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9월"을 내년에도 보고 싶은 이유

글 입력 2019.11.2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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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이라기엔 가을의 은근한 붉기와 열기가 남아 아이러니하게도 따듯했던 지난 금요일, 나는 연극 <9월>을 보러 서울숲 언더스탠드 에비뉴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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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무대와 객석



이 공연에 대해서는 '무대’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연극 <9월>에서는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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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간에는 진행자가 호루라기를 불며 ‘4명!’이라고 외치면 무질서한 움직임이 한 순간에 덩어리로 뭉치는 게임처럼 의자가 4개씩 등을 대고 흩어져 있었다.

 

약 40개 가량의 의자들이 하나하나 주인을 찾아갈 때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혼자 온 사람도, 다같이 들어온 사람도 일행의 옆자리 혹은 뒷자리가 아니라 오롯이 ‘혼자’ 앉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옆얼굴이 아니라 낯선 이의 얼굴을 대면해야 했으며, 본인의 등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뒤통수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 하지만 사실 그런 노력 자체가 필요한가 싶은 어중간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괜히 진땀이 났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회학 실험이 시작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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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엔 낯선 사람이, 오른쪽엔 배우가 ㅣ 단순한 관객 참여를 넘어



공연이 시작되자 진행자는 그려진 선을 따라 동그랗게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엠티라도 온 듯 둥글게 모여 앉았다. ‘배우도 함께 말이다.’

 

사실 공연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고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을 무대로 불러오는 익숙한 일들이 벌어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연에는 그간 접해온 관객참여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들은 관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랐다고 해서 실망했다는 뜻은 아니다. 파격적인 자리 배치 덕분에 연극 <9월>은 전형적인 관객참여 그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집중도가 매우 높았다. 배우의 연기를 바로 옆자리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과 동일한 위치에서도 배역에 몰입해 울먹이고, 소리를 치고, 좌절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연극 <9월>의 서사는 무척 복잡한데,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된 무대 장치나 소도구 없이 온전히 ‘말’로만 풀어간다. 그럼에도 1시간 30분동안 그들의 발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는 자리배치가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기존의 관객참여에 부담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연극 <9월>이 배우와 가까이 하면서도 차분하게 극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형태에 비해 아쉬운 스토리


 

다만 아쉬웠던 건, 스토리와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연극 <9월>의 스토리는 어둡다. 해리와 리아 자매, 그들의 엄마 영주와 선희, 전직 형사였던 아빠까지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 복잡한 가정사는 물론이거니와 외도, 살인, 사고…인생에서 단 한 차례도 겪고 싶지 않은 일들 투성이랄까. 어두운 스토리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대서사 속에 흘러가는 개인의 삶'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좀 더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날카롭게 그려내길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한편, 극 중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상처에 겨우 새살을 덧대며 살아가고, 자신의 상처를 기우다 남의 아픔을 잘못 건드려 함께 덧나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인물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으면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어디서 들어봄 직한 끔찍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한 데 버무려 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버거웠다. 연극 <9월>은 사전에 구체적인 스토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연장에도 별도의 장치가 없기 때문에 관객은 오로지 '발화'에만 기대어 극 중 상황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달하다보니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한 명의 배우가 1인 2역을 하기도 하고, 배우들끼리 대화를 통해 서사를 전개하기도 하는 데, 독백과 대화의 경계가 모호해 이를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극 <9월>을 내년에도 보고싶다.

 

오픈런인 몇 개의 연극을 제외하면 아무리 양질의 콘텐츠라도 겨우 5일 남짓 공연을 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스크린을 드문드문 차지하다 사라져 결국 인터넷에서 접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독립영화들처럼 말이다.

 

특히 연극 <9월>처럼 실험적인 창작극은 더욱 그렇다. 비록 개인적인 관점에서 연극<9월>이 아쉬웠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시도한 '경계 허물기'는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위해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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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극 <9월>은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그래서 이 글이 이후 관객을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너무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연극 <9월>이 돌아올테니까.

 

그래도 이렇게 리뷰를 열심히 적어내려가는 이유는, 그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최소 한 두 명이라도 내년 11월에 연극 <9월>을 찾아주기를,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서다. 연극<9월>이 차후 우리에게 더 많은 감각과 다양한 재미를 선사해줄 문화예술의 단초가 될 수 있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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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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