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우리별', 삶과 우주에 대한 은유를 담다 [공연]

글 입력 2019.11.2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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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지구'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달님'이다.

 

지구는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달님에게는 아무도 없다. 지구는 아폴로를 건네며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한다.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가서 달에 착륙했다.) 처음에 극장에 들어설 때, 내 어린시절을 함께한 과자 아폴로를 건네 받게 된 이유를 이 장면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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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별'은, 삶과 우주의 생성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을 독창적인 은유의 방식으로 해석해낸다. 그 해석의 매체가 되는 것은 특이하게도 '랩'이다. 랩의 운율은 우주의 광활함을 좁은 무대로 응축하는 도구가 된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주로 원의 형태로 늘어서 노래와 연기를 펼쳐내는데, 이는 원형의 행성들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별'은 지구과학 교과서의 사진으로만 접했던 우주의 신비를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연극이다.

 

지금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별빛은, 과거에 죽어버린 별이 뿜어낸 빛이 먼 거리를 이동해서 뒤늦게 당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극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예전의 나는 학교 운동장에 드러누워 가평 산골의 쏟아질 듯한 은하수를 품에 안고는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면, 현재의 나에게 당도하기까지 수많은 뇌의 시냅스를 거친 가평 산골의 기억도 어쩌면 이미 죽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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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흐르고, 강산은 변한다. 연극 '우리별'의 연출 의도는, 너무나 소중하지만 한눈을 팔다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을 다루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복도식 아파트의 풍경도, 냉장고에서 쉬고 있는 엄마의 김치도, 학창 시절부터 대소사를 전부 공유해왔던 친구도, 밤마다 살금살금 꺼내먹던 과자도 있을 것이다. 한 때는 내 마음을 벅차게 했던 일들도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갈 수록 권태로운 일상이 되어 간다. 죽어가는 우주와 별들에 무관심한 것처럼, 우리는 쉬이 삶의 진정성에도 무관심해진다.

 

어린 지구와 달님이의 순수한 우정은 그간의 무관심과 권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구와 달님이는 소꿉놀이를 하며 더 가까워지기도, 티격태격 싸우며 토라지기도 한다. 관계 앞에서 솔직해지기 어려웠던 그들은 입시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며 점차 멀어지지만, 뜸하게라도 연락을 유지하며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실제로도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주의 작은 진실들을 삶의 관계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매우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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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과정에서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물론 우리의 선택에 자유 의지보다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말한 학자들도 많지만, 근본적으로 인류는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설계해 왔다. 그러나 출생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의 거대한 사건만큼은, 우리가 직접 선택할 수 없다. 안락사의 개념을 제외한 보편적 죽음으로 논의를 전개하자면 말이다.

 

다만, 죽음과 소멸은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당장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면, 인생의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동력을 투입할 것인가? 혹은, 죽음의 가능성을 평소에 어느 수준으로 염두에 두며 살아갈 것인가? 언젠가는 모두에게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면 좋을까?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을 써내야 하는 수험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 답에 따라, 삶의 양태도 달라질 것이다. 매 순간 지구가 점점 늙어가듯, 개체인 인간도 점점 소멸에 근접해가고 있으니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수용하는 일에 신물난 사람이라면, 연극 '우리별'의 다음 공연 소식을 고대해보기를 추천한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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