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숙하지만 열심히, 미성년 [영화]

글 입력 2019.11.2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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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뒤늦게 기회가 생겨 보았다. 배우 김윤석이 감독해 호평이 자자하던 작품이라 항상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과 성장을 다룬 영화라고 들은바, 보기 전부터 기대치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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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불륜을 창밖에서 훔쳐보는 딸 주리(김혜준 분)의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작중 상황은 두 대사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양편 자식이 주리와 윤아(박세진 분)가 말한다. "야, 너네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어. 지금 불륜 진행 중이야. 알아?"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

 

진행이 상당히 빠른 편인데, 어떤 상황에 익숙해졌나 싶으면 (음, 바람 상대가 임신했나 보군) 곧바로 다른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전개를 따라가기 바쁘다. (갑자기 하반신에서 피가!) 영화가 삼십 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갑자기 벌겋고 작은 태아가 인큐베이터에 놓여있다.

 

95분인 상영 시간은 최근 영화계 흐름에 비해 짧은 편이다. 요즘은 보통 125분 정도의 상영 시간이 기본이지 않나. 불필요하게 긴 영화가 많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짧아서 좋지만, 인물들 간 복잡한 상황을 다룰 만큼 충분했는지는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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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대원(김윤식 분)은 오리고기 집 사장 미희와 불륜을 저지르고, 미희는 임신한다. 그 사실을 안 미희의 딸 윤아는 아이를 지우라고 하지만 미희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다. 한심하게 보는 윤아의 시선에 '그 사람(대원)은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반박한다.

 

한편 대원의 딸 주리는 아빠의 불륜을 알고 엄마가 눈치챌까 조마조마하며 사실을 숨길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주리가 오리고기 집에서 두 사람(대원과 미희)을 훔쳐보는 걸 들킨 이후 윤아는 주리의 핸드폰을 빼앗아 대원의 아내 영주에게 사실을 폭로한다.

 

"너 때문에 이제 우리 집은 지옥이다!" 주리는 환장하겠단 표정으로 말하는데, 생각 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두 어린애만 세상없이 진지하다. 영화건 현실이건 불륜 드라마에 익숙해진 사람으로서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짠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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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이 상황에 익숙해졌는가 싶을 때 영주가 미희를 찾아가고, 갑자기 미희를 밀치면서 그녀가 병원으로 실려 간다. 그 사이 유리창과 문짝을 때려 부수면서 싸운 주리와 윤아는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가고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와 마주한다.

 

전개가 빠른 거야 군더더기가 없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어른 세 명 영주, 미희, 대원이라는 인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대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물이다. 계속해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려 하고 도망치고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도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 이렇게 도망치기만 하는 인물이 나온다면, 나올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는 게 없는데 뭐하러 시간을 들여 이 인물을 찍는단 말인가? 의문인 건 대원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대원이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가 미희를 꼬셨다) 95분짜리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줄행랑을 치고 있으니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김윤식 감독은 대원은 회피적인 인물이고, 책임지지 않으며, 철저히 기능적인 인물로 남아야 했다고 설명한다.

 

내 생각에 어떤 인물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철저히 기능적으로만 존재할 거면 안 나오는 게 낫다. 모든 인물은 그 자체로 관객에게 삶의 일면을 보여주고 동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 대원은 책임지지 않는 척하면서도 영화 내내 계속 얼굴을 비춘다. 자기를 잊지 말라는 듯 나와서 회피하는 자기 모습을 열심히도 보여준다. 이도 저도 아니고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 갈등의 근원인 인물이 얼굴만 보여주고 딴청을 부리고 있으니 서사가 진전될 수가 없다. 대원은 자진해서 욕먹는 역할을 맡으면서 사실은 제일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주와 미희는 대원 없이는 서로 접점이 없다. 이 둘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면 뻔한 불륜 드라마가 될 테고, 머리채를 잡고 싸우지 않더라도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라는 관계에서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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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애들을 다루는 데 집중한 나머지 어른들은 그 내면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들로 남고 말았다. 영주는 대원에게 "당신은 우리 네 사람을 기만한 거야"라는 현명한 말을 하지만 그게 전부다. 마지막까지 주리의 밥을 챙기고 미희에게 죽을 갖다주고 대원의 병원비까지 내주는 모습에서 희생적인 엄마의 모습이 보일 뿐 영주 자체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왜 대원의 뺨이라도 한 대 갈기지 않는지, 품에 안겨 울 친정엄마는 있는지 (아마 없을 것 같다). 가장 당하면서도 참고 인내하는 인물인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주리의 엄마이고 아내이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싶어서일 수 있지만, 영화 내내 영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현명하지만, 희생적인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미희는 그나마 복합적인 인물로, 작중에서 가장 자기 욕망을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책 없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고 대원과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등 꿈속에 살지만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걸 끌고 나갈 만큼의 용기는 있다. 짧은 전화에서 대원이 자신을 책임지지 않을 것을 알고 빠르게 정리하는 분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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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대책 없게 일을 저지르지만, 미성년인 두 아이는 그 책임을 지고자 고군분투한다는 아이러니함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 주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른 캐릭터는 될 수 있는 한 무책임한 상황에, 아이들은 책임을 지는 위치에 놓이는 데 아기 못난이의 존재가 그 구분을 드러낸다.

 

어른들은 한 번도 태아를 보러 오지 않는다. 세 주인공 어른과 태아(그들이 빚어낸 상황)는 절대 한 장면에 같이 나오지 않는다. 못난이를 언급하지도 않는다. 못난이에 대해 말한다는 건 책임을 지고 뭔가를 결정하겠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아이들이 영화에서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어른들은 자거나 고해를 하거나 먼 바닷가로 떠나는 등 화면을 떠난다.

 

그와 대조되게 윤아는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에게 강한 애착을 보인다. 윤아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우라고 얘기했던 아이를 갑자기 엄마가 되겠다며 떠맡는데 심경의 변화가 참 빠르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르는가 싶을 때 딱 맞추어 못난이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윤아는 다행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뇌출혈이었단 말은 어른들의 회피에도 이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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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못난이가 죽지 않았으면? 그럼 정말 윤아가 맡아 키우기라도 했을 거란 말인가? 이 영화에는 두 아이와 어른들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없는데, 있더라도 서로 싸우거나 핀잔주는 것에 그칠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고, 아이들의 행동은 어른들에게 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할까? 저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듯 따로 논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성장하는 게 아니다. 성장은 내면의 움직임이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고 생각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거나, 세계의 서늘한 진실을 깨달을 때, 그러면서도 거기에 맞서 자기 고유의 태도로 살아가려는 움직임이 성장이다. 여기에는 어른이나 아이의 구분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성장한 인물은 딱히 꼽기가 어렵다.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리가 주리 혼자 있을 때 뭘 원하고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윤아나 영주나 다 마찬가지다. 이 지저분한 가족 서사 바깥에서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가 인물을 어떤 역할로만, 어른들 때문에 일찍 고생하는 두 아이와 철없기 때문에 다 내팽개치는 어른들로만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인물이 잘 만들어졌다고 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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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서 두 가정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윤아는 다시 혼자가 된 엄마와 살 테고 주리와 영주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속 시원할 것 같지 않다. 이 영화는 성장보다는 허랑방탕한 어른들 탓에 고생하는 두 아이를 그리는 데 주력했다. 못난이는 윤아와 주리에게 잊지 못할 상흔으로 남을 것이다.  때 이르게 가족의 추저분한 모습을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이 그래도 서로 웃는 모습으로 끝나 다행이다. 우유를 나눠 먹는 마지막 행동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돌발적인 상황으로 전개를 해나갔던 영화의 흐름에 맞는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은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참 인상적인 작품이다. 깊게 들어가지 않고 묘한 신파성이 스며들어 있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런 소재를 뻔하지 않고 세심하게 만들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김윤석의 시도에 발맞춰 한국 영화계에서도 십 대들의 삶을 다루는 영화가 더 많아지기 바란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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