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익숙한 줄 알았던 판소리의 반란,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1.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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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판소리는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는 국어 시간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등등 판소리와 그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물들은 언제나 내 일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다는 <케빈에 대하여>의 한 대사처럼, 나 역시 판소리가 익숙했지만, 그만큼의 애정은 없었다. 뻔한 권선징악에 기초한 쉬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 가치를 함부로 폄하했다.

 

나의 그런 생각은 잡지 PAPER 2019 여름 호에 수록된 김애란 작가의 에세이 <절정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바뀌었다. 김애란 작가는 한 공연장에서 <적벽가>와 <수궁가>, <춘향가> 일부를 담은 판소리를 들었다.

 

그날 공연에서 표현한 ‘일부’는 가장 유명한 부분이 아닌 생소한 부분들이었다. 작가는 그 부분들을 보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고, 안다고 생각했던 주제 의식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수궁가>, <춘향가> 등 단순히 권선징악만을 담았다고 생각한 작품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본 것이다.

 

공연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김애란은 절정부란 무엇인가, 거기에는 주로 무엇이 놓이는가, 라고 자문해보았다. 그녀는 절정부에는 ‘당대의 욕망’, ‘소망’이 놓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세이를 읽고 나 역시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보았다. 판소리가 담아냈던 ‘당대의 욕망’과 ‘소망’은 지금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에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판소리를 함부로 옛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딴소리 판>을 감상하고 나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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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장. 춘향가의 판을 깨다
깽판전문 광대거지들이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아맹거사로 자칭한, 거지 중에 상거지 몽룡이 수절을 지키려던 춘향 앞에 나타나 사랑구걸 대신 밥구걸을 하고, 이에 당황한 춘향은 곡절이나 들어보자고 광대 거지들을 다그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몽룡이와 광대거지들이 딴소리 판을 펼친다.
 
2장. 심청가의 판을 깨다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한 광대거지들이 잔치에 몰려들어 숟가락을 얹는다. 장님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황후와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거지들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는다. 눈뜬 봉사들이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거지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3장. 적벽가의 판을 깨다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한 조조의 군사 앞에 며칠을 굶은 광대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조조군이 된 광대거지들은 적장인 제갈공명을 만나게 되고, 대의와 명분을 부르짖는 상대에게 엉망진법을 한수 가르쳐준다.
 
4장. 수궁가의 판을 깨다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 모인 광대거지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 이에 불만을 가진 광대거지들이 앙심을 품는데... 마침, 술병으로 간이 상한 용왕의 상태를 살피는 자리를 꾀어내어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5장. 흥보가의 판을 깨다
대박을 꿈꾸며 박을 타던 흥보 앞에 나타난 광대거지들.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고, 듣기만 한다는 말에 흥보는 망연자실해진다.
 
6장. 다시, 춘향가의 판이 시작되다
광대거지들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해후를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광대거지들 역시 제 갈길로 향한다.

 

 

2006년 창단되어 한국의 민속 연희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개성을 담은 공연을 선보이는 연희집단 The 광대가 11월 22일, 23일 양일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신작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을 선보인다.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은 한국의 대표적인 판소리 다섯 마당을 밥이면 만사 오케이인 광대 거지들의 시선을 통해 이 세상 별것 아니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판을 깨는 내용이다. 이 공연의 핵심은 바로 ‘판을 깨는 것’에 있다.

 

워낙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예술인지라 이야기 속에 담긴 구시대적인 발상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지금의 태도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요즘, 당시 최하위 계층이었던 거지의 시선으로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뒤집는다는 <딴소리 판>의 구성이 흥미로운 것이다.

 

모든 예술이 지배계층만을 대상으로 향유되던 그 시절, 판소리는 계급 아래에서 반복되는 노동에 지친 서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당시의 판소리는 유일하게 계급을 초월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아래 계층인 거지가 판을 깬다는 설정은 현대적인 시각을 담은 동시에 판소리의 본질에도 더 가까워 보인다.

 

 

연습사진1.JPG

 

 

최근, 전통 서사에 대한 강의에서 춘향가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해보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나는 여태 춘향가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깊이 있게 공부한 춘향가는 모든 부분에 저마다의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향유하는 신분에 따라 구체적인 설정이 달라지기도 했다. 내가 아는 춘향가는 지배 계층의 언어로 전달된 춘향가뿐이었다.

 

이제야 내가 판소리를 멀게 느꼈던 이유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판소리를 항상 텍스트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애초에 서민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었다. 흥겨운 추임새를 싣고 다 같이 함께 불렀던 노래를 딱딱하게 글로만 읽었으니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너무 익숙해서 작품에 대해 모두 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알맞게 짜인 수업 교재에 불과했고, 가르침에 따라 진부한 권선징악만이 판소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김애란 작가처럼 ‘삶에 대한 의지’ 등 얼마든지 색다른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딴소리 판>은 내게 처음으로 딱딱한 교과서를 벗어난 진짜 판소리를 접하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딴소리 판
- 판소리와 탈놀이의 유쾌한 만남 -


일자 : 2019.11.22 ~ 2019.11.23

시간
금요일 8시
토요일 5시

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관
연희집단 The 광대
 
후원
서울문화재단
형광팬(The광대 후원회원)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70분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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