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며 - 윤희에게 [영화]

글 입력 2019.11.2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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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는 한 때 사랑하던 사이였던 윤희와 준이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윤희는 이혼한 뒤 고등학생인 딸 새봄과 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일본에 사는 옛사랑 준으로부터 편지가 한통 오고, 이를 윤희가 발견하기 전에 새봄이 먼저 읽게 된다. 새봄은 윤희와 준의 재회를 위해 엄마에게 일본 여행을 제안하게 된다. 한편 수의사인 준은 일본 오타루에서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 온 새봄이 준의 고모의 카페에 찾아오게 되고, 새봄은 준과 윤희의 만남을 기획하게 된다.

 

 

[크기변환]윤희에게_메인포스터.jpg

 

 

 

장면 선택 - 상처의 노출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의 만남이 성사되기 전에 각 주인공이 안고 있는 상처가 하나씩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그려진다. 윤희는 가정의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란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오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윤희는 대학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윤희는 스스로의 의지 없이 가족에게 끌려다니게 되고, 일용직의 직장과 결혼상대 모두 오빠의 주선을 통해 얻게 된다. 준 역시 자신의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각 인물이 입은 상처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 이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될 뿐이라 상처받은 시점에 주인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영화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 힘든 노동 후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손목이 시큰거려 계속 손목을 만지는 모습만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기법은 영화의 일관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크게 일조한다. 영화 《윤희에게》에서는 인물들이 재회해야 하는 개연성을 현재의 모습에서부터 끌어낸다. 과거의 장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과거를 겪은 인물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거의 아픔의 크기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짐작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 오타루에서의 설경과 주인공들의 해후가 빚어내는 감동이 영화 내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영화에 감동의 격렬한 표출이 생략되면서도 관객 스스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인물 구조 – 관찰의 기능


 

윤희와 준의 해후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영화는 윤희-새봄 가족의 장면과 준-고모 가족의 장면을 번갈아 비추어준다. 여기서 두 가족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두 가족 모두 이혼으로 인해 이루어진 새로운 모습의 가정이다. 윤희가 이혼을 할 때 새봄은 엄마를 선택해 결국 윤희-새봄이 가정을 이루게 되고, 준의 부모님이 이혼할 때, 준은 결국 아버지의 나라인 일본을 선택해 고모와 함께 오타루에 머물게 된다. 윤희에게 있어서 이혼은 새봄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고, 준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이혼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윤희와 준 모두 이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잃고 새로운 인생의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새로운 삶의 모습 속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지만, 서로를 감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놀랍게도 새봄과 준의 고모의 노력으로 인해 성사된다. 준이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고모는 준 몰래 우체통에 넣어버렸고, 새봄은 집에 온 편지를 숨기고서, 엄마 몰래 둘의 만남을 계획한다.

 

윤희와 준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새봄과 고모가 그들의 고통을 줄곧 관찰해왔기에 가능했다. 윤희와 준 모두 지나버린 옛사랑의 존재를 티내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에는 이들이 부정해도 그들이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음이 보였을 것이다. 윤희-새봄, 준-고모의 구조 속에서, 가까이 있는 누군가의 관찰 덕분에 그들이 – 겉으로는 부정해도 – 진심으로 바라왔던 만남이 20년만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공간적 배경 – 설경


 

영화의 중반부에 접어들어 윤희와 새봄은 여행을 위해 오타루에 오게 되고, 한국과 일본을 교차하던 장면들이 일본 오타루로 고정된다.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을 바탕으로 영화는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크기변환]설국.jpg


 

그간 많은 예술작품 속에서 설경(雪景)은 이야기 속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어주었다. 특히 일본 문학들에서 이와 같은 양상이 잘 드러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1995年作) 등에서 설경을 바탕으로 사랑의 모습이 전개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의 감정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윤희에게》 역시 아름다운 설경이 영화의 설정과 잘 맞물려 아름다운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눈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준의 고모는 나이가 들면서 몇십 년 동안이나 오타루의 눈을 보지만, 올해 역시 눈이 언제 그칠지 걱정한다. 이러한 설국에서는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이 일상이라, 언재 갠 하늘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무시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그쳐 갠 하늘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 윤희와 준의 모습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기대없이 바라만 보는 모습에 가깝다. 상처받은 사람은 다시 다가올 상처가 두려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음에 품고 가만히 있기만 할 때에는 그리움은 그저 슬픔과 절망의 감정에 가깝다. 윤희는 마음속의 지난 사랑을 외면한 채 살아갔고, 준은 그리움 끝에 글을 써보지만 글을 보낼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새봄과 고모의 도움으로 우연히 이루어진 만남 끝에, 둘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각각의 생활도 점점 나아진다. 윤희는 인생의 2막을 준비하게 되고 준 역시 새로운 기대를 품게 된다. 영화는 준의 희망찬 대사와 함께 끝으로 향한다.

 

“눈이 언제 그치려나...”

 

 

 

P.S. 퀴어라는 소재에 대해


 

《윤희에게》가 이슈가 되면서 퀴어 영화라는 꼬릿말이 붙고 있다.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에서 질문에 언급되고 있으며, 윤희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 역시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퀴어 영화라는 사실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퀴어라는 소재가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이런 소재를 통해 그들이 겪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려내는 사랑 역시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영화 《윤희에게》의 예술적 가치를 감상하는 데 있어선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 동시에 그 당사자에게는 공기의 무게를 바꿀 수도 있는 특수한 감정이다.

 

《윤희에게》는 개인이 상처를 받게 되는 과정과 상처받은 개인에게 있어서의 사랑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훌륭한 영화다. 단순한 언어로써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훌륭한 영상미와 함께 몰입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모두들 감상하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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