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대 거지들의 펼치는 시원한 탈놀이 한바탕! - 딴소리 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지는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1.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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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서울남산국악당으로!


 

"남산"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서둘러 지도앱를 켜보니 충무로역과 굉장히 가까웠다. 충무로에서 대학을 4년이나 다녔는데, 남산국악당이라는 이 멋있는 건물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가는 내내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충무로역에서 내렸다. 한옥마을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멋진 기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의 외관은 정말 멋스러웠다. 입구를 들어서면 은은하게 반겨주는 불빛도, 아기자기하게 마련되어 있는 마당도, 모두 좋았다.

 

건물 내부 공연장은 또한 한옥 스타일로 꾸며져있는데, 천장부터 무대까지, 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공연에 필요한 조명이나, 장비들이 이질감 없이 설치되어 있는 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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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거지거지, 그런거지!


 

많은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도 더 공연은 재밌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판소리라는 장르에, 광대 거지들의 탈놀음을 입힘으로써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신명나는 가락을 만나볼 수 있었다.

 
거지들은 판이 잘 이어진다 싶으면 나와서 깽판을 친다.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누구를 괴롭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광대 거지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끼니' 타령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는 와중에 끼니가 해결되면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웃고 떠들고, 다시 춤을 춘다. 가진 것은 여유밖에 없기에 무서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는 그들. 이 시대의 진정한 YOLO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놉시스>


1장. 춘향가의 판을 깨다
깽판전문 광대거지들이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아맹거사로 자칭한, 거지 중에 상거지 몽룡이 수절을 지키려던 춘향 앞에 나타나 사랑구걸 대신 밥구걸을 하고, 이에 당황한 춘향은 곡절이나 들어보자고 광대 거지들을 다그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몽룡이와 광대거지들이 딴소리 판을 펼친다.
 
2장. 심청가의 판을 깨다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한 광대거지들이 잔치에 몰려들어 숟가락을 얹는다. 장님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황후와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거지들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는다. 눈뜬 봉사들이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거지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3장. 적벽가의 판을 깨다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한 조조의 군사 앞에 며칠을 굶은 광대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조조군이 된 광대거지들은 적장인 제갈공명을 만나게 되고, 대의와 명분을 부르짖는 상대에게 엉망진법을 한수 가르쳐준다.
 
4장. 수궁가의 판을 깨다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 모인 광대거지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 이에 불만을 가진 광대거지들이 앙심을 품는데... 마침, 술병으로 간이 상한 용왕의 상태를 살피는 자리를 꾀어내어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5장. 흥보가의 판을 깨다
대박을 꿈꾸며 박을 타던 흥보 앞에 나타난 광대거지들.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고, 듣기만 한다는 말에 흥보는 망연자실해진다.
 
6장. 다시, 춘향가의 판이 시작되다
광대거지들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해후를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광대거지들 역시 제 갈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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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거지들이 펼치는 판은 춘향가, 심청가 등 총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렸을 적 음악교과 서든 책이든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극을 이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말을 알고 있는 뻔한 고전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남을 속이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이야기,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전(前) 정부의 풍자라든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무상급식' 같은 친근한 표현을 섞어 현실과의 괴리감을 없이 극을 현대적으로 구성한 점이 좋았다.

 
또한 수궁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앉아서 소리북을 연주하는 역할인 고수도 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소리북을 등에 메고 거북이의 모습을 표현하고, 소리꾼과 대화를 하는 둥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전통적인 판소리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서 새로웠다.

 

 

 

03 우리 것을 더 사랑하기


 

사실 며칠 전부터 나는 유튜브에서 풍물놀이 동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이번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우리 것'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미리 접해서 텐션을 올리고자 함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보면 볼수록 신명이 절로 나는 퍼포먼스와 뇌리에 박히는 리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텐션은 <딴소리, 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자 모양 탈을 들고 박자에 맞춰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살짝 무섭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역동적인 몸짓과 합이 딱 맞는 박자를 들으니,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느껴져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제서야 판소리, 탈놀이 등 전통예술 공연을 처음 보았고, 공연 덕분에 남산국악당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다. 나도 전통공연을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이기에, 당장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더 사랑해야 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이런 멋진 공연을 알게 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한껏 향유하고, 좋아하고, 이렇게 묵묵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7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소중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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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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