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 사고 한 번 크게 치다 -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간의 흑역사
글 입력 2019.11.1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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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흑역사'라고 할만한 것이 생긴다. 문득 떠오르는 내 흑역사는 말 그대로 자다가도 이불을 차고 싶을 정도이다. 이미 벌어진 일, 없던 것으로 할 수 없기에 다음번에는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여차저차 살아가지만 흑역사는 매번 낯부끄러움의 정도를 갱신하며 차곡차곡 쌓여간다. 일말의 위안이라면 이런 흑역사는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흑역사를 만든 주체를 '인간'으로 넓혀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인간의 흑역사_표지 입체.jpg

 

 

톰 필립스의 저서 <인간의 흑역사>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유구한 흑역사의 역사를 살펴본다. 인간이 만들어낸 흑역사의 종류는 다양하다. 아직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주기적인 춤바람부터 한 나라, 문명을 멸망으로 이끄는 바보짓, 전쟁, 식민 지배, 지구 단위를 공멸의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현재 진행 중인 환경 오염까지. 현생인류는 '지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이건만, 왜 이렇게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바보짓을 한두 번도 아닌, 역사 이래 꾸준히 반복해 온 것일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바로 우리의 뇌가 벌이는 실수 아닌 실수이다. 실제로 아무 상관이 없는 두 가지 일에서 비슷한 패턴이 있다고 착각하는 '상관 착각'부터 자신의 뇌가 옳다고 판단한 일을 놓지 못해 벌어지는 '선택 지지 편향', 집단에서 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현명한 사고를 억누르는 '집단 사고', 역사상 수많은 비극을 낳기도 하는 아주 흔한 실수인 '편견'까지. 이 정도면 호모 사피엔스의 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의 흑역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상상을 초월한다. 

 

농경이 시작되고, 문명이 발상하고, 사회적 위계가 생기며 흑역사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진다. 한 섬의 환경을 파괴해 자멸한 이스터섬의 거석상부터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수많은 미친 왕들의 이야기는 고개를 젓게 만든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등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식민 지배는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디까지 조직적으로 악독하고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절대 권력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가 도래한 현대를 사는 인간은 흑역사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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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누이 문명을 몰락으로 이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적어도 이 책에서 그 대답은 '아니거든!'이다. 20세기 독일의 히틀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재자, 인종차별주의자, 집단 살인광 등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히틀러의 나치가 선거를 통해 독일 의회 최대 정당이 된 사실은 민주주의의 아이러니, 20세기 인간의 흑역사 중 흑역사이다. 그렇다면 나치에게 호되게 데인지 채 백 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 인간은 반성하고 더 이상 이런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을까? 글쎄, 이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가 힘들다. 대표적으로 지난 세기의 식민 지배를 두고 '식민국에 가해진 피해보다 근대화로 인한 수혜가 더 크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만 봐도 인간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는커녕, 실패를 반성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처럼 저자 톰 필립스는 시대와 지역, 문명을 종횡무진하며 펼쳐진 인간의 흑역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입담 속에 책장은 술술 넘어가지만 도무지 멈추지 않는 인간의 바보짓에 한숨도 술술 나온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만 굳이 이런 흑역사까지 반복될 필요가 있나 싶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흑역사>에는 흑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나와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는 책이지만, 일단 흑역사를 인정해야만 뒷수습을 할 수 있다. 수많은 흑역사를 되풀이함에도 지금껏 인간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실패, 바보짓, 흑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흑역사
- Humans -


지은이 : 톰 필립스

옮긴이 : 홍한결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문화

규격
145*220mm

쪽 수 : 276쪽

발행일
2019년 10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5581-239-6 (03900)



 

 

 

[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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