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지켜내고, 깎아내며, 마침내

글 입력 2019.11.0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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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자연석과 인공 구조물을 맞물릴 때, 자연석을 매끈하게 다듬는 것이 아니라 인공 구조물을 자연석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맞게 깎아내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이를 ‘그랭이 법’이라고 한다. 주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울 때 쓰던 방법으로, 자연을 경외하고 그 앞에 겸허하게 자세를 낮췄던 선조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들을 ‘빨리빨리’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과정도 복잡한, 즉 비효율적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하면서까지 소중한 무엇을 지키려 노력했다.


궁금했다. 만약 쓸모가 없고 효율적이지 않아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도, 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나에게도 있을까? 나는 왜 그것을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을까?


*

 

'ART insight'는 이번이 두 번째 참여다. 첫 번째로 참여했던 작년의 나에게 아트인사이트는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 오랜만에 글을 꺼내 읽어보았다. 활동하는 동안 기고했던 글에 흐르는 공통적인 맥락을 짚어본 후,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감회를 느꼈으며 또 결국에 어떤 것을 주장하고자 했는지 정리했었다. 문화예술에서의 다양성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문화는 소통이라는 모토 아래 그 실현을 가능하게 했던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힘주어 얘기했다.


작년엔 다채로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색깔의 물감을 팔레트에 짜놓는 작업을 진행했다면, 올해는 그것을 가지고 커다란 그림을 그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더욱 많은 색이 필요했고, 부족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아직 많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의 팔레트를, 세상의 팔레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척박한 흑백의 시각이 일 년이 지나도 여전히 굳세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름을 해치는 틀림이 있었다. 세상의 풍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많은 물감을 짜놓았지만 정작 붓질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꼭 그려지는 대상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작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붓을 쥐기 전, 온전히 나의 경험으로 직조한 캔버스에 외부를 재현하고 표상할 수 있는 주체로 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러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솎아내야 했다.


비판했다. 트위터의 플랫폼적 맹점에서 비롯한 폭력적 공론장의 형성을 지적하는 오피니언으로 한 해를 시작하여 여성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여성혐오, 여성 주연 영화를 ‘거르는’ 사람들, 유행어에 반영된 노인 혐오, 광고에서 나타난 여아 성적 물화 등 누군가를 국한하고 더 나아가선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어떤 움직임을 비판했다. 특히 가볍고 오락적인 모양새로, 그래서 더욱 막강하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중예술 및 하위문화를 자주 주제 삼았다.


온갖 의견과 생각이 범람하고 상대성과 상대성이 부딪치는 이 혼란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게 품고 있어야 할 옳고 그름의 기준과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여기 나는 어떤 목소리로 혹은 어떤 목소리를 대신하여 그 가치의 소중함을 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중요했다. 아트인사이트는 기꺼이 그 고민의 장이 되어주었다. 그곳에서 어떤 것이 지켜져야 하고 어떤 것이 깎여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은 마땅히 깎아낼 수 있는 자그마한 돌이 마침내 듬직한 주춧돌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한 편의 자리와 한 움큼의 믿음을 건네주었다.

 

*

 

세상의 틀림을 지적하는 과정은 동시에 내 안의 틀림을 발견하게 했다. 힘겨웠다. 몰랐던, 혹은 모른 척했던 힘겨움이 있었고 그것은 타인과 세상을 오래도록 아프게 했던 것들이었다. 조각조각 깎아내어야 할 부분이 내 안에도 많았고 과정은 쓰라렸다. 어떤 돌을 소중히 지키기 위해,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과 기둥을 세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스스로를 꾸짖고 타이르는 과정이었기에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나 자신도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위로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굴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아트인사이트에서의 활동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고민하고 글을 쓰며 세상과 마찰했고 아팠지만 그만큼 나의 윤곽은 더욱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지켜내고 깎아내며 오롯해지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 안의 틀림을 확인하며 알아가고 있다. 보편의 사람들이 겪고 있을 힘듦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위로가 있을까. 사실은 위로받을 자격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누구나 힘든 만큼 누구나 위로받을 수 있음을, 당신도 뚜렷해지고 온전해지는 과정일 수 있음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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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지켜내야 하며 무엇을 깎아내야 하는지, 사실 아직도 확실치 않다. 한없이 더디고 유약한 발걸음이다. 누구는 쉽게 쓰러질 수 있다며 조언하고 또 누구는 쓸데없는 고집이라며 우려한다.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헷갈리고, 두렵기도 하다.

 

서두에 언급한 그랭이 법이 낳은 건축적 성취가 하나의 위안이 될까. 그랭이법으로 지은 건축물은 접착제 없이도 완벽한 맞물림으로 오랜 시간 동안 단단히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이 모인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그 어떤 곳보다 강직한 세상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 이것이 나, 그리고 어쩌면 같은 과정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 줄의 위로이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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