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터미네이터 : 다크페이트"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영화]

글 입력 2019.11.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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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터미네이터 : 다크페이트 (이하 다크페이트)>는 시리즈의 정체성이었던 존 코너를 죽이면서 시작한다. 존 코너는 시리즈가 몸집을 키우고 전개를 변주할 때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터미네이터>가 성립할 수 있었다. 기계와 인간의 대립이 터미네이터의 중심 서사고, 존 코너는 기계가 잠식한 세계의 혁명을 주도하던 인물이다. 기계가 문명의 주인이 될 때 세계는 붕괴한다. 3, 4편은 특히 그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정했다. 금속성의 세계는 오로지 ‘필요’를 기준으로 만물을 분류한다. 거기에 온도나 색깔은 없다. 터미네이터는 그래서 문명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함을 세계관으로 삼은 시리즈다. 존 코너는 그것을 보여주는 시리즈의 상징이었다. 다크페이트는 그 상징의 죽음을 보여주며 시리즈의 판도가 이전과 다를 것임을 선언하는 셈이다.


내가 다크페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여성 캐릭터를 운용하는 방식이다. 서사를 이끄는 세 인물 모두 여성이다. 비백인, 노년의 여성이 주연이다. 특히 이런 부류의 스릴러 장르에서 남성 캐릭터의 행위 목적으로 소모되던 여성 캐릭터들이 다크페이트에서는 서사의 주연으로 등극한다. 그들의 배경, 동기, 관계가 풍부하게 묘사된다. 남성 캐릭터들은 조연으로 물러난다. T-800 역할이자 시리즈의 또 다른 상징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세 인물의 여정을 돕는 조력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메인 빌런인 Rev-9 역시 남성의 외양을 띤 기계인데 별도의 부연을 달아놓지 않았다.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임무에 충실한 기계 정도에 그칠 뿐이다.


다크페이트가 캐스팅 목록을 발표했을 때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혹은 페미니즘적 시각이 반영된 캐스팅이라는 지적이 달렸다. 그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무지다. 그동안 백인 남성 중심의 블록버스터 서사가 다른 인종과 젠더를 얼마나 고정된 틀 안에 가둬놓았는가. 여성은 피해자로, 흑인은 과장된 웃음을 유발하는 이로, 아시아인은 배제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개인의 판단과 시야에 어떤 기준을 제시할 만큼 거대하다. 페미니즘 비평가 테레사 드 로레즈는 “여성성은 반영되는 게 아니라 재현된다”고 했다. 미디어가 이미 대중 사이에 통용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주입하는 기능 또한 수행할 수 있다는 맥락이다. 성별 분담의식, 가사는 여성의 의무라는 의식이 여전히 팽배한 건, 미디어가 여성을 그런 식으로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은 미디어의 자장 아래 있다. 때문에 미디어의 자기검열은 필연적이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검열이 부족했다.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을 양산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인’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크페이트의 캐스팅은 적절하다. 온당하다. 세계엔 백인 남성만 있지 않다. 그들이 세계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는 일에 왜 ‘과도하다’는 수사를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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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사라 코너다. 다크 페이트는 2편 이후 비중이 축소됐던 사라 코너를 본작에서 주요 인물로 소환한다. 젊은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2편의 린다 해밀턴을 그대로 다시 캐스팅했다. 그는 바주카를 쏘고 총을 난사하고 위악적으로 일갈한다. 60대의 여배우가 주름 팬 얼굴로 바주카를 쏘며 블록버스터의 주연으로 활개 하는 것. 이것 자체가 다크페이트의 야심이자 의지다. 사라 코너는 과거의 추억을 환기하지 않는다. 향수에 젖은 관객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는 서사를 이끄는 동시에 시리즈의 주제를 다시 짜는 데 기여한다.


사라 코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모든 터미네이터를 다 죽여야 했다”고 설명하지만 동시에 대니의 처지에 이입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리전’이 대니를 죽이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보낸 이유를 “그들이 노리는 건 네가 아니라 네 자궁이야”라고 해석하며 “내가 그 기분 아는데 거지 같거든”이라고 소리친다. 이 시리즈의 서사가 여성을 도구로 삼아 이뤄졌음을 지적하는 대사다. 1편에서 사라 코너는 존 코너의 모친이라는 이유로 터미네이터의 표적이 됐다. 속편은 사라 코너가 움직이는 이유를 아들을 지키기 위한 모성 때문으로 뭉뚱그렸다.


다크 페이트에선 사라 코너가 대니를 지키려는 이유를 확실히 지정할 수 없다. 대니와의 긴밀한 전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움직이는 건 복수심, 동질감, 목적의식 같은 것들 때문이고 그래서 이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동시에 전작의 세계관과 서사를 성찰하기 위해 등장한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대니가 Rev-9의 표적이 된 이유는 누군가의 모친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음이 드러날 때 사라는 “She is John”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지칭하는 주어가 남성을 호명하는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임현경, <‘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가 끝내려던 것>, ize, 19.11.08) 이 대사가 결국 다크페이트의 주제다. 성별에 대한 고정된 편견과 역할이 사회적으로 정착됐지만, 무너질 수 있고 무너져야함을 언급하는 셈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건 사라 코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니가 표적이 된 이유를 누군가의 모체여서라고 짐작한 사라였다.

 

다크페이트는 기성 시리즈의 주제를 다시 환기하지 않는다. 대신 이 시대에 발생하는 갈등과 논쟁에 확고한 입장을 밝히는 편을 택했다. 당연한 규범 따위 없다는 의식을 영화 내내 드러낸다.

 

유의미한 주제를 가진 다크페이트의 서사는 그러나 전설로 회자되던 전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식했다. 추적 모티프는 1편에, 빌런의 능력은 2편의 T-1000과 판박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2편과 유사해서 영화의 전개는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간혹 과거의 인물과 대사를 적당히 비틀어 이를 극복하려 시도하지만, 기시감이 지속된다. 이전 시리즈의 세계관을 성찰하면서 서사는 별 고민 없이 재탕한 것은 다크페이트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영화의 주제나 마찬가지인 대니는 사라 코너나 그레이스에 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다. 그가 각성하는 지점 역시 적정한 개연성을 확보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대사 몇 줄에 의거해 대니가 당위적으로 혁명군의 리더처럼 행동하는 건 어색해 보인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의 타파를 말하면서 액션의 비중이 남성 캐릭터에 좀 더 많이 할애돼 있는 것도 아쉽다. 가장 역동적인 액션과 인성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건 Rev-9과 T-800이다. 강화인간인 그레이스가 분투하지만, 그들에 비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인간 세계로 내려온 모든 터미네이터를 파괴했다는 사라 코너는 무기를 다루는 것 이외의 육체적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다크페이트의 주제의식이 희석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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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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