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박제되버린 흑역사 주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 인간의 흑역사 [도서]

모자란 히틀러
글 입력 2019.11.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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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 없고 종종 실수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말 지겹게 들어서 알고 있다. 겪어보기도 했고 들어보기도 했고, 위로할 때 쓰는 단골 멘트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종종 중에 더 종종, 실수 수준을 넘어 대참사 수준의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고의가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치의 의심 없이 곧잘 저지른다. 물론 누가 실수를 알면서 하겠냐마는, 진짜 어이가 없어서 장본인도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실수다.
 
인간의 흑역사는 실수 중에서도 대참사 수준을 모아놨다. 갤런당 3센트를 더 벌기 위해 중독 물질이며 지적·발달 장애 요인 중 하나인 납을 사용한 유발 휘발유를 만들었다거나 땀을 이 세상에서 최초로 발견해버린 특수한 액체라고 착각하거나, 단위를 착각해 화성 기후 궤도선을 화성 표면에 갈아버리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계속해서 저지른다. 철저하고 완벽했다고 생각했던 과학자, 지도자과의 거리감이 갑자기 확 좁혀졌다. 시니컬하지만 유쾌한 필체는 책을 더 유머러스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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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인이다. 영국인임에도 인류 최대의 실패라고 일컫는 식민주의에 앞장섰던 영국을 책 내내 비판하고 있다.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사례를 들어 얘기한다. 그리고 톰 필립스는 자신이 백인 남성임을 잊지 않는다. 이 책이 어쩔 수 없이 서양 백인들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음을 스스로 지적하고 있다. - 왜냐하면, 인간이 저지른 실수와 실패가 벌어지는 기회는 대부분 그들에게만 쥐어졌으니까 -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다녔는지,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게 이 책의 묘미다. 책에서는 실수를 정당화하진 않지만 인간이 원래 실수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첫 챕터부터 그렇다. 뇌 자체가 우리가 실수를 유발하게끔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지도 않은 패턴을 억지로 만들고 적용하려 하며 집단에서 튀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집단이 개개인의 합보다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자기가 내린 결론은 객관적인 지표로 부정당해도 굳게 믿고 죽 밀고 나간다. 이런 바보 같은 뇌 때문에, 사람들은 어이없는 대참사를 저지른다고 서두에서 깔고 들어간다.

이후에는 인간의 흑역사들을 나열하며 얼마나 바보 같은 짓들이 있는지 설명해준다. 필자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인륜을 저버린 히틀러에 대한 묘사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히틀러는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반인륜적이지만 무척 철저하고 계산적이며 능력 있는 악당쯤으로 묘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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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에 나온 이상, 당연히 그 반대다. 히틀러는 무척 게을러서 보통 11시가 넘어서 일어나고, 심할 때는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을 피해 별장으로 가서 오후 2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았다. 점심 전까지 하는 일은 자기가 나온 기사를 읽는 것이며, 대중매체와 유명인에 집착했다. 스스로를 '유럽 최고의 배우'라고 했으며, 자기 인생을 '세계사 통틀어 최고의 소설'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소위, '관종'에 딱 걸맞은 인물이다. 낮에는 낮잠을 꼭 잤고, 단 것을 엄청나게 좋아해 케이크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으며 찻잔에 설탕을 들이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아니, 모자란 사람이니까 인간 같지 않은 짓들을 했을까?
 
사람들은 그런 허술하고 나사 빠진 사람에게 전 세계가 지배될 뻔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저렇게 칼 같은 사람으로 묘사했을까? 사람들은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는 치밀한 고도의 기획, 작전이 있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오판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인재(人災)들은 대개 천재 악당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와 광인들이 줄지어 등장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일을 벌인 결과다. 그리고 그 공범은 그들을 뜻대로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다.
 
소재 자체가 흥미롭고, 저자가 무척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이다'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걸맞은, 통쾌한 책이랄까?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진 유치한 짓거리들과, 지도자의 어마 무시한 실책, 철두철미할 것 같은 과학자들의 단위 틀림 등. 유쾌하고도 유익하게 읽었다.

 

 




인간의 흑역사
- Humans -


지은이 : 톰 필립스

옮긴이 : 홍한결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문화

규격
145*220mm

쪽 수 : 276쪽

발행일
2019년 10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5581-239-6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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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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