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적을 믿게 해준 경험, 오라드리밍 프로젝트 [사람]

꿈을 이루려는 시도부터, 추락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글 입력 2019.11.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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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기적을 경험하게 해준

오라드리밍 프로젝트

 

 

 

페미니즘 앤솔로지 공모전에 당선되다! 그러나...


 

한 독립출판사가 책 <페미니즘 앤솔로지>를 제작할 목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 소설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싶었던 나는, 저 대회에 꼭 당선되어 책을 출간하고 싶었다. 원고를 투고한 뒤,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당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당선작들을 엮어서 소설집으로 출판한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행복하니까 오히려 불안하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서였을까. 이상하게도 책 출판 목표 날짜는 다가오는데, 그 뒤로 나는 편집자님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보가 날아왔다. 그 프로젝트는 엎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출판사의 대표가 데이트 폭력을 해왔다는 사실이 공론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분을 생각하면 그 프로젝트는 당연히 진행되어서는 안 되었으나, 나는 페미니즘 소설들을 엮어 책으로 낸다는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좋은 프로젝트가 엎어진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때 절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나 : 저 프로젝트, 다시 살아날 일은 없겠지?

 

친구 : 네가 독립 출판사를 세워서, 그 프로젝트를 네가 진행하지 않는 한?

 

 

그런데 웃기게도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래, 독립 출판사를 세우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저 공모전을 주최한 출판사도 규모가 큰 출판사가 아니었다. 저 대표도 페미니즘 소설집을 내려고 했었는데, 나라고 왜 못 하겠어?라는 오기가 들었다. 물론 계획을 세우다 보니 독립 출판사를 세우는 건 무리라는 걸 깨달았고, 텀블벅이라는 방식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꿈은 일단 시작해야 가능한 거였다.


 

페미니즘 앤솔로지 출간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나의 꿈을 친구들에게 일부러 말하고 다녔다.

 

 

“내가 페미니즘 앤솔로지(소설집)를 출간할 거야!”

 

 

친구들은 걱정된다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 응원해 줬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 ‘그래서 그거 언제 시작할 건데?’ 식으로 물어봐 주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프로젝트는 어떤 이름으로 하고 싶으냐,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선 로고와 마스코트도 필요하지 않겠냐 등.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 둘이 차례로 아이디어를 내주었다.

 

 

친구 1 : 마스코트는 마녀가 어때?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마녀 취급을 당해야 할 때가 과거도, 현재도 있으니까.

 

친구 2 : 프로젝트 이름은 꿈에 대한 거니까 ‘오라드리밍’ 어떨까? 이탈리아어로 ‘꿈을 꾸는 자’라는 뜻이래.

 

 

프로젝트의 이름과 마스코트가 정해지자, 막연했던 프로젝트가 생생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꼭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여름방학 전까지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의 작가들을 모집하고, 여름방학 때 합평을 통해 원고들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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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내 사정을 듣고 만들어준

오라드리밍 작가 모집 포스터

 

 

시험 준비에, 과제에 한창 바빴던 그때 나는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빈 학교의 복도와 계단, 화장실 앞 등등에 포스터들을 붙이러 돌아다녔다. 당연히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의 멤버들을 모집하기 전이었으므로, 혼자서 100장가량을 붙였다. 그때는 ‘오라드리밍이라는 이름은 꿈을 꾸는 자라는 뜻이니까. 나는 꿈을 이루는 중인 거야.’ ‘나는 꿈을 이룰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정말 열심히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에 참여할 작가들을 다 구하고 난 뒤, 텀블벅에 개시할 때까지 모든 팀원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날이 무척 더웠던 여름방학에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 작품 합평을 진행했다. 합평을 받는다고 다 끝이 아니었다. 내 자식 같은 소설을 몇 번이나 갈아엎으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는 지금도 떠올리면 생생하다. 그뿐 아니라, 오라드리밍 프로젝트 홍보하기, 인터뷰 초고 작성하기, 텀블벅에 올릴 글 작성하기 등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중간에 이 일정을 따라잡을 수 없어 하차한 작가님들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작가님들의 피와 땀이 섞인 원고들을 받고, 텀블벅으로부터 론칭이 가능하다는 합격 메일을 받았다. 다 같이 설렘에 젖어 기뻐했던 것도 잠시뿐,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정말 열심히 쓴 원고들이었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참으로 어려웠다. 텀블벅은 창작자가 목표 금액을 설정해놓고, 후원자는 후원을 ‘예약’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목표 금액이 달성되어야 실제로 결제가 이뤄지고, 프로젝트를 이행할 수 있는 자금을 얻는 것이다.

 

열심히 홍보를 돌리고 이벤트도 열어봤으나, 텀블벅 모금 마감일이 가까워져도 목표액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텀블벅 모금 마감까지는 사흘 남았는데 모금액이 목표액의 70%도 채워지지 않은 걸 보고 이때 나는 모든 걸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포자기한 나는 오라드리밍 홍보 계정에 들어가지도 않게 되었고, 텀블벅 페이지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 사정을 모르는 지인이 마감일이 사흘밖에 남았는데, 오라드리밍 홍보 계정은 왜 어떤 글도 올라오지 않느냐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끝까지 해봐야, 하늘이 도울 틈이 생기는 것 같다.


 

마감일이 이틀 남았던 날,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고생했던 디자이너 팀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목표액이 천만 원 넘게 모여 있는데, 이거 진짜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으로 텀블벅 페이지에 접속했다. 역시나, 그 후원을 한 사람은 누가 봐도 우리의 프로젝트를 조롱하는 사진(90년생 김지훈)을 프로필로 설정한 사람이었다. 즉, 장난 후원이었다. 장난이라도 천만 원 후원해준 거면 좋은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텀블벅 모금은 '선결제'가 아니다. 이 프로젝트에 후원하고 싶다는 일종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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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김지훈을 프사로 한 사람이

장난식 후원을 했다.

 

 

그렇기에 천만 원을 후원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뿐'이 언제든지 될 수 있다. 그래서 취소를 해버리거나 실제 계좌에 돈이 없다면 그만큼 프로젝트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이 사람은 천만 원을 후원하겠다고 했으니, 언뜻 보기엔 프로젝트는 모금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실질적인 후원을 멈추기도 할 수 있었다. 가짜 후원이었다는 걸 안 디자이너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밤 분노로 잠을 자지 못한 나는 공식 계정에 글을 써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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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는지 토로한 글

 

 

그때 당시 올렸을 때는 세 명 정도가 리트윗했다. 그마저도 두 명은 내가 아는 지인들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순식간에 리트윗이 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정보는 빠르게 퍼졌고 내가 쓴 글에 공감해준 사람들은 우후죽순으로 후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리트윗이 되면 될수록 후원금이 빠르게 모였다. 70%도 안 되던 목표 달성률이, 80%, 90%, 그리고 100%를 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며,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페미니즘 앤솔로지 공모전에 당선되었지만 프로젝트가 엎어졌던 일, 포스터를 혼자서 붙이고 다녔던 날, 작가들과 더운 교실에서 뜨겁게 합평을 진행했던 것, 머리를 쥐어짜며 텀블벅에 게시할 글을 완성했던 것, 아무리 홍보를 해도 목표액이 모이지 않을 때 느꼈던 막막함, 가짜 후원에 디자이너 팀원이 울었을 때 느꼈던 분노. 그렇게 석 달을 걸어두어도 모금이 되지 못하던 프로젝트가 마감일 이틀을 남기고 모금액 180% 달성, 후원자 275명을 달성하게 되어 성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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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급격히 목표금액을 달성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우리는 기적을 겪을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꾸는 자(ora dreaming)니까.


 

지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그때는 나도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을 겪게 되어 너무 놀라웠다. 시간이 흘러 글을 쓰는 지금은, 막판에 목표를 달성한 것만이 기적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오라드리밍 프로젝트가 책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들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 과정 중에 나 혼자만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디자인을 맡아주겠다고 자처했던 나의 동기, 처음 작가를 모집할 때 자원해준 나의 친구들, 자기 시간을 할애하여 모임에 나와 아이디어를 주었던 오라드리밍 팀원들. 좋은 프로젝트 한다며, 기꺼이 후원해준 여러 지인들. 300권을 포장하고, 택배를 배송하기 위한 장소를 제공해준 지인들까지.

 

뻔한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행동할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속에 있었던 ‘꿈’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도 단순히 얼마큼 돈을 벌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들인 시간에 비하면 정말 적은 돈만이 남았다.) 적어도 나는, 나를 포함한 작가들의 글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로 인해 작가도, 독자도 성장하는 영향력을 나눴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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