친구들과 연락이 뜸해지고 혼자 틀어박힌다. 삶에 이유란 없다지만 이유 없는 삶을 사는 게 버겁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해적>에서 루이스가 부르는 “항해일지”의 구절이 절절하게 와 닿을 때도 있다.

 

 

 

 

어젯밤에 유서를 썼는데, 지금 설레이는 건 좀 우습지만 보는 사람 없으니 괜찮아. 웃는 사람 없으니까 괜찮아. 어젯밤에 유서를 썼는데 다시 꿈을 꾸는 건 비밀이지만 보는 사람 있으면 또 어때. 웃는 사람 있다 해도 뭐 어때.

 

 

참 묘하다. 오늘은 정말 모든 걸 놓고 싶었는데, 내일이 오면 갑작스럽게 살 힘을 얻는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격언, 성경의 구절이라고 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곧 지나가니 한 번 좋은 일이 있다고 모든 일이 승승장구 될 것이라 자만하지 말고 반대로 나쁜 일이 있다고 모든 게 영원히 괴로울 것이라 자괴도 말라. 물론 그 말을 기억하는 것과 행동을 바꾸는 일은 별개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문장이다. 기쁠 때는 잊어버리지만 슬플 때는 곧잘 기억난다.

 

조금 더 밝은 이야기로 나아가보자. 어쩌면 그러므로 반대로 이런 말에 위로를 받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란 넘버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이 긴 글의 주제가 될 제목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탈출구는 오직 그림뿐.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던 서른두 살의 봄. (중략)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야! 색깔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풍경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네. 자연은 그야말로 명작! 세상은 그야말로 전시회. 강력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 힘 이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행복!

 

 

동생에게 지원을 받아 그림을 그렸던 그는,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추구할 것 같은 고집불통 이미지와 다르게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서양에서 각광받던 일본화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생전에 그림은 한 번밖에 팔린 적이 없지만 사후 누구보다 유명해진 화가. 21세기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엔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불안하지 않았을 리 없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너는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어,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러면 그 목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 적어도 나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나보다. 고흐가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는 문구와 이를 이겨내는 글귀는 편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었다면

삶은 어떠했을까.

 

편지 내용의 많은 부분에서 그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인다. 툭하면 유명한 작가의 글이나 그림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림이었던 모양이다.

 

우울함에 잠겨 나만을 생각하다 여기까지 오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뭐더라. 분명 지루하다 여긴 삶의 어느 부분에서 나는 과분하게 행복했고 즐거웠다. 사랑했고 다정했으며 활발했다. 나를 활기차게 만들고 기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행의 추억이었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비치는 어느 봄, 분수대에 가방을 베고 잠들었던 여유롭고 평화로운 낮이나 모든 게 싫어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떨치기 위해 사 먹었던 와플과 체리 맥주의 달달함, 여행의 끝을 정리하기 위해 나에게 엽서를 쓸 때 엄지를 치켜올리고 지나갔던 외국인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사진을 잘 못 찍는 내가 유독 마음에 드는 장소를 유독 마음에 들게 찍을 때의 짜릿함 역시 오래 기억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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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도 있었다. 며칠 전에 어머니가 사둔 치즈 케이크를 다 먹은 죄로 맛있는 새 케이크를 사 오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이전에 맛있게 드셨던 마들렌을 사러 빗속을 걸어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이 닫혀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좋아하는 케이크 집을 방문했다. 마음에 들어 할지, 너무 달거나 느끼하게 여기지 않을지 조심스러웠다. 좀 전에 어머니가 첫입을 드시곤 기뻐하셨다. 참 맛있게 잘하는 케이크 집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 때 느끼는 기쁨도 행복의 일종이다. 내 행동으로 기뻐하는 사람을 볼 때도.

 

그러고 나서 떠오른 건 가족과 자잘한 음식을 늘어놓고 같이 먹던 저녁이었다. 어딘가 마음이 허해 자꾸만 작아져 가족과의 외출을 거부했던 날, 날 위해 포장해온 다양한 음식과 그 마음이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했다. 또 음악도. 걸어가면서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와 그 음악에 취해 더 흥이 나던 겨울밤도 즐겁게 기억한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작은 달이 아름다울 때, 길 가다가 우연히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보았을 때, 친구들과 사소한 말장난으로 한참 웃었을 때. 지루한 일상의 주변을 잘 찾아보면 행복했던 순간이 작은 결정처럼 박혀있다. 여행, 음식, 이야기, 창조, 사랑과 칭찬. 무수히 많은데, 대단히 사소해서 자꾸 잊어버린다.

 

글을 쓴다. 무수히 많지만 대단히 사소해서 자꾸 잊어버리는 나의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서 타자를 친다. 내가 우울할 때, 하염없이 힘들고 지치고 세상이 두렵거나 지겨워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을 때, 어디론가 도망치거나 숨고 싶을 때 행복한 때가 생각난다면 작은 빛을 본 것처럼 따스해질 것 같다. 슬픔에 잠겨 숨을 쉬지 못할 때 작은 산소통을 미리 구비해두고 싶었다. 어쩌면 당신의 산소통이 될지도 모르니까, 서툴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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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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