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아성찰 시리즈 - 미술, 열등감 그리고 나 [사람]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글 입력 2019.11.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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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동시에 마무리를 예고하는 글


 

 
지난달부터 기고한 <자아성찰 시리즈>는 '많은 사람이 볼 수도 있는 공간'에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아성찰을 하고자' 시작된 글이다. 물론 가끔 내 블로그에도 성찰의 냄새를 풍기는 글들이 많이 있지만, 그건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글들이다.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마음껏 쓰고, 순간순간의 기록을 위한 공간이지, 지난날에 대해 반성하는 자아성찰의 개념이 아니었다.
 
하여튼 두 차례에 걸친 자아성찰 시리즈를 작성한 결과, 말 그대로 자아성찰을 하는 데에는 나름 성공했다. 5년 전의 나, 3년 전의 나, 작년의 나를 떠올리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자아성찰 시리즈는 단순히 자아성찰을 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반성과 함께 지난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자는 목적이 좀 더 컸다. 그래서 처음엔 나도, 새벽 늦게까지 취업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불안함으로 밤을 지새우는.. 불행하리만큼 노력으로 무장한 23살의 나를 다독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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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점점 글을 쓰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볼 수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나 자신을 영웅시 하기 시작한 것인지, 지난날에 즐거웠던 순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힘들었던 기억만, 그리고 그것을 노력으로 극복했던 기억만 자꾸 하게 되었다. 즉, '성찰'이 아닌 '무용담' 섞인 회고록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더 힘들고 멋진 회고록을 위해, 지난날의 내 모습을 필요 이상으로 '노력'에 범벅된 사람처럼 그려갔다. 결국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때 이렇게까지 힘들었었나?"
 
그래서, 앞으로 더 왜곡된 회고록을 만드는 우를 범하기 전에, 자아성찰 시리즈는 오늘의 글을 끝으로 일단락을 지으려고 한다. 물론 자아성찰이라는 게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좀 더 성숙해질 때까지 자아성찰은 접어두기로 한다. 잘만 되던 예능 프로그램도 시즌 1을 접고, 몇 달 후 시즌 2로 돌아오듯이!
 
그렇게 자아성찰 시리즈 시즌 1의 마지막 주제는"미술, 열등감 그리고 나"이다.
 
 
 
01 개떡같은 미술


"공부 못해서 그걸로 대학 가려는 거 아냐?"
"수학 안 하려고 미술 하는 거지?"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체육, 무용.. 말 그대로 '예체능'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소리다. 아무리 내신, 수능 성적이 낮은 예체능 입시생이더라도, 이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하루는 역사 시간에 짝꿍과 떠들어 교무실에 불려갔었는데, 내가 예고 입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역사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미술 개떡 같은 걸 하려고 수업을 엉망으로 듣는구나."
 
지금의 나라면, 그래. 23살의 나라면, 오히려 그런 말을 한 선생님이 무안할 정도로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때 고작 16살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저 삐뚤어지고만 싶었던 16살의 나는 마음 한 쪽 구석에 조그맣게 새기게 된다. "사람들에게 미술은 개떡 같은 거구나."
 
 
 
02 8년간의 미술 끝에 얻은 방황


나에게는 꿀떡같지만, 남들에게는 개떡같은 미술을 8년이나 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속에서, 나는 미대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입시에 찌들어있던 나는 '자유주제'의 과제만 내주는 미대 수업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거의 입학과 동시에 미술에 대한 애정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지다 못해 증오가 되었다.
 
분명 꿀떡이었는데, 어느새 보니 개떡이 되어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옛날엔 꿀떡이었다고, 그래서 나도 엄청 좋아했다고, 행복했다고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는 결과만 놓고 보면 8년의 미술 끝에 방황을 얻은 셈이다. 남들은 저만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꿈이 있는 친구들로부터의 열등감과, 뒤늦은 방황에 대한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출석부에 보이는 '예술대학 미술학부'라는 과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디 가서 "저는 미대생이에요."라고 말하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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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입학 후 첫 과제전에 선보인 그림.

제목은 <모난 것을 눌러보자>이다.
못난 나 자신에게서 모난 점을
나무의 뿌리처럼 꾹꾹 눌러 숨겨보자는 의미였다.
이때부터 살짝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서린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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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때 그렸던 그림.
제목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혼자 잘 가고 있었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다들 날 피해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보니 정말 그림에서 우울함이 느껴진다.
 
 
 
03 도저히 이래서는


도저히 이렇게는 대학생활을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삶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지금이 오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에게 큰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어떠한 계기로 경영학 복수 전공을 시작하게 된다. 그 과정은 험난했다. 전공 수업을 영어강의로 진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다. 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을 땐 3,4번 미리 책을 읽어오고, 복습을 했다. 나는 미대생이고, 옆에 앉은 경영대 친구들보다 높은 확률로 수능 성적이 낮을 것이고, 이해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격지심이 나를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2년을 지내고 나니, 예전보다 나에 대한 애정도 생겼고, 미술도 좀 더 너그러이 바라봐 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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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학기, 복수 전공을 시작하며
점차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에 그린 것이다.
제목은 <나의 요모조모>
나의 모습을 여러 장 확대 또는 축소해 그려가며
나를 알아가고자 했던 그림이다.

 
 
 
04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가져다준 것


우리 대학은 서울권 내에서 굉장히 애매한 대학이다. 사교육 전문학원 모 회장의 말에 따르면 명문대지만, 정작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띠용? 하는 그런 대학. 그래서 항상 학교 게시판에는 학벌에 대한 자격지심, 한이 서려있는 학우들의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올라온 후에는, 그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또 다른 글이 올라온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열등감을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로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자격지심과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황을 많이 했다는 자격지심과 꿈이 없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끊임없이 배우고,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제는 지금까지 고생한 나를 다독여주고 싶다. 자격지심이 아니라, 그냥, 더 멋진 삶을 꿈꾸는 걱정이 조금 많은 아이라고 달래주고 싶다.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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