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는, 나의 리버 [사람]

글 입력 2019.11.0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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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부터 11월 6일까지 CGV 아트하우스에서는 리버 피닉스 특별전을 개최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나는 부랴부랴 예매해 보기 바빴다. 이번 특별전에서 재상영하는 <아이다호>와 <스탠 바이 미> 둘 다 상당히 명작이다.  나는 사정상 <스탠 바이 미>만 예매했다.   하지만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가 보여준 눈빛은 잊을 수 없다. 노트북 화면 속에 길게 뻗은 아이다호의 도로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마이크의 푸른 눈. <아이다호>에서 처음 만난 리버 피닉스는 그렇게 평생 내 가슴 한편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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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8월 23일, 히피 가정에서 태어난 리버 피닉스는 오 남매 중 장남이다. 동생 중에 <조커>, <그녀(Her)> 등으로 유명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있다. 1980년 초부터 아역배우로서 경력을 쌓은 그는  스물세 살 나이로 사망한다. 1993년 10월 31일,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심부전.

 

리버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다. 벌써 세상은 그가 살았던 분량의 시간보다 더 멀리 와 버린 것이다. 사 분의 일 세기나 지났구나. 이제는 스크린으로 리버 피닉스를 본다 해서 예전처럼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거니 생각했다. 바보같이! 나는 안일한 기분으로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가 끝날 때쯤 구겨진 휴지처럼 얼굴을 뭉개고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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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리버가 분한 캐릭터 '크리스'를 보며 내가 왜 아직도 이 배우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그가 <허공에의 질주>, <아이다호>를 촬영할 때까지 평생 잃지 않았던 반항적인 눈빛, 세상을 더 정확히 보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버릇은 열여섯 살이던 <스탠 바이 미>에서도 여전하다. 학교에서 돈을 훔치고, 양아치 형을 둔 문제아 크리스는 죽은 소년을 찾아가는 모험에서 세심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친구들을 이끈다.

 

일찍 철든 아이의 모습은 슬프다. 하지만 크리스의 의젓함이 불러오는 슬픔의 결은 조금 다른데, 그의 철듦에서는 삶의 무게를 한껏 견디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의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험난한 세상맛을 충분히 본 것처럼 거칠지만, 폭력적이지 않고, 총명하면서도 남의 인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소년은 싸우고 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어른들의 위협이나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아이. <스탠 바이 미>의 크리스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성장 소설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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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의 질주>의 주연 대니나, 이 영화에서의 크리스 등 리버가 분하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방황하면서도 예의 바르다. 그래서인지 리버 피닉스의 인물들이 고달픈 건 그의 잘못도, 누구의 탓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가련함이 극대화된 게 <아이다호>의 마이크인데, 남창에 기면증까지 앓는 그는 정말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다. 그다지 희망차지 않은 결말 때문인지, 나는 가장 여운이 깊게 남았음에도 이 영화를 리버의 최고작이라고 뽑고 싶지 않다.

 

꿈도 미래도 없다는 식의 감성을 치켜세워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 영화를 찍으며 알코올, 약물 중독에 시달리던 리버를 생각하면 가슴만 아파지니까. 앞서 두 영화에서 방황할지언정 길을 잃지 않았던 리버 피닉스인데, 하필 유작이 <아이다호>라 끊임없이 누군가의 손에 넘겨져야 했던 마이크라는 인물로 끝난다는 것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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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리버 피닉스의 추모글을 읽을 때면 그가 오래 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인물이었다는 평이 있다. 세상에 오래 붙어있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섬세한 사람이라 일찍 떠날 운명이었다고. 이런 추모글을 읽을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이 세상에 요절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더 이상 리버의 다음 작품이 없다는 걸, 그가 나이 든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의 죽음은 내면의 연약함,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니고 할리우드에 만연한 마약 문화와 중독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고 비난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괜히 예술적 의미를 부여해 낭만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약물 과다복용, 오남용 등으로 일찍 세상을 뜬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술과 마약, 퇴폐적인 삶을 결부시키려는 시도는 그만두고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그런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는 편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나는 리버 피닉스의 연기 어디에서도 죽음의 흔적을 읽을 수 없다. 그는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진지하고, 자유롭다. 크리스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큰 형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때처럼. '시체는 못 줘. 날 죽여야 할걸.'

 

이런 뻗대기 정신, 결국 내가 지금까지도 리버를 놓아주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소년은 남자가 되고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된다. 그 사이의 묘한 경계에서 리버 피닉스만큼 진지하게, 고집스레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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